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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24. 2016

2011년 2월의 메모

이것은 고작 학부 4학기를 마친 얼치기 정치학도였던 2011년 2월에 남긴 '개헌론'에 대한 글. 상황도 많이 바뀌었고 내 생각도 조금 바뀌었을 테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여전히 그대로. 스터디에서 개헌론을 발제하기로 했으니, 정리해보고 바뀐 생각을 다시 남길까 싶다. 



1.

지금 '개헌파'의 중심은 친이계다. 중심이라는 것은 '개헌을 할까 말까' 수준이 아닌, '어떤 조항으로 고칠까'를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활성화되면 헌법은 친이계가 원하는 형태로 개정될 것이다. 이게 문제다.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문제고, 고쳐도 문제다. 지금 헌법이 여러 문제를 낳기 때문에 고치지 않으면 문제고,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는 철학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도 문제다. 

 친이계의 개헌 논의가 어떻기에? 개헌을 하자고 외치는 명분이 일단 문제다. '개헌 전도사' 이재오의 말을 보자. "청렴 공정사회의첫번째조건은부정부패척결이라고국민들은믿고있습니다국민들은권력층과지도층이부패하였다고믿습니다절대권력은절대부패합니다청렴공정사회를위해서는권력이분산되어야한다고국민은믿습니다분권형대통령제로개헌해야합니다" (띄어쓰기를 하면 안 된다.) 즉, 이재오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럴까? 정말 통치 체제가 부정부패를 만드는 원인일까? 

 결론을 위해 논리를 갖다 대는 '비과학'말고, 우리 사회'과학'을 해보자. 대통령에 권한이 너무 집중된 나머지 부정부패가 만연한다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원내각제에서는 부정부패가 없는가? 아마 우리에게 부정부패로 가장 익숙한 나라는 일본일 거다. 관료 부패, 정치 부패, 아마쿠다리, 포크배럴…. 우리에게 일본은 부패의 온상이다. 그런 일본은 대통령제일까? 메이지 유신 이래 의원내각제였다. 물론 예외적 경우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국가들이 대체로 부패하다는 통계 또한 어찌 보면 거대한 예외 현상이다. 왜? 대통령제이면서 부패했던 국가들을 들자면 남미나 아프리카 등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부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쿠데타 군부가 통치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부정 부패는 내가 볼 때 여기서 비롯된다.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다. 

 좀 더 보편적인 부정부패는 차라리 선거 제도에서 발생한다. 의원내각제 일본과 대통령제 한국의 접점은 선거 제도다. 양국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다(일정 비례제가 있긴 하나, 큰 비중은 단순다수제에 있다). 즉 지역구에서 정당보다는 인물에게 표를 던지는 형태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당선을 위해 거시적 정책보다는 지역 이익을 위한 정책(포크배럴)이 중요해진다. 형님 예산이니 하는 자원 낭비가 발생하고, 이 예산을 끌어 오는 과정에서 부패가 발생한다. 지역구 투표에 따른 지역주의 경향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다.


요컨대 부정부패 문제의 원인은 통치 체제보다는 선거 제도에 있다. 이런 인과관계를 떠나 생각해봐도, 개헌의 목적이 부정부패의 척결에 있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아이디어다. <진보집권플랜>에서 조국 교수가 주장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엄격한 기관을 만드는 것이 차라리 부패 척결에 유리하다. 개헌은 ㅡ특히 통치체제와 관련될 때ㅡ 그보다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이냐'는 정치철학의 문제로 논의돼야 한다. '대통령제를 통해 좀 더 안정된 통치를 하는 것이 유리한지, 의원내각제를 통해 좀 더 유연한 통치를 하는 것이 유리한지'와 같은 정치 철학 말이다.


2.

