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남쪽의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부터 그 북쪽에 워싱턴 기념비와 백악관을 하나의 축으로 놓고 보면 좌우로 광장과 광장을 연결하는 사선들이 거의 대칭으로 계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 서클과 마운트버논 광장, 듀퐁서클과 로건서클이 좌우 동일한 위치에 각각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패턴은 분명 어디선가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영국편에서 언급한 대로, 1666년 런던대화재 이후 로열 소사이어티 회원이었던 크리스토퍼 렌과 존 이블린이 앞다퉈 내놓았던 런던대개조 계획과 매우 유사하다. 특히, 존 이블린의 계획을 본 후 DC 지도를 보면 소름끼칠 정도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다. 이 패턴은 너무나 유명한 종교적 상징을 차용했을뿐이다.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에 기원을 둔 문양인데 생긴 게 꼭 나무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카발라(Kabbalah)가 무엇인가? 오로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입과 귀로 전해져 온 비밀의 가르침을 뜻한다.
카발라의 원조는 모세로 여겨진다. 모세가 호렙산에 올랐을 때 야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석판에 새겨진 십계명과는 다르게 그 가르침은 문자로 남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카발리스트들은 모세가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암호화된 메시지를 숨겨놨다고 확신했다. 이 비밀의 가르침은 율법과 믿음이 아닌, 명상과 영혼의 고양을 통해 인간에 내재된 신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노시스적이기도 하다.
카발라는 예수 이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12사도의 가르침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졌다. 현재 신약 성경의 주류는 바울의 저작들인 데 반해, 성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되었지만, 나그함마디에서 구사일생으로 발견된 초기 복음서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작성한 것들이 많다. 특히, 토마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나를 따르라’라든지 ‘나를 믿으라’라는 말 대신 깨달음의 경험을 강조한다. 여기서 예수는 구원자(메시아)가 아니라, 지혜의 전파자인 셈이다. 카발라는 이후 연이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가톨릭이 기독교의 주류로 굳어지면서 완전히 지하로 숨어버렸다. (스페인편 39화 참조)
그런 카발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12세기 말 프랑스 남부였다. (또 프랑스 남부라니! 십자군 전쟁 직후 프랑스 남부에는 확실히 성배 전설부터 카타리파와 위그노, 카발라에 이르기까지 기존 주류 기독교와는 다른 새로운 영성의 흐름이 형성된게 맞다. 프리메이슨도 프랑스 남부를 매개로 카발라와 연결된다) 이때 알려진 것이 생명의 나무다.
이는 우주의 창조 원리로서 태초의 창조자로부터 10가지 빛이 발현되고 그것들이 상호 작용하여 대우주를 형성한 것을 나타낸다. 이 10개의 빛을 세피로트라 부르고, 세피로트 간에는 22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 길을 따라 빛들은 다시 창조주에게 되돌아간다고 한다. 인간의 영혼도 세피로트에 담긴 신성한 힘을 이용해 그 길을 찾으면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즉,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생명의 나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4개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에 3개의 기둥으로 그려진다. 4개 층은 아래로부터 아시야, 예치라, 브리아, 아르질루트의 영역이며 각각 흙, 물, 공기, 불에 해당한다. 3개의 기둥 중 중앙에는 꼭대기부터 차례로 케테르(왕관), 티파레트(생명, 아름다움), 예소드(기반), 말후트(왕국)의 4개 세피로트가 있다.
(사진8-27. 세피로트 개념도)
오른쪽은 남성을 상징하는 자비의 기둥으로 위에서부터 호크마(지혜), 헤세드(자비), 네차흐(승리), 왼쪽은 여성을 상징하는 정의의 기둥으로 위에서부터 비나(지성), 게부라(정의로운 힘), 호드(영광)의 3개 세피로트가 위치한다. 자비의 기둥과 정의의 기둥은 솔로몬 성전의 야긴과 보아즈에 상응한다.
인간들이 사는 가장 낮은 지상계는 말후트에 있다. 여기서부터 명상 기행을 통해 결국은 대우주와의 접점이자 생명의 원천이 되는 케테르까지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의 나무를 워싱턴 지도 위에 겹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먼저, 10개의 세피로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인간의 왕국(말후트)을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에 놓으면 예소드는 워싱턴 기념비, 티파레트는 백악관이 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른쪽 기둥의 호크마는 로건서클, 헤세드는 마운트버논 광장, 네차흐는 미국해군기념광장이 되고, 왼쪽 기둥의 비나는 듀퐁서클, 게부라는 워싱턴서클, 호드는 국무부 청사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제 말후트인 제퍼슨 기념관에서 여행을 시작하면서 케테르를 향해 가보기로 한다.
(사진8-28. 워싱턴DC 지도 위에 세피로트를 겹친 모습, 구글지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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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