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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ffalobunch May 10. 2019

부모의 어버이날



되물림의 연속이다. 부모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장성하여 다시 부모가 된다. 처음부터 부모였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모는 항상 부모였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내게는 죽을 때까지 부모였기만 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 부모도 한때 우리처럼 자식이었을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서랍 정리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빛바랜 사진 몇 장을 발견하셨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앳된 얼굴의 어머니가 있었다. 어버이 날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발견한 사진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기억이 나냐고 어머니께서 물어보셨다. 추억의 조각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이어 맞추기 어려웠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들이 몇 있었다.

어머니가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중풍 때문에 거동이 힘드셨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어머니께서는 결혼을 하셨고, 나를 낳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신 것이다. 그것도 나로 인해서. 3.5kg의 우량아로 태어난 나는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물론 머리 크기만이 제왕절개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 당시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 것이 유행하던 무렵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살이 찢기는 아픔과 함께 배에 큼직한 흉터를 어머니에게 안긴 채 태어났다. 어머니 배의 흉터를 볼 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배를 만져 보면 깊이 파인 흉터 자국이 만져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늘 불효를 하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내게 삶의 어떤 지침표 같은 심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 가족은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야만 했다. 어머니는 군인 장교의 아내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여러 고충들을 타지에서 홀로 견디셔야 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추억이 궁금한 나는 가끔 그에 대해 물어볼 때가 있는데 세월이 기억을 점점 옅게 만드는 것 같다며 속상해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돌아가셨다. 어머니 나이 고작 30대 중반이었을 때였다. 결혼 후의 생활은 가사와 육아 그리고 군인 장교 아내로서의 삶으로 정신없이 바쁜 한 해 한 해를 보내셨기 때문에 중풍에 누워 계신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부모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부모가 되는 역할의 교차점에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기게 된다.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서 하나의 선택을 감행해야 하는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 어머니는 지나는 말로 아쉬움을 가볍게 표현하셨지만, 그것이 유독 어버이날이기 때문인지 그 아쉬움의 깊이가 더 깊어 보였다. 부모님의 어버이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겐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부모님께는 어머니 아버지인데 왜 늘 분리해서 생각을 했을까 싶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누군가의 부모 이전에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당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옅어지는 기억은 이를 알리가 없다. 야속함에 사무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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