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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석 Aug 31. 2023

백악관, 세피로트의 심장

74/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미국 워싱턴DC-10)

   기념관 속 제퍼슨이 지그시 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방향은 호수 건너 정확히 백악관을 가리킨다. 후대 대통령들이 미국의 정신과 어긋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멘토의 역할을 자임한 듯하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백악관은 DC가 수도로 정해진 이후 처음 들어선 공공건축물이다. 세피로트 상에서는 티파레트다. 티파레트는 아름다움을 의미하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심이다. 세피로트를 종종 인체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티파레트의 위치는 심장이다. 백악관은 미국을 움직이는 장소이니, 미국의 심장이라는 표현도 신기하게 딱 들어맞는다.              


(사진8-30. 좌 : 백악관 북측 파사드 ©이경석, 우 : 백악관 남측 파사드 ©Wikipedia에서 재발췌)

  

   여기는 원래 늪지대라 백악관의 위치를 다시 선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랑팡의 당초 계획대로 건설된다. 워싱턴 대통령은 설계공모로 제임스 호반이라는 건축가를 선발한다. 두 사람은 그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워싱턴은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던 호반의 신고전주의적 작품들을 좋아했다. 무기명으로 제출된 작품 중에서 호반의 설계안을 가려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호반도 프리메이슨이었다.


   호반이 설계한 백악관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레인스터 하우스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은 아일랜드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건축물이다. 특히 백악관의 북쪽 파사드는 영락없이 빼닮았다. 그런데 신생 미국의 대통령궁을 만들면서 많고 많은 유럽의 세련된 건축물 중에 왜 레인스터 하우스를 모델로 삼았을까? 레인스터 하우스의 역사에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저택은 제1대 레인스터 공작이었던 제임스 피츠제랄드가 1745년 건축했다. 그는 아일랜드 프리메이슨 본부의 창립자로 참여한 인물이다. 여기에 대해 다른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피츠제랄드 가문이 프리메이슨과 관련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아들(2대 공작 윌리엄)과 손자(3대 공작 오거스투스)가 모두 아일랜드 프리메이슨의 그랜드마스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3대 공작은 무려 61년간이나 아일랜드 그랜드 마스터를 역임했다.


   아일랜드 프리메이슨은 잉글랜드 다음으로 설립되어 두 번째로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레인스터 하우스를 비롯해 그들과 관련된 유산들에 미국 프리메이슨들도 주목했을 거라 추측해본다. 더구나 건축가 호반에게 아일랜드 더블린은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사진8-31. 레인스터 하우스, 현재 아일랜드 국회의사당 ©Jean Housen, Wikipedia에서 재발췌)




   백악관은 미리 신청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백악관은 중앙에 관저 건물을 두고 양옆에 이스트윙과 웨스트윙이라는 부속건물이 붙어있는 모양새다. 두 개의 부속건물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26대 대통령 시절인 20세기 초에야 건설되기 시작했고,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32대 대통령 시절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증개축되었다.


(사진8-32. 백악관 내부구조, 오른쪽이 이스트윙, 왼쪽이 웨스트윙 ©https://i.imgur.com/M5QXjdB.png)


   이스트윙은 원래부터 백악관 방문자들을 위한 휴대품보관소와 대기실 등이 있던 곳이었다. 지금도 관람객들은 이스트윙을 통해 입장한다. 여기엔 대통령 가족들을 위한 극장이나 운동시설, 게임룸 등이 있다. 또한 2층은 온전히 영부인의 공간인데, 지하엔 비상시 대피시설도 설치되어 있다.(여기부터 2개 이상의 비밀통로가 재무부 건물 지하와 같은 백악관 밖 여러 곳으로 이어진단다. 당연히, 미국 대통령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팩트를 확인할 길은 없다!)       


   이스트윙에서 회랑을 건너면 관저건물이다. 1층은 접견실로 역대 대통령들의 도자기 컬렉션 등을 전시한다. 3층은 대통령 가족의 실제 거주공간이라 출입불가이지만, 2층은 방문이 가능하다.


   2층 남측, 그러니까 백악관 건물 제일 중앙에는 3개의 리셉션룸이 자리한다. 카펫이나 벽지 색깔에 따라 그린룸, 블루룸, 레드룸으로 불리는데 우리로 치자면 사랑방이다. 샹들리에와 벽에 걸린 초상화, 고풍스런 가구들이 유럽의 궁전을 보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정중앙에 위치한 블루룸은 모양도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 다른 방들과는 다른 위계가 느껴진다. 매년 백악관의 공식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곳에 설치된다. 또한 룸을 감싼 반원형의 발코니(공식 명칭은 ‘South Portico’)가 딸려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와 대국민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한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성베드로 성당 2층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는 교황처럼 말이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코로나에 확진되어 격리되자 지지자들을 남쪽 잔디밭에 불러놓고 발코니에서 재선 연설을 했다. 다음 해에도 코로나로 130년 전통의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가 취소되자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이스터 버니와 함께 블루룸 발코니에 깜짝 등장해 실망한 아이들을 달래주기도 했다.


