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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pr 16. 2017

<송곳>의 말: 조직, 운동, 협상

웹툰 <송곳>은 이수인이 완전한 제로 베이스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이야기다. 이 각각의 설정들은 수많은 통찰을 가능케 한다. 예컨대 이수인은 군인 출신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다소 무감각하고, 그 자신은 원칙적이고 경직돼 있는 사람이다. 현실적이고 목적지향적인 구고신은 이런 이수인을 바꿔나간다. 원칙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경직이 어떻게 해로운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무엇인지를 얘기해준다.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하는 현장은 바로 그 평범한 중년의 여성들이 즐비한 마트다. 이들을 설득하는 언어는 대학이나 공장에서 쓰이는 언어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또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협상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대한 함축적인 대사들이 나온다. 대사 하나하나가 일종의 운동론이고 조직론이고 협상론인 셈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사진들은 웹툰 캡쳐. 맨 아래는 단행본 캡쳐.




1.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아주 유명한 대사다. 말 자체는 일반적이라서, 맥락을 이탈해서 제멋대로 해석되곤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맥락을 고려하면 예컨대 김문수 같은 거다. 한때 투철한 재야의 노동운동가였으나 기성정당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아주 빠르게 기득권의 논리를 체화한 사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핵심은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다. 운동에 몸을 담근 사람은 자기가 언제까지고 투쟁적일 거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서는 데가 바뀌면 너무 쉽게 관점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건 끝까지 투쟁하라는 뜻이 아니다. 언젠가 당신이 서는 데가 바뀌었을 때, 이전에 봤던 그 풍경을 잊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계속 깨닫게 하라는 뜻이다.



2.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어떤 것이 옳다는 이유만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물론 '가진 자'들이 옳은 것에 기꺼이 자기의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갖지 못한 자들,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모아 그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게 할 때, 가진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존중을 보이면서 대화를 시도해온다. 요즘 대학 내 학생회들의 행동에서 가장 답답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인데, 학교본부를 '선의를 가진 협상 대상자'로 상정하고, 그들 자신은 '학교본부만큼의 권리를 가진 협상 주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아니다. 학교본부는 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해도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협상 테이블은 결코 평평하지 않다. 협상력은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두려움의 크기와 비례하는 법이다.



3.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다."


이 말도 정말 좋아한다. 이른바 운동하는 사람들이 곧잘 빠지는 함정 중 하나다. 자신이 대변하거나 조직하는 사람들이 운동의 지향과 맞지 않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쉽게 그들을 혐오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왜 운동하나. 무엇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무엇을 위해 운동하는 거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 말이 정말로 정확한 것은 강자 또한 '시시하다'고 하는 지점에서다. 약자도 강자도 시시하다. 사실 시시하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한, 운동하는 당신은 시시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 같지 않다.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종종 운동하는 사람들도 시시하다. 발전하는 사람과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4.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그게, 그렇더라. 옳은 사람이 되어 옳은 말 하면 들어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더라. 위에서 얘기했지만, 사람들은 정말 대체로 시시하거든. 그러니까 이 말은 시시한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접어두고 그렇다는 것이다. 당연히 옳은 것은 옳은 사람의 옳은 말을 듣는 상황이지만. 당장 눈앞의 상황을 바꾸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이 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운다."


왜 운동하냐, 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빼앗겼으니까. 맞았으니까. 뭘 대단한 명분이 있어야 화내고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명백히 빼앗기고 얻어 맞아도 그게 화를 내거나 싸워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또는 빼앗기고 얻어 맞는 걸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거나.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워야 한다. 살아있는 인간이니까. 예컨대 대학에서, 학교본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학생의 입장에서 '빼앗긴' 거다. 뭐를? 주권을. 존재를. 결정의 내용도 화를 내야 할 일이지만, 일방적으로 했다는 그 자체도 싸워야 할 일인 것이다.



6. "너무 위대해지지 맙시다."


당신이 어떤 조직의 리더라면 말이다. 번아웃을 경계하라. 고립을 경계하라. 동료들에 대한 피해의식을 경계하라. 위대해지지 말자. 당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당신을 갈아 넣어서야만 유지될 수 있는 조직과 운동이라면 진작에 파산해야 하는 조직과 운동이다. 당신을 갈아 넣어서 잠깐 성과는 낼 수 있어도 어차피 더 오래 지속될 수는 없으니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한두 번 성과 위해 운동하는 것 아니라면 너무 위대해지지 말자.



7. "잘 날 기회를 주고, 믿어. 그럼 나아져."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신봉하는데, 송곳의 이 말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이 말은 술을 좋아하는 노조원에게 도리어 술 상자 맡기는 역할을 맡긴 다음에 하는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얼마나 믿어주는가, 그 자체가 그 사람에게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고신의 말처럼, "못났다 할수록 더 못나고 싶은 게 사람"인 것 같다.



8.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한 방에 승리할 전술을 찾으면서 끊임없이 싸움을 보류하는 경우가 많(그리고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 협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고, 요구해보지도 않고 먼저 요구안의 수위를 조절하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전술로는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한계가 명확한 것. 싸우고, 경계를 확인하고, 조금씩 나아가고, 다시 싸우고, 다시 경계를 확인하고, 전보다 조금 더 나아가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현실의 싸움이고 협상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해야 비정규직 차별 완화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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