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상영 자막에서 의역에 관해.
2018년 12월 16일의 글.
(트위터에서 '여혐주의자 황석희'를 까고 싶어서 황석희 씨의 몇몇 사소한 오역들을 과도하게 트집잡는 말들을 보다가. "어떤 영화에서 웃음 포인트가 있었는데 황석희가 의역해놓은 바람에 극장 안에서 나 혼자 웃은 일이 있었다"라고 적은 트윗이었다.)
- 극장 상영용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외국인의 입말 길이에 맞게 번역하는 것(듀레이션),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 기술적인 제한 속에서 번역하는 것(바이트 제한, 문자 제한 등). 동시에, 특히 대중적인 영화의 경우, 해당 영화가 생산된 국가의 언어/사회/문화적 맥락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도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의역). 이런 모든 고려 속에서 100% 완벽한 번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의도되지 않은 오역들도 여럿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정확히 번역하지 않은('못한'이 아니다) 대사들도 있는 것이다.
- 영어(를 필두로 한 외국어)를 잘하는 것과 번역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며, 번역을 잘하는 것과 번역 '일'을 하는 것은 또 전혀 다른 일일 수 있으며, 디테일하게는 같은 번역 일이라 해도 학서 번역일과 극장 번역일이 천지차이일 수 있다는 얘기.
- 기술적 제한에 대해 부연. 위 사진은 미드 '뉴스룸'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번역한 짤방인데, 극장에서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까? 못한다. 각 줄의 문장이 양옆으로 너무 길어서다. 보통의 관객이 이렇게 양옆으로 긴 문장을 한 눈에 담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상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길면 관객은 영화의 한 부분으로서 자막을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장면을 놓친 채 자막을 '읽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극장용 번역에는 한 줄당 바이트 제한(보통의 사람이 한 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의 길이에 맞춰서)이 있어서, 일정 바이트 이상으로 번역되는 문장은 의역을 하거나 두 마디로 나눠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번역은 긴데 말은 빠를 경우에는 두 마디로 나눠서 번역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번역가는 의미의 일부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온전히' 옮겨서 관객들이 대사 자체를 볼 수 없게 하는 것보단, '어떻게든 포맷에 맞게' 옮겨서 의미 일부를 잃더라도 관객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번역 '일'에서는 옳은 결정이라는 얘기다. 대체로 '의역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사들은 이런 지점에서 발생한다.
- 언어사회문화적 맥락을 모르는 이에게도 뜻이 이해될 수 있도록 옮긴다는 부분을 부연. 예를 들어 이런 대사가 있다고 치자.
"나는 어릴 때 자동차, BSB(Back Street Boys)가 전부였어."
정확히 옮기면 "자동차와 백스트릿보이즈가 전부였다"고 해야겠지만, 미국인에게 BSB의 의미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BSB의 의미는 서로 같지가 않다. 그래서 저렇게 번역하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번역임에도, 오히려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번역가는 의미를 전달할 수 없음에도 '정확히' 번역하는 것과, '정확성'을 포기하더라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번역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산업'이라서, 종종 번역가는 후자의 결정을 내린다. "자동차와 아이돌이 전부였다" 정도가 되겠지. 이건 의역이고, 관점에 따라 오역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얘기다.
(물론 "BSB"를 '백스트릿보이즈'라고 번역하는 건 이 윗 댓글에서 얘기한 듀레이션의 문제로 불가능하다. 제일 좋은 건 BSB라 쓰고 괄호 안에 '미국의 유명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 백스트릿보이즈의 약어'라고 쓰는 것이지만, 이건 역시 기술적인 문제로 불가능하다. 도서 번역이나 어둠의 번역이라면 몰라도.)
BSB는 충분히 대중적인가? 그렇다면 이런 예시. 내가 요즘 검수하는 일 중엔 이런 대사도 있다. 알래스카 소도시의 한 수의사 이야기인데.
"이 녀석은 여기 말고 주노로 옮겨야겠어요."
자, 당신은 이 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지? 주노는 알래스카의 주도다. 즉 저 대사의 의미는 '작은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고,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저 대사를 직역해서는 한국인 관객에게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 정도 번역이 적절할 거다. "이 녀석은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겠어요." 의역이고 오역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여기 말고"를 뺀 것도 '주노'와 '좀 더 큰 병원'의 입말의 속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듀레이션의 문제. 번역일이란 대체로 이런 판단 하에 이뤄진다.)
- 어쨌든 극장용 번역 일이라는 것이 이런 모든 지점들을 고려해가면서 이뤄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산업이라는 점. 종종 어떤 제작사들은 번역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스포일러를 방지하는 방침을 고수하는 마블스튜디오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여기에는 번역가들의 처우 문제도 있다. 번역가들이 일 하나만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서 일에 치이지 않으며 한 작품만 여유롭게 번역할 수 있다면 퀄리티를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번역을 '영어 좀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주 가볍게 취급하고 비용을 줄인다. 그러니 번역가들은 한 번에 여러 일을 맡아서 바쁘게 처리해야 한다. 번역을 두번, 세번 검토할 시간이 없으니 퀄리티가 낮아진다. 검수라도 제대로 되면 좋을 테지만. 번역에 돈을 안 쓰는데 검수에 돈을 쓸 리가.
-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내가 번역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