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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25. 2018

<코스모스>

썼던 리뷰 모아두기

1.

2014년 리메이크된 NGC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기 시작했다. 1980년에 처음 제작된 <코스모스>의 진행자는 잘 알다시피 칼 세이건이었다. 2014년의 진행자는 닐 타이슨. 칼 세이건과 마찬가지로 천문학자이며, 칼 세이건과 마찬가지로 대중활동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1958년에 태어나, 처음 <코스모스>가 방영될 즈음에는 22살의 청년이었다. 한 세대가 흘러 이 사람이 새로운 <코스모스>의 진행을 맡았는데, 1화 막바지에 칼 세이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과학자였으며, 또한 대중과 어떻게 소통했는지를. 그러고는 가방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뿐이 아닙니다. 칼 세이건이 1975년에 사용한 수첩입니다. '닐 타이슨과 약속.' 바로 접니다. 그때 전 열일곱살이었고,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천문학자가 저를 초대해 토요일을 함께 보낸 겁니다. 눈 내리던 그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류장에서 칼 세이건을 만나 연구실에 구경을 갔죠. 그는 책상에서 책을 꺼내 이 글을 적어줬습니다. '미래의 천문학자 닐에게, 칼로부터.'



나중에 그가 정류장까지 바래다줬는데, 눈이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그가 쪽지에 집 전화번호를 적어줬죠. 집에서 하룻밤 재워줄 테니, 버스가 가다가 멈추면 전화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전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그 날 깨달았습니다.

저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과학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칼 세이건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과학은 몇 세대에 걸친 협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다시 스승에게 횃불을 전달하는 일이죠. 고대 기록부터 별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우르는 생각의 교류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쬐끔 울어버렸다.


2.

<코스모스> 4편. 빛과 시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밤하늘의 유령"이라는 부제로 풀어가는 화다. 빛은 가장 빠르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그보다도 더 멀리 지구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바라보는 저 별들은 이미 죽고 없어진 일종의 유령이라는, 이제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로 에피소드를 연다. 이어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같은, 역시 <인터스텔라> 이후에 그리 낯설지 않게 된 개념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언젠가 빛만큼 빠르게 달리게 되어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을 던지면서, 1975년 12월 뉴욕의 눈 오는 버스정류장을 보여준다. 1편 마지막에 나왔던 그 얘기, 열일곱의 닐 타이슨이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만나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생각하게 됐다는 장면이다. 짤막하게 그 장면을 보여준 뒤 닐 타이슨의 마지막 말이 이어진다. "별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별들은 여전히 우리를 비춥니다." 정말이지... 너무 좋다...


3.

<코스모스> 오프닝을 다섯 번째 보니까 제작진이 숨겨놓은(?) 것이 보인다. 캡쳐한 장면은 COSMOS라는 타이틀이 저 눈처럼 생긴 블랙홀에서 나오는 튀어나오는 장면이다. 다소 부자연스럽게도, 첫 글자와 끝 글자인 C와 S가 먼저 나온 다음에, 좌우로 벌어지면서 COSMOS라는 글자가 펼쳐진다. 이 부자연스러움이 자꾸만 거슬렸는데, 다시 CS라는 단어를 보니까 뭐가 생각났다. Carl Sagan. 그의 이니셜. 곳곳에 칼 세이건에 대한 존경을 심어놓은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매일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편씩만 아껴 봐야지.



4.

<코스모스> 9화째 보고 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의 화법이 좋다. 과학의 발전과 논쟁과정을 다룰 때, 기존의 잘못된 상식을 믿는 과학자들과 새로운 이론을 제기한 과학자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 늘 나온다. 이때 <코스모스>는 앞의 과학자를 조롱투로 얘기하지 않는다. 당시의 과학적 상식에서는 그렇게 얘기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얘기한다. 새로운 이론을 대담하게 제기한 과학자가 훌륭한 거라고 얘기한다. 새로운 이론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을 때, 자신의 지난 의견을 담담히 수정할 줄 아는 과학자를 치켜 세운다. 끝내 자기의 상식을 포기하지 않은 과학자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비난하고 심판하는 말과 이해하고 격려하는 말 가운데 무엇이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 감응하게 할지를 생각한다.


5.

<코스모스> 다 봤다! 아름답고 위대한 다큐멘터리. 모두 죽기 전에 한번씩은 꼭 보자. 마지막 화 마지막 시퀀스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정리.

"어떻게 저 먼지 위에 사는 작은 생명체인 우리가 은하수의 별들 속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낸 걸까요. 우주의 시간으로는 찰나에 불과한 몇 세기 전,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나머지 코스모스에 대해 모르는 채 감옥에 살았던 셈입니다. 껍질에 쌓여있는 작은 우주였죠. 우린 어떻게 그 감옥에서 탈출했을까요? 다섯 개의 단순한 규칙을 가슴에 새긴, 몇 세대에 걸친 탐구자들의 업적 덕분이죠.

권위를 의심하십시오. 저를 포함해 누군가가 말했다는 이유로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세요. 자신을 의심하십시오. 믿고 싶다는 이유로 뭔가를 믿어선 안 됩니다. 진실을 만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죠. 관찰과 실험에서 얻은 증거로 생각을 검증하십시오.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잘 설계된 검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틀린 겁니다. 증거가 이끄는 곳으로 어디든 따라가십시오. 증거가 없다면 판단을 보류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규칙은 이것일 겁니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훌륭한 과학자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뉴튼,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자들 모두 실수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그들도 인간이니까요. 과학은 자신을, 또 서로를 속이는 걸 방지하는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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