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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Mar 24. 2023

그릭십자가 속 감춰진 비밀

9/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요르단편-4)

   만일 ‘그릭십자가’가 기독교 상징과 전혀 관계없는 별개의 계보를 가졌다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다른 무언가를 상징했던 거라면? 그런 의문이 든 건, 이란 쉬라즈에 있는 한 유적지를 여행하고부터다.      


   쉬라즈 외곽, 페르세폴리스 유적에서 서북쪽으로 약 6km를 더 가면 낙쉐 로스탐(Naqsh-e Rostan)으로 불리는 네크로폴리스(묘지)가 있다. 페르시아 최초의 아케메네스 왕조(BC559∼BC330)를 다스리던 쟁쟁한 황제들이 잠든 곳이다. 바빌론유수에서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키루스 2세(성서의 고레스왕)가 왕조를 개창한 이후 왕조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다리우스 1세와 2세, 크세르크세스 1세 등 무덤 4기가 있다. 


   다리우스 1세는 고대 그리스와 두 차례 전쟁을 일으켰다.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면서 유럽 정벌에 실패했지만, 인도 북부에서부터 불가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영화 <300>에서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던 그분 맞다. 비록 델피의 아폴론 신탁을 받은 그리스인들과 맞붙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며 체면을 구겼지만 말이다.          


(사진2-9. 낙쉐 로스탐 ©이경석) 

 

   그런데 무덤 형태가 굉장히 독특하다. 이집트 왕가의 계곡처럼 수직 절벽에 굴을 파서 가족묘를 조성했다. 절벽에는 아후라 마즈다가 황제를 축복하는 모습이나 공물을 바치는 제후국 사신들을 부조로 새겼다. 그런데......부조를 새기기 전, 절벽 표면을 편평하게 고르기 위해 특정 문양으로 다듬었다. 그 특정 문양이 놀랍게도 십자가다! 


   가로와 세로 길이가 정확하게 같지 않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릭십자가’가 분명하다. 압도당할 만큼 엄청난 크기의 십자가 4개가 절벽에 도열해 있는 모습을 여기서 볼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예수가 태어나기 400년도 더 전에 ‘그릭십자가’가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하던 지역에서 종교(제례)적으로 사용됐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릭십자가’의 원형으로 통상 소환되는 게 고대 이집트의 앙크 십자다. 이집트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에서 ‘생명’ 혹은 ‘부활’을 뜻하는 앙크 십자가는 오시리스가 왕권을 맡기며 파라오에게 건네주는 세 가지 물품 중의 하나였다. 파라오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주는 징표인 셈이다. 그렇게 보면, 페르시아 황제의 부활과 영생을 바라며 무덤에 ‘그릭십자가’를 새겨넣은 것이 결코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진2-10. 이집트 아비도스 신전의 벽화 일부, 하토르 여신이 파라오의 코에 들이밀고 있는 게 앙크십자가 ©이경석)


카타리파와 조로아스터교     


   낙쉐 로스탐 이후 1,500년이 지난 십자군 시대에 ‘그릭십자가’는 프랑스 남부에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엄청난 파란을 몰고 왔다. 


   때는 바야흐로 1차 십자군이 성공리에 전쟁을 마무리할 무렵이다. 1차 십자군에는 왕보다는 제후들이 주로 참전했다. 애꾸눈으로 유명한 툴루즈 백작 레몽 4세,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그리고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가 주인공이다. 1099년 예루살렘 탈환 이후, 십자군은 예루살렘 땅을 어떻게 실효 지배할지 고민한다. 결국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기로 하고 성묘교회에 모여 왕을 선출한다. 


