[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종.명종실록
조선 제12대 임금 인종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천성이 어질고 유학의 가르침에 충실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선왕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중종이 죽자 그 상례를 너무 챙긴나머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데 있다 하겠다. 그래서인지 인종은 조선왕조 역사상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9개월 동안만 왕위에 있었다.
그 무엇보다 인종시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 순간들은 문정왕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2세의 나이로 조선의 제13대 왕이된 명종.. 명종시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 순간들도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외척인 윤원형이 있었다.
문정왕후로부터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 첫번째는 을사사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모 아닌 역모사건이다. 인종계라고 할 수 있는, 즉 문정왕후와 명종의 반대편에 있었던 윤임은 당시 대군(명종)이 아닌 다른 왕족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계림군이나 봉성군을 후보로 거론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군의 안질을 이유로 왕위 계승에 중요한 결격사유임을 퍼뜨렸던 것이다. 문정왕후로서는 역모인 셈이었다. 이에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은 물론 그의 가족들도 교형에 처해졌으며 인척들은 유배되거나 노비로 전락했다.
두 번째는 양재역 벽서사건이다. 문정왕후는 순리를 존중했던 회재 이언적까지도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회재 이언적은 신념어린 선비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회재 이언적은 이 사건으로 인한 유배시절,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견지해야할 여덟가지 항목, 진수팔규도 지었다고 한다. 도리를 밝히는 일, 근본을 세우는 일, 하늘의 덕을 본받는 일, 전대의 성인을 본받는 일, 총명의 범위를 넓히는 일, 어진 정치를 베푸는 일, 천심에 순응하는 일, 중화를 극진히 하는 일 등이다. 물론 다 옳은 얘기만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꼭 했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양재역 벽서사건 이후에도 한 번의 역모사건이 더 일어난다. 윤임을 따르던 측에서 일을 벌었는데 이를 밀고하여 자신의 영달을 채우려 했던 이도 따지고 보면 윤임을 따르던 측이었다. 배신과 배신이 넘쳐나는 시기였다. 왕권이 약해서인지, 당시의 국가를 못믿워해서 인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을 만만하게 보아서 인지 참으로 살벌한 나날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시기엔 모호한 이유를 들어 불교가 숭상되기도 하였다. 문정왕후의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결국 유학자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리고 명종시대는 정난정이 시대를 떠들석하게 한 정난정이 있던 시대였고, 의적이라고까지 불린 임꺽정이 호령하던 시대였으며, 그 무엇보다도 대스승 퇴계 이황이 백년지대계의 기틀을 마련했던 시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