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엉이다 Sep 02. 2023

소원을 말해 봐

14년 후에 너희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냉장고에 포도도 있고, 파인애플도 있는데 꼭 복숭아를 먹겠다는 아이들.

누나가 복숭아를 말하니 둘째도 덩달아 복숭아를 먹겠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없는 것을 내놓으라니 이런 생떼가 어디 있나 싶지만 마침 슈퍼블루문이 뜬다는 뉴스를 봤기에 핑곗김에 온 가족이 저녁 산책을 나섰다.


원래 외출한 목적이 복숭아였으니 마트부터 들러 둘째 아이가 탄 유모차에 복숭아를 실어놓고, 천천히 집까지 걸었다.

구름에 가려져 못 보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커다랗게 떠오른 달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을 놓치면 14년 뒤에나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얘들아, 달 보고 소원 빌자."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빌고 싶어 진다.

첫째 아이는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제법 폼이 나왔다.

소원이 뭔지도 모르면서 제 누나가 두 손 모으고 눈 감는 모습을 본 둘째 아이가 냉큼 따라 했다.

커다란 달을 바라보며 나 역시 얼마 전에 다친 첫째 아이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기를 빌었다.




아이들이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궁금해서 슬쩍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려동물에 관한 것이었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라는 누나 말에 누나 따라쟁이 동생은 "고양이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란다.

반려어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하긴, 아이는 처음부터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얘기했었으니 포기할 수 없겠지 이해도 됐다.


언제쯤 아이들이 가족의 행복, 건강, 안녕을 빌어줄까.

그런 기대는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지도.




슈퍼블루문을 다시 볼 수 있다는 14년 후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14년 후면 첫째 아이는 21살, 둘째 아이는 17살이 된다.

아이들은 얼마나 많이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나와 남편의 모습은 어림잡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의 미래는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

어차피 그 미래는 아이들이 그려나갈 테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14년 후에 슈퍼블루문을 다시 볼 수 있대."

"그럼 난 몇 살인 거예요?"

"21살."

"엄마, 나는? 나는요?"

"17살."

"우리 그때도 같이 달 볼까?"

"네!"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14년 후를 장담할 순 없지만 이렇게 기록해 놓았으니 나중에 슈퍼블루문이 뜬다는 소식이  들다면 이 글을 꺼내볼 수 있겠지.

그럼 친구들 만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첫째 아이와 집에서는 세상 과묵한 둘째 아이를 호출해서 귀찮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다 같이 달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달을 보며 어떤 소원을 말할까.

아이들의 소원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소원은 언제나 그랬듯, 너희가 행복한 거야.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제목사진출처 : 언스플래쉬

매거진의 이전글 이만하길 다행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