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입문의 길

41/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12)

by 이경석

그곳은 바로 대성당의 지하실, 소위 크립트(crypt)라고 불리는 예배당이다.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초반 사이에 조성됐다고 알려진 크립트가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 봉헌된 공간이다. 입구는 대성당 바깥에 있다. 오브라이도 광장에서 대성당의 메인 입구를 바라보면, 지면의 단차로 인해 인공데크 상부로 올라가는 르네상스식 계단이 보인다. 데크 위의 바로크식 종탑과 화려한 영광의 문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리면서 데크 하부는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데크 하부 좌우 계단 사이에 분명히 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크립트다.


크립트는 좌우로 16.8m에 길이 27.8m의 십자가 모양을 한 조그만 성당 느낌이다. 내가 대성당을 방문했을 당시 공사중이라 아쉽게도 들어가 보진 못했다. 안내 책자 등을 참조해보면 이곳은 상부에 설치된 영광의 문에서 내려오는 막대한 하중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그 하중을 세 개의 두꺼운 다발기둥이 받아내는데, 각 기둥에는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모두 예수의 혈통이다!)


산티아고 크립트.jpg (사진6-45. 산티아고 대성당의 크립트 © José Luiz Bernardes Ribeiro / CC BY-SA 3.0)


또한, 데크 상부는 천상의 공간, 지하 공간은 신의 발 아래 위치한 지상의 공간을 상징하면서 영광의 문이 표현하려는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고 한다. 즉, 천상에서는 예수가, 지상에서는 인간을 이끄는 신의 대리인으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선택된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를 전면에 내세운 가톨릭 교리와도 다분히 차이가 있는 셈이다.


대성당 회랑에 있는 성물실에 가면 크립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유물을 또 하나 볼 수 있다. 바로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흉상이다. 역시 예수와 닮은 얼굴을 가진 은제 흉상 안에는 놀랍게도 그의 두개골이 있다고 한다. 12세기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고 전한다. 대성당 안내 책자는 이 유물이 대(大) 야고보의 유해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보물이라 표현할 정도다.


소야고보 흉상.jpg (사진6-46. 산티아고 대성당 성물실에 있는 소 야고보 흉상 © http://catedraldesantiago.es)


이제 좀 더 분명해졌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大)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봉헌한 장소였다. 그노시스파의 중심인물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예배가 대(大) 야고보를 위한 가톨릭 미사 바로 아래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템플기사단은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통해 은밀히 자신들의 표식을 남겨두었다. 템플기사단이 템플마운트에서 발견했다는 '가톨릭의 교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무언가'가 그노시스파와 관련되었을 거란 세간의 믿음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코르티셀라 채플은 지금 외국인 순례자를 위해 매일 다양한 언어로 미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수 세기 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완주한 이들을 위한 축복미사가 열리던 장소였다. 순례자들이 반드시 집결할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장소에서 템플기사단은 대담하게도 예비 입문자들을 유혹했던 것이다.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서 탐정 뒤팡이 중요한 편지를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찾았던 것처럼, 비밀은 모두의 눈에 띄는 평범한 곳에 더 잘 숨겨지는 법이다.


채플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티아고 순례길 자체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가톨릭과는 다른 영성의 흐름에 입문하려는 목적으로 순례를 택한 자들에게는 그들이 찾아야 할 장소에 대한 단서가 이미 주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순례길의 출발점이 그 힌트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에서 시작한다. 그 시작점으로 4곳의 장소가 특정된다. 파리, 베즐레, 르퓌, 아를이다. 파리와 아를은 각각 북쪽과 남쪽의 중심도시인만큼 당연히 많은 순례자의 출발지가 되었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남은 두 도시가 의문이다. 파리와 아를 사이, 리옹이나 디종 같은 유서깊은 도시들이 많은데 웬 듣보잡 조그만 마을이 순례길의 출발점이 되었을까?


산티아고길(프랑스).png (사진6-47.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길 © Vivaelcelta)


베즐레는 이미 언급했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를 모신 마을이다. 막달라 숭배의 중심지가 출발지로 선택된 건 우연이 아니다. 막달라와 야고보의 연결은 한눈에 어색해 보이지만, 야고보가 대(大) 야보고가 아니라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사람 모두 그노시스 운동을 상징하는 핵심인물이기 때문이다.