민주당은 '당연히' 반대한다. 친이계의 개헌 논의가 '어떠어떠 해서'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개헌 논의를 논의하자는 것, 그 자체에 반대한다. 요인 즉슨 '다른 일들 바쁜데 어떻게 지금 개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정략적 개헌 논의는 나중 일이고, 일단은 산적한 민생 문제들을 풀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전 정권에서 한나라당이 이미 써먹은 논리 아닌가. 그때도 '다른 일들 바쁜데 어떻게 지금 개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하고 딴죽걸지 않았나. 그런 한나라당의 친이계가 개헌하자 나서니, 민주당은 뭐라고 답하겠나. '우리 땐 반대해놓고 이제와 어떻게 찬성할 수 있나.' 아마 다음 정권 때, 누가 집권할지는 모르겠으나, 개헌 얘기가 나오면 마찬가지 논리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민주당은 이렇게 전개될 것을 이미 안다. '필요성은 인정하나 나중에 하자'고 말하면서도 나중에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민주당의 개헌 반대는 다음 정권, 다다음 정권에서 민주당이 개헌을 이야기할 수 없게 하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민주당은 왜 반대할까? 아마 지금이 '반이명박'을 외칠 수 있는 적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집권 4년차, 레임덕이 오는 시기 아닌가! 예산안 날치기 파동과 잇따른 인사 실패, 그에 따른 당내 반란, 가히 국난이라 할 수 있는 구제역, 여기에 과학벨트 공약 파기까지. 민주당에게 최고의 시기인데 개헌 논의 따위로 이 국면을 놓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성격과 역할은 역사적으로 '반대'로 규정됐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최대 목적은 집권 탈환일 뿐이다. 정치 철학 따위 없다. 그러니 진정성 드립이나 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면서, 그거 내부 고발 아니냐?', '정말 개헌하고 싶으면 스스로 임기 단축하시지', '한 번 더 해먹고 싶어 그러는 것 아니냐.' 딱히 틀린 말은 없지만 이 논리들이 '개헌 반대'로 귀결될 수는 없다.


3.

그러나 진보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나. 앞서 #1에서 "지금 헌법이 여러 문제를 낳기 때문에 고치지 않으면 문제고,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는 철학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다. 원하는 대로 고치는 것이다. 적기는 지금이다. 한나라당은 고사하고 친이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지금, 오히려 진보가 전면에 나서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 어떨까? 


 진보는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양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그 수단으로서 개헌 논의를 이끌자는 뜻이다. 현재 헌법과 선거 제도는 진보의 성장을 억누르고 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이 두 제도가 공고히 결합해 하나의 벽을 이루고 있다. 

 5년의 임기와 대통령제는 딱딱하다. 대통령은 5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의회가 탄핵소추권을 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절차가 까다롭고 (대통령이 어지간히 삽질을 하지 않고는) 명분을 쉽게 찾기 힘들다. 행정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의회는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을 뿐이며, 대통령은 의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원리에서 개혁 세력의 오랜 논리적 공격이 탄생한다. "또 이명박 같은 5년을 지낼 생각이냐!" 하루 투표가 5년을 결정 지으니까. 상대적으로 먼저 몸집을 불린 개혁 세력의 '비판적 지지' 공격은 역사적으로 큰 힘을 발휘해왔고 약소한 진보 세력은 속수무책으로 깨져왔다.

 첨언이지만, 대통령제는 한국의 상황과도 잘 맞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까지(순종이 1926년 물러났다) 왕을 모셨으며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라는 독재적 대통령들이 통치했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왕' 보듯 바라보며, 심지어 자신을 '백성'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당선되며 '국민의 종'이 되겠다 하는데, 주인이라는 국민이 종이라는 대통령을 '왕'으로 여기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러니 당연히 '제왕적 대통령'이 등장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명박이 문제다' 이런 식의 비난들은 제왕적 대통령의 반영이다. 과거 왕조 때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왕'의 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4.

