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지 않음을 부끄러워 하며, 지난 번 애니보기에 이은 큰아이와 함께 하기 프로젝트 두번째는 데미안 읽기였다. 아이도 알고 있겠지만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 것이기에 애당초 거짓과 같은 잘못을 하지 말자는 것, 자유의지와 무엇인가를 잘 관찰하면 그 사람, 그 것에 대한 특성까지도 알 수 있다는 중요성, 자연현상에 대한 특별함,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에 대한 이야기들, 우연과 필연에 대한 것들, 박쥐와 타조를 예로 들며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라는 말들, 운명과 임무, 공동체, 연대, 두려움, 혁신, 이상과 가치, 꿈, 삶에 대한 방식과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 깨달음에 관한 것들도 아이와 함께 나눠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는 의미로, 아이와 나는 지금은 종영된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의 데미안 편을 같이 시청해보기로 했다.
나의 죄는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그 애를 왜 따라갔을까? 왜 아버지 말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크로머를 따랐을까? 왜 그따위 도둑질 이야기를 억지로 꾸며 내고 영웅이 된 것마냥 으스댔을까? 악마가 나를 꽉 움켜쥐었다. 적이 등 뒤까지 바짝 쫓아 왔다.(23/232)
나는 절실히 느꼈다. 이번 잘못이 자꾸 다른 잘못으로 이어질 거라고. 그래서 누나들과 다정히 지내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입맞춤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 되고, 나는 나만 아는 은밀한 거짓 속에서 살게 될 거라고(23/232)
사람들은 자기한테 유리하고 자기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거든.(38/232)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어.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 없고, 남에게 자신이 원하는 걸 생각하게 만들 수도 없어. 그런데 누군가를 꼼꼼이 관찰하면, 얼마든지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꽤 정확하게 알 수 있지. 다음 순간 뭘 할지 예측까지도 가능한 거야. 아주 간단한 일인데, 단지 다들 그걸 몰라서 못할 뿐이야. 물론 연습도 필요하고. (69/232)
자연은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나방이 암컷과 수컷의 개체수가 비슷했다면 그렇게 예민한 후각을 갖게 되진 않았을 거라는 거야. 짝을 찾는 일에 여러 세대를 걸쳐 훈련했기 때문에 그런 후각을 갖게 된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자신의 모든 의지력을 하나의 목표에 모으면 성취해 낼 수 있어. 그게 다야. 네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너도 한번 누군가를 아주 세밀하게 관찰해 봐. 그럼 너 자신보다도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거야.”(70/232)
‘금지된 것’은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어. ... 우리들은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해. 금지된 일들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악당일 수 있어. 그 반대도 가능하고. 대개는 그저 편의상의 문제인 거야!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 버려. 그 편이 쉬우니까. 내면에서 자신만의 법을 느끼는 사람들은 더 어려워. 다른 명예로운 사람들이 매일같이 하는 일이 그들에게 금지된 것일 수 있고, 다들 금기시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혀용하기도 하거든. 사람은 각자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해."(79, 80/232)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서 발견한 것이라면, 그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의 필사적인 소원이 필연적으로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121, 122/ 232)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서도 안 돼. 자연이 자넬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네. 자넨 번번이 자신이 별난 사람이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책하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 불을 들여다 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응시하고, 그러다가 내면의 소리가 들리거든 즉시 그것들에 자신을 내맡기게. 처음부터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신의 뜻과 일치하는지, 그들의 마음에 들지를 묻지는 말라구!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쳐. 그렇게 하면 안전하게 인도로만 걷는 화석이 되고 마는 거야.(137/232)
그의 임무는 임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이자 순응이고,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무섭고 경건하게 그 새로운 생각이 내 앞에 솟아올랐다. (162/232)
그는 유럽의 정신과 시대의 징표에 관해 이야기했다. 어디를 가도 집단행동이 지배하고 있고, 자유와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모든 가짜 공동체들(대학생 연맹부터 합창단, 나아가 국가까지)은 공포심과 불안감과 당혹감에서 탄생되어서, 안으로 썩고 닳아 곧 붕괴되고 말 거라고 했다.(171, 172/232)
“순수한 연대는 아름다운 거야. 하지만 보이는 곳마다 도처에 만발하는 이런 것들은 전혀 연대가 아니야. 연대는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알게 됨으로써 탄생하고, 한동안 세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거야. 지금 연대로 보이는 것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해. 서로를 두려워 해서 뭉치는 거거든. 사장은 사장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말이야!(172/232)
그들이 왜 두려워 할까? 사람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댄다고 느낄 때 두려워져.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겠을 때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그런데 사회는 자신의 내면을 몰라서 두려운 자들로 이루어졌지! 모두가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 법칙이 오늘날 더 이상 맞지 않구나, 법들이 다 낡아버렸는데 종교나 도덕도 적당하지가 않구나’ 하고 느끼는 거야(172/232)
싱클레어, 어디에도 명랑함이 없어. 불안에 가득 차서 모여든 사람들이니 더욱 겁을 먹고 악의에 차서 누구도 아무도 믿지 않는 거야. 그들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자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거야. 곧 충돌이 일어날 거야. 날 믿어, 싸울 거라니까, 그것도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물론 그것이 세계를 ‘개선’하지는 못하겠지(173/242)
노동자가 공장주를 때려죽이든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총질을 하든 그저 소유주만 바뀌는 문제일 뿐이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게 헛된 일이라는 건 아냐. 오늘날 붙들고 있는 이상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셈이 될 테고, 석기시대의 신들을 제거해 줄 거니까. 지금 이대로의 이 세계는 죽고 멸망하고 싶어 해. 또 결국에는 그렇게 되고 말 거야.” (173/232)
“그래요. 자신의 꿈을 발견해야 해요. 그러면 길은 한층 쉬워지죠. 하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꿈이란 없어요. 계속 새로운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떤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돼요.”(180/232)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과 경계선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의 차이’에 따라 분리되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사명은 이 세계에 한 개의 섬,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혹은 최소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임은 틀림없었다.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나는, 완전한 고독을 맛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행복한 사람들의 식탁이나 축복받은 이들의 축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고, 타인들의 연대를 시샘하거나 향수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차츰 ‘표식’을 단 자들의 비법을 전수받았다.(183, 184/232)
표식을 지닌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상스럽다고, 심지어는 미쳤다거나 위험스럽다고 간단히 치부될 수 있었다. 우리는 깨달은 자 혹은 깨달아 가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더욱 더 완전하게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데,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이나 이상, 의무, 삶, 행복을 한데 묶고 더욱 더 군중들과 같아지려는 노력에 집중한다. 물론 그들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힘과 위대성도 지녔다. 그러나 우리 표식을 지닌 자들은 자연의 의지를 새롭고 개별적인 미래를 위해 제시하는 데 반해, 그들은 현 상태에 안주하려고 고집을 부렸다. 그들에게 (우리처럼 그들도 사랑해 마지않는) 인류란, 유지되고 보호받아야 할 완성된 존재였다. 우리에게 인류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머나먼 목표, 아무도 그 모습을 모르고 그 법칙도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은 그런 아득한 미래였다. (183/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