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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07. 2016

기적 이후의 이야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보다

* 스포일러가 있긴 한데, 실화 베이스 영화에서 뭔 의미가 있나 싶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을 봤다. 메가박스 백석. 왜, 그런 영화 있지 않나. 안 봐도 알 것 같아서 보기 싫은 영화. "감동 실화"라고 홍보되고, 내용은 뻔히 보이고, 심지어 그걸 연출한 감독의 스타일도 훤히 아는, 그런 영화. <설리>는 그런 영화다. "감동 실화"인데다, 전원구조 된 것도 이미 알고, 세월호 이후의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를 어떻게 보게될 수밖에 없는지도 뻔히 알고, 심지어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래! 그런데도 자꾸만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서 호평이 들리는 것이다. 꼭 보라는 독려와 함께. 그래서 봤다. 내가 생각지 못한 어떤 개성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브런치니까 괜히 사진도 넣어보고


오, 이 영화, 기대보다 괜찮다. 기장인 설리의 이름이 메인 타이틀로 걸리고 시종일관 설리를 주목하는데도, 그가 강렬하게 영웅화되는 연출은 거의 없다. 물론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저 사건을 경험한/목격한 미국인들은 저 건조한 연출에 오히려 큰 감동을 느낄 수도. 하여간, 그 지점이 나한텐 꽤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스트우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이 영웅인지, 아니면 사건인지를 얘기해주는 지점이니까. 내가 읽은 것은 분명하게 후자였다. 설리 기장은, 그를 보는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영웅으로 받들지만, 감독의 시선에서 그저 생존자로 그려진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155명 중 한 명"으로.


영화에서, 특히 "감동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어떤 장면에 잔잔한 배경음악을 까는 것은 아주 뻔한 영화적 수법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배경음악을 깔면서 우리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 집중해, 이 장면은 감동적인 장면이고, 너는 울어야 해.
(괜히 이런 컴포넌트도 써보고)


이 측면으로 보면 <설리>는 아주 색다르다. 이륙부터 전원구조에 성공하는 데까지, 설리가 펼치는 감동적인 행동들ㅡ엔진 잃은 걸 알자마자 조치에 나서거나, 허드슨강에 비상착수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거나, 승객들을 탈출시키거나, 남은 인원은 없는지 마지막까지 살피거나, 설리가 최후로 사다리를 타고 구조선에 올라 아내에게 생존을 알리거나, 육지에 당도한 이후 부상자 수를 물어 전원구조가 맞는지 확인하거나ㅡ에 배경음악이 깔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구조선이 비행기에 당도해서 처음 승객을 구조할 때 잠시 배경음악이 깔릴 뿐이다.


그렇다면 배경음악은 언제 깔리나. 병원에 입원한 설리에게 조합원이 찾아와 "구조된 인원이 총 155명이래"라고 알리는 순간이다. 마치 그걸 확인하는 순간에서야 기장의 책임을 다 한 것이라는 듯이. 아마 이것이 감독의 시선이었다면 배경음악은 온갖 장면에서 지겹도록 깔렸을 거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설리의 회상이다. 청문회 장면 전까지 사고 당시의 재현은 설리의 말과 생각으로만 그려진다. 그러니까, 감독은 배경음악을 통해 설리 기장의 책임감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그는 한순간도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생존했다는 걸 확인한 순간에나 잠시 울컥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아주 짧게 깔릴 뿐이다.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설리의 영웅적 행위를 부각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면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설리의 상태다. 설리는 사고 후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영화는 끝까지 그의 트라우마에 주목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 역시 영웅이기 이전에 끔찍한 사고의 생존자라는 걸 분명하게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건 이후에서 출발하는 구성을 택했다. 그럼으로써 비행기 사고에서 영웅적인 기장의 활약으로 모든 이들이 구조되는 기적의 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됐으나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회사로부터는 의심 받는 인물의 이야기가 됐다. 영리한 선택이다. 뻔하고, 어쩌면 영화관에 걸리기엔 너무 짧은 이야기(비상착수는 208초, 전원구조는 24분이 소요된다)를 어떻게 끌어갈지 궁금했는데, 이러한 구성방식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제목이 뻔하게도 "설리"여야 했는지도.


"뉴욕이 하나 되어" 기적을 만든 와중에 시종일관 '쓰레기'로 그려지는 것은 오직 기자들뿐이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던지는 메시지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결국 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런 얘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셈이다. 세월호 이후 모두가 시스템의 실종 얘기하지만, 2014년 4월 16일에 정말로 결여된 것은 인간이었다. 양심을 갖고 한 명의 인간으로 서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망가진 시스템 속에서 자신에 대한 책임 추궁을 가장 두려워한 나머지 기계적으로 행동한 비-인간들만 있었다. 그 요소를 얘기하지 않고서는 시스템의 완전한 복원도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간다.


"전원구조까지는 24분이 걸렸다."


객석에서 탄식이 들리더라. 띄엄띄엄 들렸지만, 이런 얘기였다.


세월호…, …세월호, 세월호.


그래, 이제 한국인이 재난영화를 볼 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을지라도, 세월호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 저 말을 한 관객 40대쯤 돼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억울한 표정이었다. 저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했냐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관객들의 반응을 제일 열심히 관찰하려고 했다. 구하는 이야기를 보는 동세대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 같다. 옆에 앉은 사람은 시종일관 울었고, 누군가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뒤에 앉은 사람은 커플은 아닌 듯한 여성과 남성이었는데, 대화 내용을 엿들어보니 항공대생인가보다. 백석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항공대가 있다. 남학생은 과묵했고 여학생이 말이 많았는데, 이렇게 얘기하더라. "학교에서 배운 내용 다 나왔어!" 그 말이 뭔가 울렸다. 다 나오니, 다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당신이 저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주기를.


누군가 포스터를 세월호 버전으로 만들어놨더라. "난 내가 가진 능력으로 추모를 계속 할 것이다."라고.


세월호 포스터 출처는 여기.


나는 의외로 울지 않았다. 울리기를 의도한 영화가 아니었으니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훌륭한 영화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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