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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Oct 16. 2020

그다지 크지 않은 우리 집

우리는 왜 80평 단독 주택을 사려했나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가 살기에 적당한 집 크기는 얼마인가. 국토부에서 정한 2인 가구 임대 주택의 크기는 70 제곱미터 (21평) 이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면 괜찮은 크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도 지난 수십 년 동안 21평 정도면 아이 없는 부부가 살기에 충분한 집 크기라고 생각해왔다. 지난 8월에 그 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헤븐리 힐스 Heavenly Hills는 인구가 20만 명 조금 넘는 미국 남부의 중소 도시이다. 인구로는 서울시 용산구 (26만 명, 2011년 기준) 정도 규모인 작은 도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 년 전에 아내의 직장 때문에 이 곳에 이사를 오게 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 포레스트 Alexander Forest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알렉산더 포레스트는 헤븐리 힐스 중심부 북서쪽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이다. 아이들의 귀여운 놀이터로 유명한 그린 스톰프 Green Stomp 공원과 시립 식물원을 중심으로 1970년대에 지어진 아름다운 목조 주택들이 그 주변을 겹겹이 둘러싼 형상이다.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면 종종 그린 스톰프 공원 옆을 지나쳤다. 언제나 공원 주변은 조깅을 하거나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로 활기찼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산책을 하던 주민들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곤 했다. 집집마다 앞마당 잔디는 푸르렀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꽃나무들은 보는 사람을 언제나 미소 짓게 만드는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동네였기에, 우리는 언젠가 지금 사는 칙칙한 아파트를 나와 알렉산더 포레스트에 평생 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바이러스의 유행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봄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던 우리 부부는 좀 더 큰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미래에도 재택근무를 지속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더 큰 집으로 옮길만한 좋은 구실도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던 방 두 개짜리 아파트는 이미 너무도 비좁은 상태였다. 방은 각각 침실과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우리는 기왕 더 큰 집을 구하는 김에 방 세 개짜리 집을 구해 각자의 사무실을 집에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헬스장에 갈 수 없었기에 집에 피트니스 룸도 만들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방 세 개 이상이면서 거실과 피트니스 공간이 확보된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라면 꿈도 꿀 수 없겠지만 헤븐리 힐스에서는 가능했다. 이 곳 중산층들은 보통 40평에서 50평 정도 되는 집에 살았는데 집값은 평균 이억 원 안팎이었다. 여기서 50평짜리 집에 살아 보지 않는다면 우린 평생 이런 큰 집에서 못 살지도 몰라. 우리는 망설임 없이 50평 대의 집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8평 아파트는 이미 짐으로 가득 차 비좁은 상태였다. 미국의 집들은 옷장과 화장실, 창고 등을 크게 짓기 때문에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은 한국의 28평보다 작게 느껴진다. 28평이 절대적으로 작은 평수는 아니지만 이 도시에서는 가장 작은 축에 속했다. 아내의 직장 동료가 대지 면적 3,700평에 연면적 60평짜리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28평 아파트는 비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헤븐리 힐스로 옮겨온 후, 우리는 넓이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근처의 48평짜리 타운하우스를 시작으로 우리는 집 찾기를 시작했다. 말이 48평이지 집 크기가 우리 아파트보다도 작은 것 같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집 구조에 따라 체감되는 크기의 차이가 크다고 했다. 미국은 평수보다도 구조에 초점을 맞추어 봐야 하는구나. 우리는 최소한 56평 이상 되는 집을 찾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 가운데 하나는 단위 환산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56평이라고 말하면 엄청나게 큰 집 같지만 2,000 제곱피트라고 말하면 대강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가령 1,500 제곱피트는 너무 작은 것 같으니 2,000 제곱피트 정도 되는 집을 찾아보자고 하면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말은 사실 42평짜리 집이 너무 작으니 56평짜리 집을 찾아보자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한 번도 56평 이상 되는 집을 찾자고 말한 적이 없었다. 단지 2,000 제곱피트 정도 되는 집을 찾자고 말했을 뿐이었다.


