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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Mar 23. 2023

비밀맛집3: 페트라 앗데이르(Ad-Deir) 신전

8/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요르단편-3)

   페트라는 정말 멋진 유적이지만, 아쉽게도 템플기사단과 관계가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는 그렇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15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의 페트라가 동쪽의 아바스 왕조와 서쪽의 파티마 왕조 사이에서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하던 예루살렘 기독교 왕국에겐 분명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여기를 그냥 방치했을 리 없었겠지만, 아직은 심증뿐이다. 


   그런 점에서 페트라의 또다른 건축물 하나에 주목한다.     


   그 이름은 ‘앗데이르(Ad Deir)’. 우리 말로는 ‘수도원’쯤으로 번역된다. ‘알 카즈네’로부터 굽이굽이 800여 개의 계단을 올라 페트라 도시유적의 제일 서쪽 끝에서 만날 수 있다. 가파른 길을 그늘도 없이 헉헉대며 올라야 하니 당일치기 여행객에겐 무리겠지만, 단언컨대 여기를 보지 못하면 페트라의 절반을 놓치는 거다. 그만큼 멋지고 웅장하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외관은 ‘알 카즈네’와 유사하지만, 규모는 높이 50m, 너비 45m로 더 크다. ‘알 카즈네’가 바위 절벽 일부를 안으로 파고 들어가 새긴 거라면, ‘앗데이르’는 바위산 앞부분을 위에서부터 통째로 조각해냈다. 그래서 유적은 뒤편의 조각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바위산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안내서에는 용도가 장례신전이라 하지만, 역시 추정이다. 


   다만, 유적을 수도원이라 부르게 된 건 내부 방에 그려진 십자가 때문이다. 암굴 형태의 사각형 방은 ‘알 카즈네’와 같이 장식없이 단순한데, 벽면을 파서 움푹하게 만든 벽감을 둔 게 특이하다. 십자가는 바로 이 벽감에 그려져 있다. 무언가로 사암 벽을 거칠게 긁어 하얀 자국을 낸 듯 조잡하다. 4세기 비잔틴제국 시절에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한 흔적이라는 추정이 덧붙는다.     


(사진2-5. 좌: 앗데이르 외관 ©이경석, 우: 앗데이르 내부 벽감과 십자가 ©https://www.adventurous-travels.com)


   내가 관심있게 본 건 이 십자가였다. 흐릿하지만, 형태는 분명하다.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같은 덧셈 기호 같다. 흔히 ‘그릭십자가’로 부르는 십자가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십자가는 크게 ‘라틴십자가’와 ‘그릭십자가’로 나뉜다. 비잔틴 십자가나 러시아정교회 십자가, 켈트십자가 등도 있지만, 모두 변형된 ‘라틴십자가’다. 그만큼 ‘라틴십자가’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발칸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반면, ‘그릭십자가’는 콥트 십자가(이집트), 예루살렘 십자가(예루살렘 왕국의 상징), 옥시타니아 십자가(프랑스 남부), 몰타 십자가, 템플기사단의 십자가인 크로아 파테처럼 동방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국소적으로 퍼진다. 지금도 그리스, 스위스, 몰타, 조지아의 국기에서 볼 수 있다. 


   앗데이르에 그려진 십자가가 4세기 비잔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은 그 시기에 그릭 십자가가 왕성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 페트라 인근 ‘와디무사’라는 마을에 비잔틴 시대 교회들이 제법 들어섰다는 점도 근거가 되었다.      


   실제로 페트라 인근은 구약성서의 무대다. 유대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40년 동안 헤맸던 그 광야였다. 지명도 계곡을 나타내는 ‘와디’와 모세란 뜻의 ‘무사’가 합쳐진 곳이니, ‘모세의 계곡’이다. 와디무사 마을 초입에는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쳐 물을 솟게 했다는 ‘아인 무사(Ain Musa, 모세의 샘)’ 유적도 있다. 또한 여기에는 유대인 최초의 대제사장이자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의 무덤도 있다. 전설 속 무덤의 위치는 앗데이르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호르산(Hor Mountain) 정상이다.      


   호르산이라니!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누군가 세상 곳곳에 퍼즐들을 흩어 놓고 그 속에 담긴 비밀을 찾아내도록 기다리는 게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상황과 종종 맞닥뜨린다. 호르(Hor)는 이집트 태양신이자 오시리스, 이시스와 삼위일체를 이루는 호루스(Horus)를 의미한다. 매의 얼굴을 하고, 머리 위엔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을 얹은 도상으로 표현된다. 신 중의 신으로 추앙받기 때문에, 그냥 ‘신(God)’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도 쓰인다. 


