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템플기사들의 마지막 흔적

42/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13)

by 이경석

이베리아반도를 호령하던 무슬림 세력은 어느 순간 무너져 내렸다. 기독교 왕국의 힘이 세졌다기보다는 이슬람 내부의 패권다툼이 원인이었다.


이슬람 최초의 통일 왕국, 다마스커스의 옴미아드 왕조가 100년도 되기 전에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에게 멸망한 것이 750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친족 가문이 세운 시아파 압바스 왕조는 수니파 옴미아드 왕가를 모조리 척살한다. 하지만 용케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자가 이베리아반도로 도망쳐 756년 세운 나라가 후기 옴미아드 왕조다.


당시 수도였던 코르도바는 오늘날의 뉴욕이었다. 인구 50만의 도시엔 수많은 대학과 거대한 모스크(지금은 일부가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된 메스키타를 볼 수 있다)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아랍어로 번역되어 보존된 그리스 철학이 다시 서양에 알려진 것도 이때였다.


(사진6-49. 메스키타 내부 ©이경석)
(사진6-50. 코르도바 전경, 강 건너편 높다란 건물이 메스키타 ©이경석)


하지만 11세기 초 권력을 거머쥔 재상이 역성혁명을 노리다 살해되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후기 옴미아드 왕조가 멸망하자, 여러 지방 국가들이 할거하는 타이파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들은 가톨릭 국가에 파리아스라는 보호비(조공)를 바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에 카스티야 그리고 아라곤을 비롯한 이베리아의 가톨릭 왕국은 전열을 가다듬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해 나간다. 이슬람 타이파들 간의 알력을 이용해 남쪽으로 야금야금 영토를 넓혔다. 선봉엔 템플기사들이 섰다. 그리고 가톨릭 왕국은 템플기사단이 정복한 땅을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들어선 템플기사단의 교회와 성채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입문의 길 위에 놓이게 된다.


템플기사단의 스페인 지부는 폰페라다(Ponferrada)에 있었다.


피레네산맥 언저리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순례길은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을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780km에 이른다. 폰페라다는 이 순례길의 얼추 3/4 정도 되는 길목에 자리한다. 여기서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이에는 폰페라다만한 규모의 도시가 없다. 지형이 험난하단 소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어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이곳을 1178년 레온왕국의 페르디난드 2세가 템플기사단에 맡겼다. 돌로 된 성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중세 느낌 그대로다. 주변을 빙 둘러 해자가 놓이고 안쪽으로는 삼중으로 된 벽이 단차를 두고 세워져 밖에서 보면 실제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십자군 성채, 크락 데 슈발리에서 본 것처럼 기사단이 예루살렘 왕국에서 선보였던 전형적인 축성기법이었다. 지금은 성 내부가 파괴되어 유구 정도만 확인할 수 있어 아쉽다. 대신, 성벽을 따라 놓인 열두 개의 망루에 오르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답게 사방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온다. 순례길을 감시하기 딱 좋은 자리다.


(사진6-51. 템플기사단 스페인지부인 폰페라다 성 ©jgaray, Wikipedia에서 재발췌)


이처럼 가톨릭 국가가 통제하게 된 순례길에 템플기사단이 남긴 유적들은 상당하다.


그중에는 테라디요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처럼 아예 템플기사단의 이름이 붙은 마을도 있다. ‘템플기사단의 테라스’라는 도시 이름이 인상적인데 테라스가 성전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 도시엔 의미심장한 전설도 있다. 12세기 근교에 템플기사단이 운영하는 순례자 숙소(오늘날의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키웠다고 한다. 매년 산티아고 대성당에 황금달걀을 하나씩 바쳤는데, 어느날 대성당 측에서 황금달걀이 아닌 암탉을 요구한다. 그러자 마지막 기사가 숙소에 암탉을 묻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숙소가 순례길 오른편의 토르보시요 언덕(Alto Torbosillo)이라 불리는 곳의 꼭대기에 있었다고 믿는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재산의 출처가 궁금해 황금알을 낳는 암탉을 가졌다고 생각했을 만큼 막대한 부를 가졌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진 템플기사단을 이솝우화에 빗댄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황금달걀에 대한 전설은 템플기사단과 관계있는 순례길 지역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채집된다)


템플기사단이 남긴 유적 중에는 단연 성당이 제일 많다. 그들이 남긴 성당은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바위위의 돔 사원’을 따라 대부분 팔각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팜플로나 남서쪽 광활한 포도밭 한가운데 짠~ 하고 나타나는 산타마리아 데 에우나테(Santa Maria de Eunate) 성당이 그러하다. 주위를 세 번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팔각형의 성당을 로마네스크식 열주가 둘러싸고 있어 기념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뜬금없는 위치에 기이한 중앙집중식 형태는 이곳이 예배가 주목적이 아님을 간파할 수 있다.