곧 막달라의 무덤에서 출발한 순례자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찾으라는 지령을 받은 셈이다. 만일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막달라가 예수의 부인이라면 더더욱 이 연결은 예수의 혈통(성혈)을 상징한다. 가히 이 순례길을 ‘성 가족의 길’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성배가 성혈을 의미하는 언어유희라면 코르티셀라 채플에서 야고보가 받으려는 성배가 바로 순례자들이 찾아야 할 암호가 되는 셈이다. (암호는 진즉부터 또하나 있었다. 갈리시아는 불어로 Galice인데, 프랑스인들은 이것이 성배를 뜻하는 Calice로 믿었다. 즉, ‘갈리시아’란 지역명 자체가 ‘성배’였던 것이다)




르퓌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은 포디엔시스 가도(Via Podiensis)로 불린다. 르퓌 대성당 주교가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이방인으로는 최초로 순례길을 완주하면서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르퓌라는 출발지가 주는 암시는 더 직설적이다.


제대로 된 마을 이름은 르퓌엥벨레(Le puy-en-Velay)인데, 예로부터 종교적 감흥이 넘치는 신성한 장소였다. 지금 가봐도 이 작은 마을이 내뿜는 아우라는 예사롭지 않다. 우선 북쪽에 바늘처럼 솟아오른 두 개의 돌산이 독특하다. 현재는 위쪽 돌산 꼭대기에 미카엘 대천사를 위한 생미셸 예배당이 얹혀 있고, 아래쪽 돌산 정상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동상이 서 있다.


고대 켈트족들은 아래쪽 돌산(까마귀 바위라는 뜻의 ‘호쉐 꼬르네이(Rocher Corneille)’라 불린다) 아래 선돌을 세우고 신성시했다. 이곳은 병든 자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며 유명해졌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사람들은 그 기적의 공을 성모 마리아에게 돌렸다. 신성한 장소에 노트르담 성당을 건설했고, 선돌은 조각낸 다음 교회 바닥에 매립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 이전 그 기적을 일으켰던 신은 다름 아닌 이집트 여신, 이시스였다. 아직 남아있는 증거는 현재의 노트르담 성당이 모신 검은 마리아 상이다.


Le_Puy-en-Velay_-_Panorama_-_JPG1.jpg (사진6-48. 르퓌 마을의 호쉐 꼬르네이와 노트르담 성당 ©Jean-Pol GRANDMONT, Wikipedia에서 재발췌)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을 비롯해 프랑스 곳곳에도 검은 마리아를 모신 성당들이 꽤 있다. 검게 칠한 '신성한 여성'에 대한 숭배가 최초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논란이 많다. 다만, 그 성당들의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이시스 여신의 성소를 허문 자리에 건립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시스가 누구인가? 죽은 남편이자 신 중의 신, 오시리스를 영적으로 부활시켜 아들 호루스를 잉태한 ‘신성한 동정녀’로서 나중에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로 덧씌워지는 여신이다. 달의 여신으로서 초승달이 상징물인 것도 비슷하다.


검은색이 이집트에서 지혜를 상징하고, 그 지혜(그노시스)를 얻기 위한 의식이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 널리 행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그 비밀의식은 후에 프리메이슨에서 차용되는데, 프리메이슨 회원인 모차르트가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의식의 일부를 공개한 까닭에 독살되었다는 소문도 당시 파다했다), ‘검은 성모’가 가리키는 의미는 명확하다. 가서 이시스를 찾고 지혜를 얻어라! 이시스를 어디서 찾을까? 예전에는 달의 여신, 현재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장소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딱 한 군데뿐이니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코르티셀라 채플을 거쳐 크립트에서 행한 미사에 참여해 첫 번째 입문 단계를 통과한 입문자들은 이제 다음 목적지를 안내받게 될 것이다. 아니,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음 목적지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왔던 순례길을 다시 거슬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기점으로 이제부터 시작되는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라 ‘입문의 길’로 불리게 될 것이다.


(42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이베리아 지도.png



[사진출처]

사진6-45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ypt_-_Cathedral_of_Santiago_de_Compostela.JPG

사진6-46 : http://catedraldesantiago.es/en/cathedral/#apostle

사진6-47 : By Vivaelcelta,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2851077

사진6-48 : By Jean-Pol GRANDMONT - Own work,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32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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