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기사단의 악몽, 스페인에 부르봉 왕조라니!

45/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16)

by 이경석

그라나다의 상징, 알함브라 궁전 아래 16세기 지어진 그라나다 대성당이 있다. 이슬람 모스크 자리에 들어선 성당에는 입구가 다른 로열채플이 붙어있다. 여기에 이사벨 여왕 부부와 그의 딸, '광녀' 후아나 여왕 부부가 잠들어있다.


스페인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 치곤 굉장히 협소하다. 번듯한 왕실 무덤을 놔두고 이제 막 탈환한 그라나다에 묻힌 건 이 땅을 다신 뺏기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사진6-75. 그라나다 대성당의 로열채플, ©이경석)


레콩키스타를 완수하고 가톨릭 순혈주의를 선언해 가톨릭의 수호자란 별칭이 붙은 천하의 이사벨 여왕이지만 자식 복은 지지리도 없었다.


여왕은 1남 4녀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거나 삶이 기구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식이 셋째딸 후아나와 막내딸 카타리나(영국 왕 헨리 8세와 이혼하면서 영국을 가톨릭과 결별시킨 바로 그 첫째 왕비, 캐서린)였다.


언니와 오빠가 모두 요절한 탓에 후아나가 왕위계승 1순위였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이 일찍 죽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이에 그녀의 아들 카를로스 1세가 ‘광녀’ 후아나를 유폐하고 왕위에 오른다. 후아나의 남편이자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는 유럽의 떠오르는 인싸 가문, 합스부르크의 미남왕자 필리프였다.


바야흐로 스페인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카를로스 1세는 엄청난 영토를 받았다. 할아버지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가진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다가 프랑스 왕보다도 영토가 더 많았던 부르고뉴 공국의 상속자인 할머니로부터 프랑스 북부와 네덜란드를 상속받고, 콜럼버스가 발견한 남미까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소유했다. 그 자신도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했다. (카를로스 1세의 황제 명칭은 카를 5세였다)


그러다가 카를로스 1세는 말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 남미는 아들인 펠리페 2세에게 물려주었고, 신성로마제국은 친동생인 페르니난트 1세에게 양위했다. 합스부르크가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쪼개진 것이다.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사진6-76. 카를5세 시절, 합스부르크의 영토 ©https://mapsontheweb.zoom-maps.com)


거칠 게 없을 것 같았던 합스부르크를 무너뜨린 건 전쟁이나 반란 혹은 전염병도 아니었다. 뜻밖에도 근친혼이 문제였다.


왕족의 혈통 보존을 이유로 형제지간인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가 혼인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고대부터 있던 사촌 간 혼인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이건 완전 막장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모(후아나의 여동생 마리아)의 딸과 결혼한 카를로스 1세는 아들 펠리페 2세까지도 다른 이모(후아나의 여동생 카타리나)의 딸과 결혼시킨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서지간이다.


이후 펠리페 2세는 네 번째 부인으로 작은아버지의 아들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2세의 장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그사이 태어난 펠리페 3세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그런데 막시밀리안 2세의 부인은 펠리페 2세의 누이동생이다. 다시 말해 펠리페 2세에게 사촌형제가 되는 막시밀리안 2세는 장인, 여동생은 장모다. 조카와 결혼한 외삼촌이라니, 너무 복잡해서 이해가 안된다고 자책할 필요없다!


근친혼이 불러온 재앙은 5대를 넘기지 못했다.


펠리페 3세가 6촌 동생과 결혼해 낳은 펠리페 4세는 결혼을 두 번 한다. 먼저 프랑스 부르봉 왕가인 앙리 4세의 딸과 결혼해 2남 6녀를 두었지만, 막내딸 마리아 테레사만 장성해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비가 된다. 이는 나중에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프랑스가 개입할 불씨가 된다.


두 번째 부인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외사촌으로 슬하에 3남 2녀를 얻었다. 이 중 장녀 마르가리타(궁정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의 주인공이다)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해 낳은 막내아들이 카를로스 2세로 왕위를 계승한다.


하지만 근친결혼 탓에 곱사등에 매부리코와 주걱턱(다물 수 없는 입에 파리가 들어오지 않도록 콧수염을 길러야 했다) 외모에다가 성적 불구와 정신적 결함까지 더해지면서 카를로스 2세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종말이다.


(사진6-77. 벨라스케스 作 <시녀들>, 프라도미술관 소장)
(사진6-78. 카를로스 2세, 한눈에 봐도 병약해보인다 ©Juan Carreño de Miranda, Wikipedia에서 재발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음 스페인 국왕 자리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스페인 왕가의 혈통이 일부라도 섞인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와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맞붙었다. 유럽 각국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태에 개입하면서, 곧 13년간의 국제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최종 승자는 프랑스였다.


강력한 왕위계승 후보자였던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과 네덜란드가 프랑스 편에 붙은 것이다. 대신, 프랑스와 스페인의 합병은 절대 불가하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렇게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가 펠리페 5세가 되어 스페인 부르봉 왕조를 열었다.


부르봉 왕가는 지금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6세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의 오리지널 부르봉 왕조는 끝내 몰락했지만, 이후 나폴레옹의 침략과 프랑코 독재를 겪으면서도 스페인에서 오히려 프랑스 왕가가 이어지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다.


어쨌건 부르봉 왕조의 갑작스런 등장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세를 키워가던 템플기사단에게 예견된 악몽이었다. 철천지 원수인 탓에 이제는 관계를 완전히 끝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탈출해야 했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46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6-76 : https://mapsontheweb.zoom-maps.com/post/185149397964/the-habsburg-empire-of-charles-v-the-first

사진6-78 : By Juan Carreño de Miranda - [2],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6765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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