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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ffalobunch May 10. 2022

아빠의 수염


(아빠의 수염, 이땐 아버지도 '아빠'여야만 한다.)
띵똥 띵똥. 자정을 넘은 시간 초인종이 울린다. 으악! 아빠다! 20여 년 전(혹은 30여 년 전) 꼬맹이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는 내방으로 오셔서 새근새근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니 자는 척을 하고 있는 나를 깨우신다. 그제야 굳이 코를 고는 시늉까지 하고 있노라면, 아버지는 하루의 고된 시간만큼 어느새 자란 까끌까끌한 수염을 내 얼굴에 비비신다.

참을 수 없는 따끔거림에 약간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눈을 뜨면 그때부터 아버지의 애정 섞인 술주정이 시작된다. 왜 그땐 이해하지 못했을까?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당신의 그 엄한 성격으로 사랑한다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며칠 전 결혼식 사회를 이유로 면도를 했는데, 그새 거뭇거뭇 수염이 올라왔다. 아버지와 닮은 입술 그리고 인중 위로 올라온 수염이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를 낳으신 부모님의 나이만큼 나이 들어버린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까끌까끌 수염 난 얼굴을 맞대고 비비며 당신의 애정 섞인 술주정을 들을 수 없을 만큼 커버린 어른이, 어느새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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