   당초 가장 강력한 후보였고, 본인도 초대왕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이가 레몽이었다. 하지만 고집이 세서 전투를 몇 번 그르친 후로 동료들의 신망을 잃은 터라, 정작 왕위는 고드프루아에게 돌아갔다. 이에 레몽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고, 트리폴리(현재 레바논)를 공략하다 1105년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이 무렵, 레몽의 영지였던 프랑스 남부에서 옥시타니아 십자가가 불현듯 등장한다. 역시 변형된 ‘그릭십자가’다. 그러다가 1165년 툴루즈 백작 레몽 5세가 공식 사용하기 이르렀는데, 공교롭게 1167년 툴루즈 인근에서 자체 공의회를 열며 카타리파가 존재를 드러낸 시기와 겹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옥시타니아 십자가가 카타리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사진2-11. 옥시타니아 십자가)


   카타리파는 이원론을 주장한 기독교의 교파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뉘는데, 영적 세계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선이며, 물질세계는 악으로 규정했다. 당연히 금욕해야 구원받는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육신과 관련된 결혼, 출산, 성생활은 물론, 육식 등 생활습관까지 죄악시했다. 이쯤 듣고 나면 프랑스와는 전혀 상관없을 듯 지리상으로 멀리 떨어진 동방의 한 종교가 오버랩된다. 역시 조로아스터교다.


   이집트 아케나텐 이후 인류사에 다시 등장한 유일신교이기도 한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큰 특징이 이원론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봉하는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선과 악의 두 가지 면이 모두 존재하며 이 둘 간에 끝없는 투쟁이 벌어진다고 가르친다. 선과 악의 대립구도는 신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도 내재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선과 악의 투쟁이 어떤 결론을 낼지는 각자가 선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게 신이 정해준 숙명에 이미 인생이 결정된 게 아니며, 우리 각자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다니......700년 후의 르네상스를 예견하듯 시대를 앞선 놀라운 교리는 니체를 흥분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의 독일어 이름)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기왕 나온 김에 신비한 종교, 조로아스터교를 살펴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다. 먼저,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을 마기(Magi)라 하는데, 성서에서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와서 예수의 탄생을 축복했던 동방박사가 바로 이들이다. 이 ‘마기’에서 ‘마법사(혹은 예언가, Magician)’와 ‘이미지(Image)’란 단어가 유래했으니 그들은 점성술에 능통하며 상상 속의 능력(혹은 미래의 사건)을 현실화시키는 기적 혹은 예언의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둘째, 흔히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 즉 불을 숭상한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지식이다.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유일신만을 믿는데, 신을 그리거나 성상으로 제작하는 것을 금지했다. 조로아스터교의 유명한 도상인 ‘독수리 날개가 달린 원반 속 사람’을 일부에서는 아후라 마즈다라고 설명하지만, 이 상징은 프라바시(Fravashi)로 불린다. 죽은 후 아후라 마즈다에게 도달하게 되는, 개개인의 영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일신은 어떤 모습일까? 답답한 사람들이 조로아스터에게 물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야 하는 신을 믿는 게 예나 지금이나 평범한 사람들에겐 어렵다. 조로아스터의 대답은 ‘불’이었다. 분명히 존재하는 걸 알지만 만져지지 않고, 전해지는 따스함으로 실체를 느낄 수밖에 없는 불은 신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주는 메타포(은유)였던 것이다. 


   셋째, 사산조를 끝으로 페르시아가 750년간 아랍과 투르크족, 몽골의 지배를 차례로 받게 되면서 조로아스터교는 국교의 자리를 이슬람에 내줬다. 신도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인도로 대거 건너갔다. 같은 교인들끼리 결혼해 지금까지 폐쇄적 공동체를 유지해 온 이들을 파르시(‘페르시안’이란 뜻)라 부른다. 파르시는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IMF 이후 대우 상용차 부분을 인수한 인도의 타타자동차가 파르시 기업이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파르시는 따로 있다. 록그룹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다. 그가 작사·작곡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 남자를 권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엄마에게 고백하는 가사로 시작한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자유로운 록커가 되고 싶었던 그가 파르시로서의 엄격한 전통에 얽매인 자아로부터 탈출하고픈 감정이 투영됐다는 설명이 난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조로아스터교는 장례를 조장으로 한다. 지금도 이란의 야즈드(Yazd)에 조장을 행하던 ‘침묵의 탑’이 남아 있다. 시내 외곽 두 개의 누런 바위산 꼭대기에 각각 여성용과 남성용이 위치한다. 탑 안에 시신을 두면 독수리가 살점을 처리하고 남은 뼈는 탑 가운에 구덩이에 모아두었다고 한다. 죽은 육신이 순수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도록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지 않았다고 하며, 거기에 새가 망자의 영혼을 아후라 마즈다에게 데리고 간다는 종교적 의미까지 덧붙었다. 


