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북쪽에 숙소를 잡고 한시바삐 성당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다. 지금은 대성당 주위로 집들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지만, 세월이 가도 잘 변하지 않는 것은 지형이다. 약간의 오르막이 계속되는 걸 보니 도시의 가장 높은 구릉 위에 있다는 대성당이 실감난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어느덧 시원스런 광장을 만나게 된다. 오브라이도 광장이다. 광장의 동쪽에 대서양을 바라보며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대성당이 있다.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성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선언한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가 무덤 위에 교회를 건설한 이래, 18세기에는 입구 양쪽에 바로크식 종탑이 들어서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췄다. 당초 동쪽에 위치한 야고보의 무덤을 제단 삼아 건물을 서쪽방향으로 길게 늘였다. 그러다 보니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지형의 레벨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측에 인공기단을 쌓고 계단을 올라 입구에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광장에 면한 서측 입구에 들어서면 본당으로 들어가기 직전, 유명한 ‘영광의 문’을 지나게 된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조각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광의 문’은 3개의 아치로 구성되었다. 중앙아치는 좌우 아치의 두 배 크기로서 상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아치 가운데 받침기둥(멀리언)을 두었다. 자연스럽게 화면은 4분할 된다.
좌측 아치에는 구약성서의 인물들을, 우측 아치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다. 중앙 아치의 팀파눔(반원형 벽)에는 한가운데 예수가 자리잡았는데, 4명의 복음사도들이 각각 상징동물을 안거나 특징적 행동을 하면서 예수를 에워싸고 있다. (통상 마태는 책을 쓰는 사람이나 천사로, 마가는 사자, 누가는 양 혹은 황소, 요한은 독수리로 표현된다) 그리고 예수 바로 밑으로 이어진 받침기둥 상부에는 지팡이에 기댄 야고보가 조각되었다.
종탑이 없던 시절에 순례를 마치고 광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영광의 문’이었다. 곧 쓰러질 듯 지친 순례자는 기둥 위 야고보를 보고 마지막 남은 힘을 쏟으며 달려와 순례의 대미를 장식했을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야고보를 만난 듯 야고보의 기둥을 쓸어내리며 순례가 무사히 끝났음에,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에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을 테다.
(사진6-37. Genaro Pérez Villaamil 作 <영광의 문>, 스페인 몬클로아 궁전)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본당으로 들어간다. 로마네스크 특유의 무겁고 진득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지만, 중앙 제단 여기저기를 가득 메운 조각들이 역동적 표정과 포즈로 한바탕 축제라도 벌릴 듯 소란스러움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다.
제단까지 왔으면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미션이 기다린다.
우선 제단에 있는 작은 계단으로 올라가 13세기 이래로 성당에 도착한 순례자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야고보의 조각상을 뒤에서 살짝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면 조각상을 지키는 수사가 어서 해보라며 팔로 포옹하는 시늉까지 해보인다.
다음은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 된 향로미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 야고보의 날인 7월 25일을 비롯해 가톨릭의 중요한 축일과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에는 특별한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 불리는 무게 80kg의 향로를 중앙제단 천장에 매달아 8명의 사제들이 시속 68km의 속도로 진자운동을 시킨다. 당초 순례자들의 땀냄새를 없애기 위한 일종의 방역작업이 하나의 의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천장에 닿을 듯 허공을 가르며 흔들리는 육중한 향로가 뿜어대는 향은 오랜 시간 순례로 지친 순례자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단 아래 지하로 내려가 야고보의 무덤을 보는 것이다. 쇠창살 넘어 조그만 석관이 고작이지만 그건 800km의 고난을 이겨낸 순례자에게만 허용되는 최고로 특별한 선물이다. 이로써 마침내 모든 순례 여정이 끝나게 된다.
성당은 큰 규모만큼 내부에 채플이 많다. 제단에서 세 가지 미션을 완수한 후, 채플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그러다 엉겁결에 내가 찾던 비밀의 방에 들어서고야 말았다. 그곳은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는 아기 예수가 조각된 입구부터 강렬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어느 한 채플이었다.
‘앗, 저건!’ 어둠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선 곧바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감전이라도 된듯, 등골부터 치고 올라온 전율에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나를 놀래킨 건 다름 아닌 벽 곳곳에 걸린 십자가였다.
그냥 십자가가 아니었다.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문장에 사용되면서 흔히 예루살렘 십자가라 불리는 것이었다. 바깥 선을 연결하면 팔각형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중세에는 템플기사단의 크로아 파테와 혼용되기도 했다. 성당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예루살렘 왕국의 상징이 도대체 왜 여기 있을까?