크기 이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채광이 좋은 집이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미국인들은 집 안이 어두운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은 분위기가 채광을 좀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동굴처럼 어두침침한 집에 희미하게 플로어 램프를 켜고 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밝은 형광등 불빛을 싫어하는 동료 때문에 오후 네 시 이후로는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기도 했다. 그 동료의 파란 눈동자를 보면서 눈에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면 빛이 더 눈부시게 느껴지는 것일까 궁금해한 적도 있었다.


헤븐리 힐스에서 밝은 집은 대부분 새로 지은 집이거나 크고 고급스러운 집들 뿐이다. 짐작컨대 창문이 크고 많으면 냉난방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단열이 잘되는 요즘 집들이나 상대적으로 많은 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고급 주택들이 창문이 많고 자연 채광이 좋은 것 같다. 채광이 좋은 집을 찾던 우리는 점점 더 큰 집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좁고 어두운 80년 된 집을 보다가 밝고 채광이 쨍한 고급 주택을 보면 어디가 더 살고 싶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는 이제 70평 정도 되는 집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70평 대신 2,500 제곱피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초저금리는 미국의 주택 시장을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아침에 나온 집이 저녁에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우리가 좋아하는 알렉산더 포레스트는커녕 조건에 맞는 집을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오빠, 당장 일어나. 우리 이 집 보러 가야 해!”


어느 늦여름 주말,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나를 급히 깨웠다. 놀랍게도 우리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알렉산더 포레스트 한가운데, 그린 스톰프 공원 북쪽의 가장 매력적인 위치에 아름다운 이층 집이 한 시간 전부터 매물로 올라와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사진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여긴 우리 집이 될 거야.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해.


알렉산더 포레스트는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동네답게 매물이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간혹 집이 나오더라도 폐가에 가깝도록 관리가 안 된 집이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집이었다. 그 마저도 구매자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웃돈이 수천만 원씩 오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행여 이 날처럼 합리적인 가격에 매력적인 매물이 나오면 순식간에 집을 보겠다는 예약이 몰려 집을 볼 시간을 잡기도 어려웠다.


부랴부랴 알렉산더 포레스트에 도착한 우리는 집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집은 그린 스톰프 공원 북쪽 살짝 올라간 언덕에 위치한 연한 갈색 혹은 따뜻한 회색의 이층 집이었다. 집 현관의 벤치에 커피를 들고 앉아 있으면 공원의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올 것 같은 높이였다. 한적하지만 탁 트인 느낌이 시원했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라 새소리만 들릴 뿐 대체로 조용했다. 잘 가꾸어진 앞마당의 잔디는 어느 집보다도 푸르렀고, 아름드리 버드나무 한 그루는 왠지 모르게 든든해 보였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집이 있다. Photo by Evan Dvorkin on Unsplash


집 안에 들어간 우리는 더욱 놀랐다. 1970년대에 지어진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마루와 벽은 깨끗했다. 유행이 지난 듯 보이는 화장실 벽지와 부엌의 타일 장식들 조차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보아 집주인은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분명했다. 전반적인 관리 상태도 말할 수 없이 좋았기에 주인이 얼마나 관리를 잘 해온 집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두운 거실과 오래되어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주방을 가진 집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밝고 넓은 거실과 리모델링을 해서 모던한 느낌을 주는 탁 트인 주방은 일단 우리를 안심시켰다. 거실 옆에 자리한 응접실은 피트니스 룸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었고, 큼직한 식당은 카페처럼 꾸며서 우리 부부의 공유형 오피스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당에서 이어지는 볕 잘 드는 썬룸(온실)은 우리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가 될 것이 확실했다. 넓은 뒷마당도 이리저리 쓰임새가 많을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노천카페 테이블을 집 뒷마당에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층에는 큼직한 방이 네 개나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안쪽의 드레스룸이 큼직한 방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침실이 될 예정이었다. 가운데 북쪽으로 창이 난 방은 기타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음악실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서쪽과 남쪽의 방 두 개는 각각 우리 부부의 단독 사무실로 낙점되는 분위기였다.