 여기에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결합한다. 이 제도는 정당 구조를 양당으로 초래한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뒤베르제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정치학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법칙이다. 즉, 단순다수제는 양당으로 수렴되며 비례대표제는 다당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단순다수제를 택하고 있어 각각 자민당-일본민주당, 공화당-민주당의 양당 구도를 보인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한나라당-민주당의 양당제 구도를 보인다. 이 법칙은 단순다수제가 '사표'를 필연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성립된다. 소수 정당에 투표할 경우 사표가 될 것이며, 따라서 가장 거대한 두 정당에 표가 몰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점차 양당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는 여기서도 힘을 발휘한다. 더불어 한국적 지역주의 현상은 진보를 고립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영남은 한나라당, 호남은 민주당이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는 유권자의 절반 가량을 잃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진보 세력은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자유롭게' 성장할 수 없으며, 언제나 개혁 세력에 양분을 빼앗기며 조금씩 자라왔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자.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줄로 요약하면: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 참여하는 대가로 선거 제도 개정을 얻어내야 한다. 군소 세력을 이루는 진보 세력이 어떻게 집권 여당의 다수파에게 정치적 거래를 제안할 수 있을까? 꿈 같은 얘기일 수 있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친이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명분이다. 정략적 의도가 아니라는 명분. 보수의 대척점인 진보가 논의에 참여하면 그 명분이 더해지지 않겠나. 진보의 세가 크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들이 고립된 상황에서 역으로 민주당을 고립시키는 구도가 형성되니 꿩 먹고 알 먹는다. 

 진보가 개헌 논의에 참여한다면 의원내각제를 적극 주장해야 한다. 앞서 대통령제가 어떤 식으로 진보 세력을 압박하는지 설명했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어줍잖은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닌 제대로 된 의원내각제다.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택한 나라들의 역사를 여기서 길게 살피긴 귀찮으니 대개 그 결과가 '약한 총리 강한 대통령'으로 수렴됐다는 정도만 말해두자.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은 의전적 역할로 제한하고(분단이라는 상황 하에서는 의전적 역할도 충분히 의미있다)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 중심의 의원내각제가 진보의 대안이다. 또 집권하지 못해도 의회 내에서 민주 세력과 '연정'을 이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형태의 단일화에 비해 연정은 훨씬 유연하기 때문에 민주 세력이 진보 세력에게 '비판적 지지'를 강요할 일도 없다. 한 번의 선택이 족쇄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대통령제에 비해 내각에 책임을 묻기 쉬우니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있다.


5.

 친이계도 의원내각제를 불편해 할 것 같진 않다. 그들이 애초 개헌 논의를 꺼낸 까닭을 사람들은 레임덕 타개 혹은 박근혜로의 권력 교체 후 친이계의 안전 모색으로 분석한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의 말이다. "행여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승자 독식의 관행에 따라 친이계가 권력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정치적 곤경에 처할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분권형 개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앞의 경우ㅡ레임덕 타개ㅡ라면 분권형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차이가 없을 것이고, 뒤의 경우ㅡ박근혜 견제ㅡ도 마찬가지다. 친이가 친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오히려 의원내각제가 훨씬 유리하다. 극단적인 경우에 친이가 야당과 제휴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의원내각제에서는 내각 불신임안 이후 집권당내 경쟁을 통해 수상만 교체한다. 총투표를 다시 하는 경우는 의회를 해산하는 경우).

 이 논의를 바탕으로 헌법을 넘어 선거 제도 개정을 노리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현재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 진보 세력이 주장할 수 있는 선거 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가장 유리하다.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로 수렴되고, 이때라야 진보 세력은 영향력 있는 토양을 확보할 수 있다. 케케 묵은 사표 논리는 무력화되고, 2004년 처음 비례대표가 도입됐을 때 진보 정당이 보여준 센세이션이 다시 부활한다. 지역주의도 깨어질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이렇게 진보 정당에 유리한 제도를 보수가 받아들일까? 그럴 수밖에 없다. 마침 이재오가 한 말이 있다. "현재의 지역구를 조정하는 방법보다는 독일식의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하면 된다" (이재오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해야') 언젠가 트위터에서 그는 지난 날 정치인들이 개헌에 찬성하는 발언들을 끌어와 개헌의 필요성을 긍정한 바 있다. (링크) 그렇다면 그 역시 이 '공약'을 부정할 수 없다. 민주당 내에서도 찬·반으로 의견이 갈려서, 독일식으로 개정하는 데 우군이 제법 된다. 


