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방향의 스트리트(Street)는 1번부터 152번(현재는 220번)까지, 남북방향의 큰길 애비뉴(Avenue)는 1번부터 12번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평면상으로는 너무나 단조롭다. 뭐든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 지루하다 못해 속칭 ‘병맛’이 된다.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기억력을 작동시키는 뉴런은 일상을 깬 이벤트가 생길 때 비로소 활성화된다. 그 이벤트의 간격이 짧을수록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벤트가 발생하는 간격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이벤트와 이벤트 사이를 건너뛰면서 그사이 생략되고 삭제되는 시간은 도둑맞은 것처럼 분하다. 젊을 때와 같이, 매 순간이 도전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 차면 얼마나 삶이 풍부해질까?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도미노 게임처럼 격자가 일렬로 늘어선 뉴욕에서 이 예상을 빗나간, 정신 못 차리게 신나는 분위기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란 말인가?
저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건축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렘콜하스는 비관적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탐욕이 쌓아 올린 뉴욕의 거대한 빌딩들을 프랑켄슈타인같은 귀태로 본다. 도시공간에 대한 사색과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결핍되며 그저 크기만이 존재 가치가 된 도시는 정신착란증 상태라 진단한다.
건축가 유현준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디자인이 제각각인 고층건물들이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뉴욕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당한 블록 길이 덕분에 애비뉴에서 1분마다 마주치는 교차로와 그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게는 보행자에게 끊임없는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봤다. 이벤트가 일어날 경우의 수가 많아진 거리는 걷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고, 당연히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졌다는 설명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연을 따라가건 혹은 내 의지를 쫓던 뉴욕의 거리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이란 없을 것만 같다.
개인마다 보는 시각이 다른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뉴욕을 대표하는 마천루와 맨해튼 그리드가 뉴요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은 공통이다. 내가 받은 느낌도 비슷했다. 3차원 공간에서 체감하는 세계는 고리타분한 격자형 2차원 지도 속 관념으로는 상상불가다.
난 희한하게도 네모반듯한 길에서 지중해의 어느 뒷골목을 떠올렸다. 뉴욕의 마천루들은 주눅들 정도로 높지만 스트리트가 가진 절묘한 비례로 인해 일부로 고개를 꺾지 않는 한 쳐다보기 쉽지 않다. 덕분에 시각적 위압감은 줄어든 대신, 마천루가 스트리트를 감싸 안아 만드는 직관적인 공간감은 계곡을 거니는 듯 아늑하다. 게다가 틈새 없이 거리를 가득 메운 건물들의 저층은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으로 무장되어 있다. 걷다 보면 매 순간 바뀌는 풍경이 어디서 찍어도 화보가 되는 아시시나 산토리니의 골목길을 아주 색다르게 자본주의판으로 버전업시켰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좋다. 거대 스케일과 심리적 푸근함이 공존하고, 완고한 규칙성과 뜻밖의 변화가 뒤죽박죽인 이 골목길에는불가해한 세기말적 역설까지 넘쳐난다.
낮과 밤의 구분이 의미없어진 건 오래고, 판타지를 소비하는 현실의 경계도 아슬아슬하다. 넥타이와 그래피티, 재즈와 힙합이 크로스오버되며 진화를 거듭한 변종 크리처는 곳곳에 창궐 중이었다. 한때 살벌했을 도살장 지역은 뉴욕 최고의 분위기 깡패 레스토랑과 부티끄로 바뀌었고, 잘 차려입은 게이들이 소호의 명성을 이끌어간다.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은 밤이면 모두 지상으로 쏟아져 유리알처럼 반짝이고, 진짜 별빛이 그리운 사람들은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로 달려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찾는다.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로 유명해진 그리니치 빌리지의 달달한 바나나푸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근 코리아타운에서 흘러드는 된장찌개 냄새가 묘하게 섞인 공기는 단연 미슐랭 별점 감이다. 그뿐인가? 매해 살인건수만 서울의 2배가 넘는 범죄도시 주제에 국제질서를 지킨다며 세상의 심장을 자처하는 배포는 급기야 허풍인지 호탕인지 헷갈리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