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는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에 입문하려는 자들을 위해 그랜드 마스터인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가 로마 시내 곳곳에 표식을 남겨둔다. 가톨릭에 맞서 과학을 신봉하는 자들답게 세상의 4원소인 흙, 공기, 불, 물을 상징하는 계몽의 교회를 대담하게도 가톨릭 성당 안에 세운 것이다.
소설에서 흙의 교회는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안의 키지 채플, 공기의 교회는 성 배드로 성당 앞의 광장, 불의 교회는 산타마리아 비토리아 교회, 그리고 물의 교회는 나보나 광장으로 나온다. 모두 베르니니의 조각작품이 있는 곳인데, 흙의 교회에 있는 ‘하박국과 천사상’ 조각부터 숨겨진 암호를 따라 로마 시내를 십자형태로 가로질러 가면 마침내 계몽의 교회 본당(이곳도 유명한 장소이지만, 스포일하지 않는 걸로!)에 당도하게 된다. 로마를 여행할 때, 소설 속 명소들을 따라가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사진6-79. 로마 포폴로 성당 내 키지채플과 베르니니 '하박국과 천사상' 조각, 천사의 손가락 방향이 암호다 ©이경석)
그런데 이러한 입문 방식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널리 퍼졌던 이시스 신앙이 아마 오래된 사례가 될 것이다.
신전이 교육기관을 겸하는 이집트에서 이시스 신전은 귀족의 우수 자제들이 선망하는 단연 최고의 경쟁률을 가진 일종의 특목고였다. 그만큼 입문 과정 자체가 워낙 까다롭고 비밀리에 이루어졌지만, 피타고라스처럼 입문을 통과한 그리스 유학파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개략적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다. (영어의 미스터리(Mystery)도 비밀스런 입문의식을 칭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사진6-80. 이집트 아스완 필레섬에 있는 이시스 신전 ©이경석)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입문은 흙, 불, 물, 공기의 네 가지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램프에 의지해 지하 미로를 통과하거나(흙의 시련), 달궈진 쇳덩이 사이사이를 정확히 뛰어넘어 통과하는(불의 시련) 식이다. 이집트가 배경인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남녀주인공이 불과 물의 시련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도록 한 설정도 여기서 빌린 것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에서 최후의 성전에 도착한 주인공이 거치는 마지막 시험도 마찬가지다. 칼날이 난무하는 지하미로를 통과(흙의 시련)하고, 함정이 섞인 바닥판 사이를 뛰어넘은(불의 시련) 후, 믿음으로 허공에 몸을 날려야(공기의 시련) 한다. 그리고 성배를 고른 후에는 그것이 진짜임을 입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거기에 성수를 담아 마시는 모험을 해야 한다(물의 시련).
(사진6-81. 인디아나 존스 3편에 나오는 '공기의 시련' 스틸컷)
이시스 신앙으로의 입문 의식은 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입문자들은 모두 일곱 군데의 비밀 장소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고 한다. 시련이 끝날 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다음 의식에 참여하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입문이 시작되는 첫 번째 장소는 부헨의 호루스 신전(The Horus Temple of Buhen)이라 여겨진다. 나일강 상류 누비아 지역에 건설된 신전은 지금 이집트 국경 인근 수단 땅에 있었다. 1964년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해체되어 수단 카르툼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일곱 신전을 모두 거치면 드디어 마지막 여덟 번째 최종 목적지에서 입문이 끝나고 정식 사제로 인정받았다.
(사진6-82. 수단 국립박물관으로 이전된 부헨 호루스 신전 ©David Stanley)
신성을 나타내는 숫자 ‘8’의 상징성은 크로아 파테의 팔각형을 비롯해 템플기사단의 입문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집트처럼 산티아고 대성당을 출발해 일곱 군데의 장소를 거치며 입문 의식을 치른 것이다.
혹자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원래 켈트족이 신성시하던 달의 신전이었던 만큼 켈트족의 다른 성소 자리에 들어선 성당을 입문 장소로 거론한다. 스페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상에 템플기사단의 성당들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툴루즈 성당, 오를레앙 성당, 사르트르 성당, 노트르담 성당, 아미앵 성당 등이 비정된다. 공교롭게도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고딕 성당 루트다.