삼십 분 정도 구석구석 집을 둘러본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쳐 돌아가는 헤븐리 힐스 부동산 시장을 두 달간 경험한 우리는 망설이는 순간 매물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집주인에게 오퍼(매매 제안서)를 넣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길까 웃돈을 20 퍼센트나 더 얹었다. 집주인은 무척 기뻐하며 우리와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은행이 열면 계약금을 치르기로 하고 와인을 한 병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을 산 것을 자축하며 와인으로 한껏 기분을 내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 아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 자?”


“오빠, 그 집 청소하려면 진짜 힘들겠다. 그치?”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과연 그 집이 크긴 컸던 것 같은데 사실 집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진 않았었다. 부동산 앱으로 확인해보니 2,800 제곱피트를 조금 넘었다. 평수로 환산해보니 대략 80평이었다.


“그래도 우리 둘이 같이 청소하면 즐겁겠지?”


애써 밝게 말하려 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목소리에서 그늘이 느껴졌다. 나는 목구멍에서 겨우 게워내듯 으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아내는 드디어 로봇 청소기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청소기가 한 대면 한 층 밖에 청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위층에서 사용할 로봇 청소기 한 대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굳이 남는 방 하나를 음악실로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질문을 했다가 있어서 나쁠 게 없다고 자문자답을 하기도 했다. 화장실 세 개를 청소하기는 너무 힘들 테니 샤워는 한 곳에서만 하자는 아내의 제안에서 큰 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또한 식당은 너무 크니까 평소에는 주방 옆에 작은 식탁을 두고 밥을 먹으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큰 집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던 나는 집이 너무 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빠, 잔디에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면 한 달에 물 값이 삼십만 원쯤 더 나온대.”


남자 아이돌 가수의 새 앨범이 나왔다고 말할 때처럼 아내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현듯 낮에 본 푸르른 앞마당 잔디가 떠올랐다. 나는 인터넷에서 잔디에 물 주는 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잔디에 물을 주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은 해뜨기 직전 새벽이라고 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물을 주면 잔디가 물을 미처 다 흡수하기 전에 물이 증발해서 잔디가 충분한 수분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물을 주면 물이 밤새 축축하게 땅에 남아 버섯이나 이끼가 자라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잔디에 물을 주기에는 적당히 수분이 유지가 되다가 서서히 증발하는 해뜨기 직전 새벽이 가장 좋다고 했다.


잔디를 한 번도 길러보지 않은 내겐 유익한 정보였다. 문득 잔디에 주어야 할 물의 양은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 결과 일주일에 2.5 센티미터에서 4 센티미터 정도 주는 것이 적당하다고 했다. 측우기의 원리를 이용해서 잔디밭 한가운데에 물통을 놓아두고 그곳에 물이 2.5 센티미터 쌓일 때까지 물을 주면 된다는 팁도 있었다. 한 주 동안 비가 많이 오면 따로 물을 안 주어도 되지만 비가 안 오거나 부족하게 올 경우 나머지 부족분을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일기예보를 항상 주의 깊게 보고 강우량을 확인해야 하는구나.


토요일 새벽마다 삼십 분씩 물을 주면 싱싱한 잔디를 가꿀 수 있다. Photo by Mohammad Rezaie on Unsplash


검색을 하면 할수록 나의 잔디에 대한 지식은 늘어만 갔다. 스프링클러를 여러 개 사서 한 번에 잔디밭에 물을 줄 수도 있지만, 잔디밭이 너무 넓거나 앞마당과 뒷마당이 나뉘어 있을 경우 사람들은 앞마당에 스프링클러로 십오 분 정도 물을 준 후 뒷마당으로 옮겨서 다시 물을 주는 것 같았다. 혹은 토요일 아침은 앞마당, 일요일 아침은 뒷마당 등으로 요일을 나누어 물을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주말 아침을 모두 바쳐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잔디밭에 물 주는 일을 맡길 수도 없었다. 아내는 처음부터 잔디밭 관리를 할 필요가 없는 집을 원했기 때문에 잔디밭 관리는 집을 사기 전부터 나의 임무였다.


