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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20. 2019

소년이 진 책임의 무게

영화 <더 서치> 리뷰


<더 서치>,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1999년 러시아가 체첸을 침공한 2차 체첸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와 평화주의 메시지를 주제로 한 영화. 2014년에 제작됐는데 한국에선 올해에야 개봉됐다. 2014년에 개봉 안 한 이유는 대충 알겠는데, 2019년에 개봉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래로 스포일러 있지만 크게 중요하진 않음.


1.
조금 울었고, 많이 우울해졌다. 작년부터 봐오던 여러 영화들이 전쟁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 영화 보고 나와서는 감정적으로 조금 힘들어 경복궁역까지 걸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앞서의 영화들은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봤고 이번 영화는 극장에서 봤기 때문에 감정이 달랐던 걸까. 역시 잘 모르겠다.



2.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다가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부모를 잃고 소년가장 난민이 된 '하지'가 '캬홀'을 만나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중심이고, 엉겹결에 강제징용되어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몇 차례의 정신붕괴를 겪고 누구보다도 전쟁을 즐기는 군인이 된 러시아 군인의 이야기가 따로 펼쳐진다. (구체적인 줄거리 설명은 따로 하지 않겠다.) 어떻게 만날지 궁금했던 두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의 시간대가 다르다는 반전을 보여주면서 합쳐진다. 하지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부모가 러시아 군인에게 죽임당하는 장면이, 러시아 군인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러한 독특한 형식은 단지 기법으로 소모되지 않고 하나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평화주의로서 페미니즘의 호출이다. 혹은 그 둘의 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의 이야기에서 하지를 돕는 유럽연합 인권위원회 '캬홀'과 국제적십자사 활동가 '헬렌'은 모두 여성인데, 그들은 모두 전쟁에 반대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러시아 군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남성은 처음에는 다소 연약하고 부당한 것에 맞서는 모습도 보이지만, 남성성의 총체로서 병영 생활의 부조리를 끊임없이 겪다가 결국 그것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괴물이 되기를 택하게 된다. 이 주제 대비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발견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보여준다.


3.
이 영화 개봉 당시 평가가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서구권(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제작됐다)의 전쟁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고. 어떤 지점에서 그런 비판이 있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바로 그 서구의 감상적이고 위선적인 태도 자체를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무용함에 대해 영화는 끊임없이 고발한다. 국제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풀릴 일이지만 그렇지 못해 체첸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상징적으로, 캬홀이 유럽연합에서 체첸 사태를 보고할 때 유럽의회 의원들의 태도는 가히 무관심 또는 권태에 가깝게 그려진다.


결국 난민 소년의 마음을 여는 것은 바로 거기에서 함께 고통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따뜻한 관심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이것이 나이브하다면 나이브하겠지만, 내 생각엔 이건 차라리 자조적인 것에 가까워 보인다. 결국 한 아이를 구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인권 활동가들의 자조 말이다.


4.
인상깊은 장면 두 가지. 영화에서 내내 감정을 숨기던 하지는 몇 차례 우는데, 돌아보면 모두 자기가 버리고 온 동생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때였다.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자신의 책임에 대해 상기하고 또한 그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강하게 느낀다. 중반부까지 아이의 침묵은 죄책감의 무게에 짓눌린 결과로 읽힌다.


하지가 결국 마음을 열고 캬홀에게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장면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하지는 자신의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부터 이야기를 꺼내고 어떻게 난민캠프에 와닿았는지로 이야기를 닫는다. 모두 듣고 캬홀이 이렇게 묻는다. "그거 말고, 네가 그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궁금해. 부모님과의 추억이라든지." 하지는 짧게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이 죽은 순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5.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을 몇 개 살펴보다 이런 걸 봤다. "2014년 영화를 왜 지금 개봉했는지 모르겠다. 아까운 주말 버렸다." 영화가 맘에 들지 않은 것이야 취향의 문제이니 도덕적으로 재단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 영화의 주제의식 어디에도 2014년에만 한정될 구석이 없는데 저렇게 얘기하는 건 어떤 무관심으로 가능한 것인지 조금 궁금했다. 이것은 러시아와 체첸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곳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쟁과 난민과 국제사회의 무관심은 지금도 온갖 곳에서 반복되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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