(사진6-52. 산타마리아 데 에우나테 교회 ©Wikipedia)


여기서 산티아고를 향해 50km를 더 걸으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라는 곳을 지나친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이름의 ‘성묘교회’가 순례자를 반기는데 역시 템플기사단이 만든 팔각형 성당이다. 3층 높이의 탑처럼 보이는 성당은 천장에 팔각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이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다. 성당 꼭대기에 다시 팔각의 쿠폴라를 덧붙여 멀리서 보면 마치 등대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길을 잃은 순례자에게 이정표도 되고, 세상을 떠난 순례자에겐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기도 한단다.


(사진6-53. 토레스 델 리오 ©Wikipedia)


이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로그로뇨(Logrono)에 도착하기 직전 비아나(Viana)에서 만나는 성당에도 팔각형의 쿠폴라가 세워져 있는데, 여기도 ‘황금알을 낳는 암탉’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세비야, 똘레도와 함께 스페인의 3대 성당이라는 부르고스 성당도 순례길에서 만나게 된다. 전형적인 라틴십자가 평면에 고딕 양식이 돋보이는 웅장한 성당이지만 특이하게도 시내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있다.(십중팔구 도시가 형성되기 전부터 있었던 다른 신전이나 성소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15세기에 설계된 팔각형 돔을 가진 멋진 채플(Capilla del Condestable) 하나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부르고스를 떠나 레온으로 가는 도중에 시르가(Sirga)라는 마을도 템플기사단의 영지였다. 여기 있는 산타마리아 라 블랑카(Santa Maria la Blanca) 성당은 팔각형은 아니지만 역시 템플기사단이 세운 것이다.

템플기사단이 남긴 유산 중에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당이 순례길 남쪽, 세고비아에 있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도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조금 걷다보면 제일 먼저 로마시대 수도교부터 만나게 된다. 모르타르 같은 접착제 없이 순수하게 돌로만 쌓은 높이 30m의 거대한 구조물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자체가 그저 경이롭다. 오죽했으면 ‘악마가 만든 다리’라는 전설이 있을까?


내용인즉, 오래전 물장수 소녀가 일이 고되 하룻밤 새 수로를 만들어주겠다는 악마에게 그만 영혼을 팔기로 약속했는데, 다행히 성모가 동트기 전 닭을 울려 악마는 마지막 돌을 쌓지 못했고 미완성인 수도교를 놔둔 채 달아났다는 것이다. 기단부 돌에 하나씩 뚫려있는 구멍이 악마가 쌓으며 남긴 발톱 흔적이란다.


(사진6-54.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 ©이경석)


수도교 근방에는 이곳의 명물, 코치니요 아사도(새끼돼지 바비큐)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알카사르로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좁은 골목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뿌리치기 정말 어렵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도시 북쪽 끄트머리에서 알카사르를 영접하니 건축물이 멋지지 않을 수 없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의 성을 그릴 때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사진6-55. 세고비아 알카사르 ©이경석)


알카사르는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높다란 절벽 위에 있다.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독특한 건축물 하나가 눈에 확 띈다. 바로 베라크루즈 성당이다.


외관은 12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첨탑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내부에는 특이하게 1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2개 층의 밀폐된 공간이 평면 중앙에 마련되었다. 기사단의 보물창고이거나 비밀회합 장소로 추정될 뿐, 정확한 쓰임새는 알려진 바 없다.


베라크루즈는 ‘진짜 십자가’라는 뜻인데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 조각을 의미하며,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와 이곳에 보관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도난 우려가 있어 북쪽으로 3km 떨어진 사마라말라라는 도시의 교회에 보관중이라 한다. (사마라말라는 매년 2월 6일 산타 아구에다 축제로도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제일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레콩키스타 당시에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무슬림 경비병들을 유혹해 춤을 추는 동안 기독교도들이 세고비아 알카사르를 탈환한 것을 기념한다)


(사진6-56. 알카사르의 절벽 아래 경관, 언덕 위 베라크루즈 성당이 보인다 ©이경석)
(사진6-57. 베라크루즈 성당 ©이경석)


템플기사단을 해체하라는 교황의 명령 이후 그들이 소유하던 성과 성당들은 모두 스페인 왕가가 차지했다. 스페인에 있던 템플기사들도 재판에 회부됐지만 대부분 무죄 방면되었다. 레콩키스타의 완성을 위해 이들의 재산과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스페인 왕가는 더 나아가 템플기사단의 명칭을 바꿔 기사들의 신분을 세탁하고 왕가의 직속 기사단으로 재편했다.


예를 들어, 아라곤 왕국은 1317년 템플기사단을 주축으로 ‘몬테사 기사단’을 창설하고, 템플기사단이 기존에 관리하던 재산들을 계속 운영하도록 했다. 템플기사단이 축성하고 몬테사 기사단이 활용한 발렌시아 지방의 페니스콜라(Peniscola) 성이 대표적인데, 위에서 언급한 다른 유적들도 비슷한 경로를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들 장소들 중 어딘가에서 두 번째, 세 번째 기사단의 비밀 입문의식이 차례로 이어졌을 테다......

(사진6-58. 페니스콜라 성 ©Lodevermeiren, Wikipedia에서 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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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6-51 : By jgaray - Own work, CC BY-SA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72843

사진6-52 : 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Mgoni4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No machine-readable source provided. Own work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90450

사진6-58 : By Lodevermeiren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7708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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