 자, 이제 긴 글을 마쳐야 한다. 개념들을 설명하느라 늘어졌기 때문에 다시금 요약해보자. 진보 세력은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 협조해 선거 제도 개정을 얻어내야 한다. 개헌은 의원내각제로 방향을 잡고, 선거 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진보 세력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건질 수 있다. 제도 개혁을 쟁취하면 먼저 진보 세력의 목표는 '집권'이 아닌 '캐스팅 보트'가 돼야 할 것이다. 최소 20% 의석을 차지하면 보수도, 개혁도 진보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집권을 위해 진보 세력과의 연정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어설픈 야권단일화는 필요없다. 개혁 세력의 '비판적 지지' 호소에 진보 세력이 희생해 온 지 너무 오래됐다. 이제 역사가 주는 교훈을 배워야 할 것 아닌가? 개혁 세력과의 '연합'은 진보 세력을 물로 보지 않을 만큼 진보 세력이 강해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진보 정당들에게 요구하고 싶다. 친이계의 개헌 논의를 진보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라!



* 소선거구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1명의 당선자를 낸다. 중선거구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다수의(전부는 아닌) 당선자를 내는데, 지방선거에서 시·구의원 선출이 바로 중선거구 방식이다. 대선거구는 출마한 후보 전부가 당선된다. 이 경우 선거의 범위에 따라 선거구의 크기가 결정되는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는 나라 전체가 선거구이며,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는 지역 단위가 선거구다. 단순다수제는 그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표를 많이 받는 사람이 당선되는' 제도다. 2등보다 1표라도 더 받으면 당선이다.

** 양당제라고 해서 정당이 단 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공산당이 나름 건재하다. 양당이냐 다당이냐를 나누는 것은 '집권 가능한' 정당의 수를 기준으로 한다.

*** 물론 울산은 예외 지역이다. 또 지난 재보선 광주에서 민노당의 위협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광주에서 선전했던 건 한나라당이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대안 세력은 진보정당이 아닌, 한나라당이라는 말이다.


****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가 병행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한국은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전체 299석 중 정당 투표가 차지하는 의석이 54석이다. 비율상으로 18%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전체 480석 중 정당 투표가 180석을 차지해 37.5%다. 독일의 경우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가 각각 50%씩 차지하지만, 실상 정당 투표 100%다. 한국, 일본과 달리 독일은 정당 투표와 지역구 투표가 연관돼있는데,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먼저 정당 투표에서 결정된 비율만큼 정당들에 의석이 할당된다. 지역구 당선자들이 먼저 이 의석을 차지한다. 그 다음 남는 자리에 비례 순번에 맞춰 당선자들을 배분하는 형식이다. 즉 지역구는 '누가 국회의원을 하냐'를 결정짓지, '얼마나 의석을 차지하느냐'를 결정짓지는 못한다. 비례 투표로 의석을 결정짓기 때문에 사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단, 5%조항이라고 해서 정당 투표에서 5% 이상을 받지 못한 정당은 한 석의 의석도 얻지 못한다. 이는 극우·극좌적 혁명정당의 의회 진입을 막기 위함). 또한 지역구 투표로 당선자를 먼저 정하기 때문에, '누구를 뽑을 것이냐' 하는 민의도 대변한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이러한 점에서 현존하는 가장 민주적인 제도로 평가된다.

***** 처음부터 '토양', '양분'이라고 표현한 것을 알아달라! 제도 개혁은 성장의 '바탕'을 제공할 뿐이라는 뜻이다. 그 바탕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뤄내는 것은 제도를 통해 기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세력이 개혁 세력과 확실히 단절하여 대중이 표를 던져줄 만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때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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