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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Nov 10. 2016

최순실 게이트, 헌법의 실패다

스터디에서 쓴 글. 1200자 제한 때문에, 전공분야임에도 구체적으로 적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적자면 논문을 써내려야 할 것.



역대 정부의 개헌론은 늘 임기 말 ‘정국 전환용 히든카드’였다. 박근혜 정부의 개헌론도 그리 다르지 않았고, 언제나처럼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개헌론 카드가 실패한 바로 그 지점에 역설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이 도사리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지만,한편으로 대통령제의 예정된 실패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순실 게이트는 시스템의 오작동 때문일까. 다시 말해, 기록물 유출을 방지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등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JTBC>의 보도 이전,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정황보도의 진위를 묻는 질문에 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청와대 시스템을 안다면 그 말을 절대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시스템을 알기에 확신에 차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틀린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청와대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연설물이 유출됐고 비선 정치가 이뤄졌다.


대통령제는 이 실패를 예정하고 있는 체제다. 대통령이 원한다면 청와대 시스템 정도는 쉽게 우회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우회가 조직적으로 발생해도 아무도 감히 항명하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까닭이다. 대통령제의 실패는 여기서 발생한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는 시스템의 오작동이라기보다, 대통령제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오히려 개헌의 필요성을 확인했다는 것은 그래서다.


개헌의 방향은 분명하다. 87년 헌법 이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부가 ‘제왕’으로 시작해 ‘식물’로 끝났다. 여대야소일 때는 정부가 독주했고,여소야대일 때는 정부가 마비됐다. 이 양극단에서 숱한 갈등으로 사회동력을 깎아온 게 한국 헌정사다. 그러므로 87년 헌법을 개정한다면 그 목적은 유연성과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최고 권력자를 정국에 따라 유연하게 교체할 수 있고, 또 다양한 정당들이 타협을 통해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지금은 개헌이 시도돼선 안 된다. 유린당한 현행 헌법이 정상화된 뒤, 정국이 안정적일 때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회의체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개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너무 늦지 않게 논의 공간이 열릴 수 있도록 서둘러 거취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애국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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