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에서 마지막 날, 호스텔 주인이 반강제로 틀어주는 <인디아나 존스> 3편을 보다 잠이 들었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언제 봐도 재미있다. 다시 암만으로 돌아와 인근 제라쉬(Jerash)라는 도시유적에 들렀다. 통상 중동의 3대 유적지 하면 요르단의 페트라, 이란의 페르세폴리스와 함께 시리아의 팔미라를 꼽는다. 제라쉬는 규모는 작지만 팔미라를 빼다 박아놓은 듯 웅장해 ‘리틀 팔미라’로 불리는 곳이다.
제라쉬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함께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식민 도시로 건설하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동쪽 변방에 제국을 방어하고 변방 너머 이방인들에게 로마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10개의 거점도시, 데카폴리스(Decapolis)를 지정하였는데 제라쉬도 그중 하나였다.
암만에서 북쪽으로 50km, 시외버스로 1시간 거리에 유적지가 있다. 요르단 제라쉬 주의 주도인데 유적지 위에 주민들이 살고 있어 발굴은 더디기만 하다. 아직도 70% 이상이 미발굴 상태다. 그래도 모래에 파묻혔던 탓에 폼페이처럼 보존상태가 좋다. 발굴된 곳은 고대도시의 중심지역이라 로마의 도시구조를 잘 보여준다.
로마제국의 기본 도시구조는 성벽을 두르고 그 안에 남북방향 대로(카르도)와 동서방향 대로(데쿠마누스)를 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대로를 따라 열주를 배치하는데 현대 가로수길의 원형이다. 대로의 교차점에는 포럼(광장)을 두어 정치적 중심지로 삼고, 포럼 주변에는 바실리카(집회소), 공중목욕탕 등 공공시설을 함께 만든다. 또한 성벽 내 지대가 제일 높은 곳은 종교적 중심지로 조성하는데 주로 주피터(제우스) 신전을 둔다.
제라쉬도 이 법칙을 충실히 따랐다. 가장 메인게이트는 카르도의 남쪽에 있다. 지대가 가장 높은 곳이라 여기엔 제우스 신전 성역이 조성되었고 부근에 타원형 광장을 두었다. 광장을 둘러싼 열주는 상당수가 복원되어 꽤 장엄한데 제우스 신전 뒤편 반원형 극장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이 제라쉬의 상징이다.
성역이 있는 남문의 정식명칭은 ‘필라델피아 게이트’이다.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란 뜻이다. 필라델피아는 그리스어로 형제애라는 뜻인데,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옛이름이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의 부하였던 프톨레미 1세가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었고, 아들인 프톨레미 2세가 암만을 정복하면서 자신의 별칭인 필라델푸스를 도시 이름에 갖다 붙인 것이다. 지금도 요르단에는 필라델피아라는 상표의 맥주를 파는데, 처음엔 미국의 도시 이름을 딴 술을 왜 요르단에서 파는지 의아해했더랬다.
이제 카르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대로에는 하수구 설비는 물론 마차가 다니도록 돌로 포장까지 했다. 데쿠마누스와 만나는 교차로에는 대개 테트라필론이라고 기둥 4개로 이루어진 탑 4기를 세운다. 부근에 포럼(중심광장)과 다양한 공공건축물이 모여 있다. 그중 아르테미스(비너스) 신전과 길 건너편 공중목욕탕이 제법 규모가 크다. 특히, 아르테미스 신전은 원형이 상당히 남아 압도적 경관을 형성한다.
대로에서 언덕 위 신전까지 계단으로 연결되는데, 계단 중간쯤에 지붕을 얹힌 기둥들이 기념비적인 입구를 만든다. 거창한 입구는 신전이 얼마나 특별한 대접을 받는 공간인지 보여준다. 입구를 통과해 계단을 마저 오르면 드디어 성역이다. 가로 155m, 세로 115m의 공간을 기둥으로 회랑을 두르고 중앙에 신전을 두었다. 신전 전면부에는 2열로 놓인 기둥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 현지인들이 기둥 밑단과 초석 사이에 숟가락을 끼워 기둥이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진을 고려한 일종의 내진구조인 셈이다.
지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로마가 건설한 병영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제라쉬가 보여주는 도시구조를 따르고 있다. 격자형 도시구조의 원조는 지금 터키 해안가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도시 밀레투스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망가진 도시를 그리스가 재건할 때 처음 등장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히포다무스라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가 창안했다 전한다. 이후 북아프리카(알제리 팀가드)에서 영국 론디니움(지금의 런던)에 이르기까지 로마 전역으로 퍼진다.
앞서 언급했던 예루살렘도 마찬가지다. 2차 유대인 반란 이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로마식 도시로 재건되는 과정에 격자형 구조가 차용한다. 동쪽의 템플마운트가 가장 지대가 높아 여기에 제우스(주피터) 신전을 짓고, 여기서부터 데쿠마누스가 서쪽의 자파게이트까지 이어진다. 그러면서 카르도와 만나는 지점에 비너스 신전이 들어서고 그 앞은 포럼으로 조성되었다. 그 비너스 신전이 훗날 골고다 언덕으로 비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그대로다. (카르도와 데쿠마누스가 도시를 자연스럽게 4분할 하는데, 현재의 예루살렘에서 종파로 구분되는 4개의 구역이 형성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1화 사진1-4 참조])
(사진2-23. 예루살렘 올드시티 관광지도. 로마가 만든 카르도와 데쿠마누스가 명확히 보인다)
그런데 제라쉬나 예루살렘도 그렇지만 동방지역의 로마 도시들은 가장 중심(포럼)에 자리한 신전의 주인으로 많고 많은 신 중에 왜 비너스(아프로디테)를 택했을까? 이스탄불의 하기야 소피아도 원래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비너스 신전의 기둥을 뽑아다 만들었고, 심지어 에페수스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였을 만큼 거대했다고 하니, 비너스가 이 지역에 널리 숭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다른 궁금증을 안고 이제 지중해 건너 키프로스로 간다. 키프로스는 비너스가 탄생한 섬이자,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 지역에서 완전히 쫓겨난 후 잠시 정착했던 최후의 야전 본부가 있던 곳인 만큼 다음 목적지로는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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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