하지만 모두 추정일 뿐이고, 정확한 장소는 알려진 바 없다. 그러기에 혹시 여기가 아닐까 하며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를 훑고 다니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성당이란 게 몇 번 보고 나면 그게 그거 같지만, 눈을 크게 뜨고 숨겨진 상징을 찾아 헤매다 보면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입문 의식이 끝나는 마지막 여덟 번째 장소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바로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채플이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혈통을 지키는 자들이 비밀리에 모이는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하지만 소설 이전부터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많이 오르내렸다. 또한 프리메이슨의 성지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앞으로 템플기사단을 만나러 가는 길엔 어김없이 프리메이슨과 마주치게 된다)
프리메이슨은 이베리아반도에서 가톨릭 순혈주의가 선언된 15세기 말 처음 회합이 이뤄졌고, 부르봉 왕조가 들어선 18세기 초에 공식 출범했다. 이로 인해 프리메이슨이 템플기사단의 후예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 발원지가 스코틀랜드, 거기서도 로슬린 채플이 중심이라 여겨졌다.
사실, 이베리아반도를 떠난 템플기사들이 갈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항해를 통해 발견된 신대륙을 제외하고 스코틀랜드가 있는 브리튼섬은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답안이 되기에 충분했다. 일단, 프랑스와 앙숙이었고, 로마교황청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있었다. 무엇보다 루터 이후 종교전쟁으로 혼란한 대륙에 비해, 영국은 헨리 8세의 강력한 후원 아래 가톨릭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이 숨 쉴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꼭 로슬린 성당이 아니더라도 브리튼섬이 ‘입문의 길’의 종착지가 될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다시 산티아고 대성당의 제단 앞에 섰다. 스페인을 떠날 시간이다. 템플기사단의 역사가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새롭게 진화할 것이다.
1.6m 높이에 매달린 보타푸메이로에 문득 시선이 닿았다. 무게만 80kg에 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육중한 향로는 존재감 자체가 워낙 압도적이라 성당 내부의 모든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다음 순간, 중력을 거슬러 향로를 매단 21m의 줄을 타고 천장의 도르래 장치까지 절로 고개가 젖혀진다. 그제서야 트란셉트(십자가 교차부) 상부에 놓인 돔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천상을 상징하는 돔에 그려진 건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나 열두 사제가 아니었다. 매우 낯익은 상징 하나가 꼭대기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삼각형 안에 그려진 왼쪽 눈으로, 통상 ‘호루스의 눈(Eye of Horus)’으로 알려진 일명 '모든 것을 보는 눈'이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를 죽인 삼촌 세트에 복수하는 과정에서 눈을 잃었다. 잃어버린 눈은 지혜의 신 토트가 완벽하게 다시 복원시켰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어 신이 가진 전지전능한 능력을 상징한다. (이 신화는 영화 <갓 오브 이집트>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호루스의 눈이 유명해진 건 미국의 1달러 지폐 뒷면에 사용되면서부터다. 뜬금없는 도안은 지폐 앞면에 인쇄된 인물과 관계있다고 여겨졌다. 그 인물은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프리메이슨의 그랜드 마스터이다.
그런데 왜 호루스의 눈이 산티아고 대성당의 가장 중심 자리에 그려진 걸까?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한 성당이다. 그건 마치 나를 다음 목적지로 인도하는 것만 같다. 여기서 시작된 숨겨진 영성의 흐름이 정말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진 것일까? 스무고개 하듯,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생뚱맞게 발견한 호루스의 눈은 나의 지적 호기심을 강렬히 자극하기 시작했다.
로슬린 성당을 찾아 다시 영국으로 가야겠다......!
(사진6-83. 산티아고 대성당 돔 상부에 그려진 '호루스의 눈' ©www.begonyaplaza.com)
(사진6-84. 보타푸메이로가 걸린 산티아고 대성당의 돔 상부 ©Georges Jansoon, Wikipedia에서 재발췌)
(사진6-85. 보타푸메이로 ©Bjørn Christian Tørrissen, Wikipedia에서 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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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6-82 : By David Stanley from Nanaimo, Canada - Buhen TempleUploaded by AlbertHerring, CC BY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9128065
사진6-80 : By Georges Jansoone - Self-photographed, CC BY 2.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47363
사진6-81 : By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Own work by uploader, https://bjornfree.com/,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16797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