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배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이 있다. 택배를 받으면택배비를 지불한다는 이유로 대리 셔틀을 시키는 것 같은 미안함이 든다. 손하나 까딱하면 집 앞까지 배달되는 편리함이 거북하기까지 하다.필요에 비해 노동력의 값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그래서 결혼하기 전에는 택배를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거북한 감정 따위와는 상관없이 택배는 필수 불가결한 서비스였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움직일 수 없는 데다, 코로나 19까지 겹쳐 외출할 엄두가 안 났다. 특히 나는 육아 용품 준비도 미리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아이를 낳고 거의 모든 육아 용품(젖병, 젖꼭지, 분유, 이불 등등)을 온통 인터넷으로 급히 구매해야 했다. 그때마다 택배는 육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됐다.
육아 용품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택배는 주문하는 족족 이틀 만에 도착했다. 급히 필요하지 않은 아기 용품도 3일이면 집 앞까지 배달됐다. 저녁 10시에도 도착했다. 심지어 어떤 기업은 샛별 배송, 새벽 배송까지 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니,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택배 서비스에서 느꼈던 이유모를 불쾌감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불현듯 노동자의 고단함이 생각났다. 힘들게 야근하고 새벽에출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택배 노동자들의 노고가 감사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 육아 일상에서 택배 노동자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필요해진 물건 때문에 곤욕을 치렀거나 바쁜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거나, 백일도 안된 아기를 업고 코로나19에도 밖을 나가야만 했을 것. 나 대신 발이 되어주는 택배 덕분에 우리 아기는 전염병의 위험 앞에서 오늘도 안전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물론 택배 기사님들이 나를 위해 일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받고 있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를 임금이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적당한 노동의 가치를 받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코로나 19의위험에도 우리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택배 기사들의 노고를 어떤 가치와 바꿀 수 있을까 싶다.
요즘은 '감사합니다'란 문자도 택배 기사들이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물량이 너무 많아 바쁜데, 감사 문자까지 확인하는 일이 너무 버겁다는 이유에서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문 앞에 시원한 냉수라도 둘까 하지만, 이 또한 부담이 될까 못하고 있다.
종종 신문 기사에서 과로로 사망한 택배 기사님들의 소식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택배 기사와 같은 '필수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나 임금 등의 처우가 나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