물 주기와 더불어 잔디 관리의 기본은 잔디 깎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고용해 잔디를 깎게 할 경우 한 달에 오만 원에서 십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잔디를 깎기도 하는데, 보통 매주 한두 시간 정도를 잔디 깎는데 쓰곤 한다. 그러므로 나의 주말 일과는 새벽 잔디 물 주기를 시작으로 오후 잔디 깎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물론 가을에는 블로워(낙엽 청소용 강풍기)로 낙엽을 잔디에서 불어내어 길가에 모아두는 일도 추가된다.

 

잔디를 검색하던 중에 집 주변에는 나무껍질을 깔면 안 된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흰개미들이 나무껍질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 주변 외벽에 닿도록 나무껍질을 깔 경우 집 내부로 흰개미가 침투해서 기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글쓴이는 집 주변에 자갈을 까는 것을 추천했다. 문득 그 집 주변에 나무껍질이 깔려 있던 것이 생각났다. 자갈을 업체에 맡겨서 깔면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 것이 뻔했기에 나는 직접 자갈을 까는 방법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도매 업체에서 자갈을 배달시키면 덤프트럭이 와서 우리 집 앞마당에 자갈을 쏟아붓고 간다고 했다. 그 자갈을 집 주변으로 옮기는 데는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손수레와 납작한 삽이 필요했다. 자갈을 300 킬로그램 정도 주문하면 손수레로 20 킬로그램씩 열다섯 번 정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앞마당 경사가 제법 있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갈을 옮겨 집 주변에 깔 때는 그냥 흙 위에 자갈을 붇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땅을 5 센티미터 정도 파내고, 집 바깥쪽으로 미세한 경사가 생기도록 평평하게 다져야 한다. 그래야 비가 왔을 때 물이 집 쪽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기울기를 재기 위해서는 경사 양 끝에 말뚝을 박고 끈으로 두 개의 말뚝을 연결한 후 기울기를 잰다. 기울기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면 그 위에 공업용 방수포를 깔아 자갈이 유실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 위에 자갈을 떠서 덮어주고 자갈 주변에 삐져나온 방수포는 벽돌이나 화단 구분용 자재를 깔아서 가려준다. 이 모든 일을 퇴근 후에 나 혼자서 조금씩 한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업체를 고용하는 게 나을까 고민이 되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다. 아내는 검색을 마치고 어느 순간부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반면 나는 검색을 할수록 온갖 걱정이 커져만 갔다. 잔디는 내가 매주 깎아야 하는가. 낙엽도 내가 쓸어야 하나. 해충 방제 서비스도 신청해야 하는가. 외벽 청소는 고압 호스로 일 년에 한 번은 해주어야 한다던데. 문득 낡은 창문이 생각났다. 창문이 부실하면 냉난방비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언뜻 견적을 내 본 결과 낡은 창문을 전부 교체하는데 비용이 천만 원 정도 들 것 같았다. 에어컨 실외기도 무척 낡아 보였는데,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천오백만 원 정도 필요할 것 같았다. 이십오 년 된 지붕도 대략 천만 원 정도는 예산을 잡아야 할 것 같았다. 큰 집답게 유지보수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문득 두 달 전에 봤던 48평짜리 타운하우스가 떠올랐다. 48평이었는데 왜 좁다고 생각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엇에 홀려 80평짜리 집에 오퍼를 넣었는지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렉산더 포레스트 주민들은 주말 새벽마다 잔디에 물을 주고 오후에 두 시간씩 잔디를 깎는지 궁금했다. 집 청소는 언제 하는지도 궁금했다. 혹시 주말에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낮잠을 잘 시간은 있는지도 궁금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한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오퍼를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퍼를 취소한 후의 이야기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방인의 식탁: 안 사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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