   앞서 언급한 이집트 신화의 뒷얘기는 이렇다. 호루스는 아버지인 오시리스를 죽이고 왕이 된 삼촌 세트로부터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세트와 일대 전쟁을 벌였고, 결국 다시 왕좌의 자리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 아닌가? 디즈니의 ‘라이언킹’은 이 신화의 동물의 세계 버전이다


   이집트에서 호루스 신앙의 뿌리는 매우 깊다. 역대 파라오들은 물론, 이집트 신의 이름에도 자주 쓰인다. 가령,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는 하트(Hat)와 호르(Hor)가 합쳐져 ‘호루스의 집’이란 의미다. 


(사진2-6. 이집트 콤옴보 신전의 벽화 일부, 왼쪽 두 번째가 사랑의 여신 하토르, 다섯번째가 매의 얼굴을 한 호루스 ©이경석)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의 지명에도 호루스 신앙의 잔재가 남아 있다. 예컨대, 페르시아만(걸프만)에는 마치 엉덩이를 푹 쑤실 듯, 아라비아반도에서 주사침처럼 툭 튀어나온 곳이 있다. 호르무즈(Hormuz) 해협이다. 세계 원유수송량의 1/3이 통과하며, 시아파 이란이 수니파 아랍국들과 신경전을 벌일 때면 자주 봉쇄 위협을 가하는 곳이다. 호르무즈란 지명은 조로아스터교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지혜(마즈다)의 신(아후라)’이다. 여기서 신을 나타내는 아후라의 접두어가 ‘호르’다. 


(사진2-7. 빨간색 원 안이 호르무즈 해협)


   <신의 지문>이란 베스트셀러로 친숙한 그레이엄 핸콕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왓도 호루스 유적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왓’은 사원이라는 뜻이 확실하나, 크메르어에는 ‘앙코르’라는 단어가 없다. 뜻도 모른 채 예전부터 전해진 단어, ‘앙코르’가 ‘앙크(Ankh)’와 ‘호르(Hor)’의 합성어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이집트 십자가인 ‘앙크’가 ‘생명’ 또는 ‘부활’을 나타내므로(투탕카멘의 이름에도 들어가 있다. ‘이스라엘’편 제5화 참조) 앙코르왓은 ‘호루스가 살아있는 사원’이란 뜻이 된다.      


   호루스 신앙은 후에 아몬-라 신앙과 하나가 되며 이집트의 지배적인 종교관으로 자리잡는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신왕국 시대 18왕조에서 왕위에 오른 아멘호텝 4세는 다신교를 모두 없애고 ‘아텐(혹은 아툰)’이라는 태양신만을 믿는 일신교를 확립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일신이다. 


   왕은 전국의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수도마저 옮겨버렸다. 자신의 이름마저도 아멘호텝(‘아멘 신이 기뻐한다’는 뜻)에서 아케나텐(‘아텐의 종’)으로 바꿨다. 하지만 아들인 투탕카멘이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자마자 귀족들의 반발로 아텐 신앙은 폐기되었고 다시 아몬-라 신앙으로 돌아가고 만다. (투탕카멘의 독살설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후사가 끊긴 18왕조의 뒤를 이어 아몬-라 신전의 제사장이었던 람세스 1세가 19왕조를 개창하면서 아케나텐의 짧은 종교개혁은 이집트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람세스 왕가는 아케나텐과 관련된 모든 유적을 파괴한다. 꽤 후대까지 아케나텐은 금기어가 되는데, 심지어 아비도스의 오시리스 신전에 새겨진 역대 파라오 목록에서도 퇴출될 정도였다. 그만큼 기득권 세력은 일신교를 강하게 거부했다)


(사진2-8. 이집트 아비도스 신전에 새겨진 역대 파라오 목록 ©이경석)


   재미있는 것은, 프로이트가 <종교의 기원>에서 언급한 가설이다. 모세가 유일신 '아텐'의 제사장이었으며, 아케나텐 사후 람세스 왕가의 박해를 피해 히브리 노예를 이끌고 애굽(이집트)을 탈출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탈출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아론이 호르산에 묻혔다니! 


   프로이트의 가설이 맞다면 유일신 ‘아텐’의 성지여야 할 아론의 무덤에 ‘호루스’가 등장한 건 왜일까? 이집트의 아케나텐 지우기가 여기까지 영향을 준 걸까? 같은 태양신이었던 만큼 후대에 뒤죽박죽 혼용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프로이트의 가설이 틀렸을까? 


   알 수는 없지만, 모세의 행적에 호루스가 등장하는 사례는 또 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도 원래 ‘호렙(Horeb)’ 산이다. 지금은 이 산이 시나이산과 같다고 여겨지지만, 시나이의 기원은 수메르 지역 달의 여신인 ‘신(Sin)’에서 비롯되었다. 태양신에서 유래한 ‘호렙’과 달의 신이 숭배받던 ‘시나이’가 정말 같은 곳일까? 모세가 따르던 신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아론의 무덤 덕분에 와디무사 지역은 기독교 성지가 되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많은 교회가 들어선다. ‘앗데이르’의 십자가가 이때 그려졌다고 해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릭십자가’를 보며 또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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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요르단 주변 지도, 구글 지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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