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Jan 27. 2019

레바논 빈민가의 속살

영화 <가버나움> 리뷰

<가버나움>, 일산 CGV. 정말 마음이 힘든 영화라서 무슨 말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불행한 삶을 사는 소년이 그의 부모를 자신이 태어나게 한 죄로 고소한다'는 독특한 시놉시스로 홍보되었지만, 정작 이 영화는 레바논에서 살아가는 빈민들과 난민들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 러닝타임의 80% 가까이를 할애했다. 즉 이 소년이 왜 부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줄 뿐이고, 법정 공방의 과정이라든지 고소의 결과라든지 하는 부분은 생략됐다.

이 영화가 순차적으로 조명하는 주제들은 이렇다. 조혼 풍습의 야만성, 불법체류자-싱글맘의 위태로운 일상, 졸지에 젖먹이 동생을 부양하게 된 소년 가장의 축축한 생존투쟁, 빈곤하게 태어났기에 빈곤하게 살아가야 하고 자신의 태어남조차 증명할 수 없는 유령들의 삶.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주제들이 아닌데, 영화는 이 주제들을 정말이지 날 것 그대로 다루면서 '레바논 빈민가의 속살'을 폭로한다.

연출이 이러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계도 나타난다. '레바논 빈민가의 바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관객들은 저들이 '어떻게' 힘든지는 처참할 정도로 잘 알게 되지만, '왜' 힘든지는 도무지 알기 어렵다. 모든 영화가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던지지 못한 까닭에 결과적으로 '부모의 책임'에 이야기의 방점이 찍히게 됐다. 만약 이것이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라면 정말 화났을 텐데, 레바논에서 제작한 영화라서 조금 찝찝한 정도로 그쳤다. 서구의 책임을 조명하는 것은 서구의 일이니. (이 영화에서 백인들은 단 한 장면 등장한다. 감옥에 갇힌 불법체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문공연 온 선교집단으로.)

그래서 굳이 평을 하자면 영화 자체가 훌륭하다고는 못하겠다. 칸 영화제에서 최장시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는데, 그것은 영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라기보다 서구 지식인들의 오만한 자책감에 가까웠을 것 같다. 물론 영화는 꽤 아름답다. 촬영기법도 독특한 편이고, 무거운 내용이 멈춤 없이 이어지는데도 끝까지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재주를 발휘한다. 특히 삽입곡들이 정말 아름다워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끝까지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첨. 이 영화가 정말 훌륭한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 바깥, 그리고 영화 이후의 일들 때문일 테다. 이 영화에 나온 소년 소녀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불법 체류 여성을 연기한 배우는 모두 레바논에서 살아가던 시리아, 케냐, 나이지리아 난민들이라고. 영화의 성과로 그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감독과 제작진이 '가버나움 재단'을 만들어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 관한 내용은 영화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자막으로 올라와 알게 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게 한국에서만 특별히 올라온 자막으로, 원래 영화엔 포함돼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한다.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한 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내용을 특정 국가에서만 삽입함으로써 극장을 나서기도 전에 영화가 도구화되는 걸 바람직하게 볼 수 있을까. 첫 연기임에도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들인데 극장을 나서기도 전에 관객들이 이들을 배우가 아닌 난민으로 인식하게 됐다면, 그건 감독이 이 배우들을 쓴 의도와 배치되는 건 아닐까. 뭐 그런 고민들.


매거진의 이전글 소년이 진 책임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