눈이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그제서야 채플의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데와 달리 화려한 장식이 없는 단촐한 집회소 같은 예배당이다. 하지만 신비한 기운이 조그만 창을 통해 스며든 절제된 빛을 타고 채플을 휘감았다. 직관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상징과 기원을 알 수 없는 몇 안 되는 조각들이 어우러지며 풍기는 묘한 이교도적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안내 책자를 다시 보니 채플의 명칭은 코르티셀라(Corticela)!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코르티’가 라틴어로 ‘울타리로 둘러쳐진’이라는 ‘curtis’에서 나온 것이고 ‘셀라’가 방이란 뜻이니, 말 그대로 접근할 수 없는 방이란 뜻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방, 바로 신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성소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지는 짐작한 그대로다.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9세기 초, 그 장소로 지목된 구릉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건물이 하나 있었다. 구릉 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상징성이나 중요도가 큰 만큼 달의 신전으로 추정된다.
신전 주변은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였다. 수많은 무덤 중에 참수되어 머리가 없는 유골과 양옆에 나란히 누운 두 개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이는 곧 야고보와 그의 두 제자라 여겨졌다. 처음에는 그 무덤 위에 조그만 예배당이 세워졌고, 이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며 지금의 산티아고 대성당이 되는데 그 과정에 예전부터 존재하던 달의 신전이 대성당과 붙어버린 것이다. (정확하게는 무슬림이 파괴했던 건물을 12세기에 복원하면서 성당과 붙여버린 것이다)
지금은 대성당의 부속건물 같이 느껴지는 이 오래된 신전이 바로 코르티셀라 채플이다. 그때부터 채플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따라서 채플 안에는 조그만 성모 마리아 상도 있지만, 주변 분위기와 섞이지 않아 오히려 생뚱맞다.
채플을 찬찬히 둘러보면 오른편에 두 기의 무덤이 있다. 하나는 14세기 추기경의 것이고, 그 옆 또 하나의 무덤은 정체를 알 수 없다. 대성당 내 가장 오래된 무덤이라 하는데,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기도 한참 전인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석관에는 여성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한눈에 봐도 특이한 옷차림에 팔각형의 별과 초승달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는 원래 달의 여신을 모셨던 신전이었다!)
채플의 왼쪽 벽면을 보면 더욱더 눈을 의심하게 하는 조각이 또 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인물이 있는데, 그의 머리 뒤 후광이 크로아 파테다!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와 만난다. 그리고 그 천사가 양손으로 조심히 받쳐 들고 있는 건 놀랍게도 '성배'다!
안내서에서는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각상의 인물을 예수로 해석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성서가 기록하길, 그날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홀로 산으로 들어가 첫번째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고난의 잔(십자가형을 상징)을 거두어달라고 신께 간구한다. 하지만 곧 두번째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힘을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조각은 기도하는 예수에게 천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의 잔을 가져오는 장면으로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천사가 들고 있는 저 '잔'에 중의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면? 성서에서는 비유적으로 표현한 '고난의 잔'을 매우 직설적인 형태로 조각해버린 저 '잔'을 액면 그대로 '성배'라 읽을 수 있다면? 기도하는 저 분이 예수가 아니라 이 성당의 주인인 야고보라면? 그렇다면 전혀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건 성배를 전달받는 야고보가 성배의 수호자로 선택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야고보와 성배는 어떤 관계일까? 도대체 무슨 암시가 숨겨져 있는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대성당 내에서 이 채플만큼 특이한 곳이 없다. 여기서만 발견되는 템플기사단의 상징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혹시 그 모두가 템플기사단이 의도적으로 남긴 표식일까? 만일 기사단 입문이라는 또다른 목적을 가진 순례자였다면, 대성당을 돌아다니다가 이 방에서 마침내 특정 표식을 눈치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절박하고 열의에 가득찬 자만이 비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갔으리라. 바로 기사단의 첫번째 회합 장소에 대한 힌트말이다. 수수께끼 하나를 더 풀려면 조금 더 머리를 굴려야 한다. 어떻게?
성배를 받으려는 저 야고보가 대(大) 야고보라면 특별할 게 없다. 넓은 대성당의 중심 제단은 물론 곳곳이 그를 위한 공간이니 어느 장소를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분이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를 위한 자리는 이 넓은 대성당에 딱 한 곳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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