   블루룸 바로 위층의 방 역시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옐로우룸으로 불리는 방은 초기에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대통령 가족의 사적 공간이다. 원래 여기는 발코니가 없었다. 1층 블루룸 발코니에서 올라온 기둥은 곧장 3층 천장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주변에 넓고 좋은 정원이 있다지만 벽으로만 막힌 집에 대통령도 답답했었나 보다. 역사적 건축물의 미적 가치를 훼손시킨다는 끈질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트루먼 대통령이 2층 옐로우룸에도 발코니를 설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트루먼 발코니’다.


   관저 2층에는 백악관에서 제일 큰 방이 있다. 동쪽에 있어 이스트룸이라 불린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양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으로 익숙한 방이다. 유명 연주자들을 불러 백악관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과거 임기 중 서거한 케네디 대통령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이 엄수된 곳이기도 하다.      


   이쯤 보면 투어가 끝난다. 아쉽지만 웨스트윙은 드라마로나 볼 수 있다. 사실 여기가 백악관의 진짜 속살인데 말이다.


   백악관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 집무실(오벌룸)도 웨스트윙 1층 남쪽 귀퉁이에 있다. 이름처럼 타원형이다. 여기에 이름도 멋진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이 있다. 


   북극을 탐험하다 실종된 영국 선박 레졸루트호를 미국이 찾아줬는데, 188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폐선박을 책상으로 만들어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본래 두 개를 만들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런던 버킹엄 궁전의 영국 여왕 집무실에 있다. 선박의 이름에서 따왔지만, 전 세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미국 대통령의 역할과 깔맞춤한 듯한 명칭이 기가 막히다.


   집무실 근처에는 서재(클린턴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았던 섹스 스캔들의 주무대였다)와 함께 두 개의 회의실이 있다. 캐비넷룸과 루스벨트룸이다.


   캐비넷룸은 말 그대로 장관들이 다 모이는 국무회의용 회의실이다. (사진을 보면 생각보다 좁아 다닥다닥 붙어앉는다) 루스벨트룸은 다목적 회의실인데 웨스트윙을 만들고 개조한 두 명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념해 닉슨 대통령이 작명했다. 그래서 방에는 두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진8-33. 웨스트윙 1층에 위치한 루스벨트 룸 ©Wikipedia에서 재발췌)


   재밌는 것은 벽난로 위 메인 자리를 놓고 벌어진 실랑이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시어도어 루스벨트 초상화가 걸렸고, 민주당 정권에선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바꿨다. 그러다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 양보하면서 시어도어가 영구 안착했다.


   방에는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도 전시되어 있다. (미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이지만, 수상 사유는 러일 전쟁 중재에 대한 공이다. 우리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는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정당화시켰고, 그 전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을 정도로 노골적인 친일파였다) 


   두 명의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남긴 흔적은 그만큼 상당하다. 서로 정파가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은 먼 친척뻘이었고, 모두 프리메이슨이기도 했다.


   웨스트윙의 나머지 방들은 부통령이나 비서실장, 보좌관 사무실이다. 지하 상황실은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영상으로 네이비씰의 빈 라덴 사살작전을 지켜보던 사진으로 꽤 알려진 곳이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내부 인테리어를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어, 때가 되면 신임 대통령의 가치관과 향후 정책방향을 가늠해 보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프리메이슨 건축가와 프리메이슨 대통령들의 흔적을 백악관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하는 이유도 된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 ‘더 앨립스’라고 불리는 백악관 남쪽의 널따란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름처럼 공원은 타원형이다.


   백악관의 중심축과 만나는 공원의 북쪽 경계에 서면 비석같은 돌을 볼 수 있다. ‘제로 마일스톤’이다. 모든 길의 시작점이 되는 ‘도로원점’이다. 각 나라마다 이 기준점은 가장 상징적인 중심장소에 설치된다. 모든 길이 통하는 로마에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이 있던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고, 프랑스는 노트르담 성당 앞에 있다. 우리나라는 광화문 광장의 중앙이라고 도로법령에 적시되어 있다. (원래 이순신장군 동상 자리에 있다가 세종로 사거리의 고종황제 칭경기념비를 거쳐 지금은 동화면세점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서서 정남쪽을 바라보면 건너편 제퍼슨 기념관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제퍼슨 기념관에서 백악관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이 실감나는 곳이다. 이 중심축에서 살짝 동쪽으로 빗겨 이름마저 거창한 ‘국립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매년 12월 초 불을 밝히는데, 공사다망한 미국 대통령이지만 직접 점등식에 참석한 지 백 년이 넘었단다.


   나무 뒤편에는 하늘을 뚫을 기세로 DC의 유명한 상징물이 우뚝 서 있다. ‘워싱턴 기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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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8-31: By Jean Housen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7723715

사진8-32: https://i.imgur.com/M5QXjdB.png

사진8-33: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9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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