   자칫 야만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타협한 결과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나무가 귀하고 사막이 많은 이곳의 건조한 환경에서 시신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묘수일 테니 말이다. (반대로 비가 많은 지역의 문화도 독특하다. 가령, 인도에서 새벽이면 동네 주민들이 공터에 나와 엉덩이를 까고 집단으로 똥싸는 충격적인 광경이 그렇다. 나중에 알았다. 똥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모아놨다가 홍수라도 덮치면 그건 우물의 오염과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진다는 것을. 타지마할은 만들면서 왜 화장실도 없이 지저분하게 사냐고 혀를 끌끌 찰 일이 아니다!) 조장은 최근에 금지되었고 현재는 땅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콘크리트관에 시신을 넣는다.    

         

(사진2-12. 좌: 조로아스터교 본산인 이란 아테슈카데 사원의 프라바시, 우: 침묵의 탑 ©이경석)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의 대결, 천국과 지옥, 바른 생각과 바른 말, 바른 행동으로 대표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인본주의), 그리고 종말론과 구세주 교리까지 철학적, 윤리적 깊이를 두루 갖추고 이 세상이 작동되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개념들은 한참 후에 등장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교리형성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니체도 언급했지만, 그 영향은 종교를 넘어 서양 문명 전반에 걸쳐 있는 듯하다.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입구 근처 교황 줄리오 2세의 개인 도서실(서명의 방)에는 교황이 직접 라파엘로에게 주문한 대작 <아테네 학당>이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약 60명의 고대 학자들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에 천구의를 든 조로아스터가 있다. 가톨릭의 심장 한가운데 조로아스터라니! 


   그로부터 삼백 년 후, 모차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에 짜라스트로(짜라투스트라)를 악의 상징인 밤의 여왕에 맞서는 지혜로운 철학자로 등장시켰다. 그런가 하면 리하르트 스트라우스는 니체에게서 영감을 받아 짜라투스트라를 위한 교향시도 작곡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 조로아스터가 어떠한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사진2-13.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오른쪽 아래 천구의를 든 하얀 옷의 조로아스터) ©이경석)


   그런 조로아스터와 유사한 가르침이 르네상스 훨씬 이전에 이미 옥시타니아에 전파된 것이다. 1차 십자군 전쟁 직후 카타리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데에는 1차 십자군으로 참전한 툴르즈 백작, 레몽 4세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카타리파는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카타리파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기독교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악으로 치부되는 육신으로 세상에 내려왔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즉,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부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예수의 역할은 그동안 비밀로 전수된 지식들을 인간에게 나눠주기 위해 절대신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거라 여겨졌다. 따라서 구원은 그를 믿는 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가능하다고 여겼다.     


   교황청이 발끈했다. 1209년 카타리파를 뿌리뽑기 위해 십자군이 조직됐다. 교화 대신 탄압을 선택한 것이다. 같은 기독교도를 상대로 한 십자군이었다. 이들을 알비 십자군이라 불렀다. 프랑스 남부 알비라는 도시에 카타리파가 가장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결국, 알비 십자군은 카르카손 같은 프랑스 남부 대도시에서 카타리파를 쫓아냈고, 1244년 그들의 최후 항전지(몽세귀르 성채) 점령에 성공했다. 전향을 거부한 200여 명의 카타리파 신도들은 곧바로 화형대에 서야 했다.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진2-14. 카르카손 성채 전경 ©이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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