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미국 워싱턴DC-9)
토마스 제퍼슨은 워싱턴 대통령 시절 초대 국무장관이었고, 후에 3대 대통령이 된다. 그는 정치가 이전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이자 혁명가였고, 자유를 최상위 가치로 신봉한 이상주의자였다. 비록 최근 BLM(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과격한 시위대의 표적이 될 만큼, 그의 이념이 지금 기준과 어울리는지 논란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그는 서른 살 차이의 흑인 노예에게서 다섯 명의 사생아를 두었지만, 자식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비전은 곧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이 되었으니, 그의 기념관이 세피로트의 첫 단계를 차지하는 게 어색하진 않다.
기념관은 로마의 판테온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원래 판테온은 ‘만신전’이다. 세상의 모든 신을 위한 장소라는 의미다. 로마는 피정복민의 다양한 신들을 포용하면서 세계 제국이 되어 갔다.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갈파하던 제퍼슨의 기념관으로 판테온이 가진 상징성은 분명 구미가 당길만 했다.
특히 제퍼슨은 종교의 자유에 있어서만큼은 단호했다. 그가 편집한 성경(일명 ‘제퍼슨 바이블’)은 예수가 일으켰다는 기적과 부활을 모두 삭제했다. 그는 프리메이슨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신론자였다.(이신론은 이성적 판단에 맞게 성서를 해석한 계몽주의 시대 종교관이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대신 자유와 관용을 얘기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 새길 문장을 미리 남겼는데, 자신을 ‘독립선언서 작성자’, ‘버지니아 대학 창립자’이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안 입안자’로 소개해놓고 있다. 미국 대통령을 역임했던 것보다도 종교의 자유를 수호한 인물로 후세의 평가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제퍼슨 기념관은 맥밀런 계획에 따라 내셔널 몰의 아래쪽 매립지에 들어섰다.
설계공모를 하고 초석을 놓은 건 다름 아닌 열렬한 제퍼슨 추종자이자 프리메이슨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가 기념관의 설계자로 선택한 건축가는 존 러셀 포프였다. 포프는 흰 대리석으로 판테온의 외관을 충실히 재현했지만, 내부는 로마의 것과 전혀 달랐다. 돔의 정중앙 바로 아래 팔각형 기단 위에 서 있는 커다란 제퍼슨 동상이 전부라 내부에 대한 첫인상은 조금 밋밋하다.
그러나 동상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빙 둘러선 네 개의 벽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바뀐다. 거기엔 독립선언서나 그의 종교관과 정치관을 드러내는 편지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그걸 읽다 보면 어느새 제퍼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 빈공간을 압도하듯 울리는 것만 같다.
동시에 동서남북 네방향으로 외부를 향해 열린 기념관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되어 세상 곳곳으로 그의 말씀을 실어 나른다. 그렇게 미국은 그의 복음에 끊임없이 감응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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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