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돈을 내고 사서 고생을 할까

여행

by 해뿌

추석 연휴를 맞아 태안으로 캠핑을 다녀왔다.
아내가 미리 예약을 해둔 곳이었는데
날이 다가올수록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비만 오면 다행이거늘
강한 바람까지 동행한다고 하니
마음을 굳게 먹고 목적지로 향했다.

연휴 중간에 전주 한옥마을을 들렀다가
태안으로 가는 길이라 3시간쯤 소요됐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5시간이 걸렸다.
내가 예약하지 않아 거리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지도를 보니
우리나라를 사선으로 주욱
그어 놓은 듯한 머나먼 길이 맞았다.

다행히 도착했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아
타프와 텐트를 손쉽게 쳤다.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던
아이들은 그새 해변으로 달려갔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바람이 거세졌다.
밤에 타프가 날아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폴대가 세워진 곳마다 추가로 고정을 했다.

다른 집 텐트가 흔들리는 걸 본 아내가
잘 치는지 몰랐는데 튼튼하게 잘했다며
넌지시 칭찬을 해준다.
한 마디만 했으면 더 좋았겠다.

사람이 자리 잡기 전부터 있었을 듯한
큰 나무들 사이에 보이는
넓은 서해 바다에 또 넋을 놓고 바라본다.
동해에서 볼 수 없는 붉은 일몰을
기대하고 왔지만 아쉽게도
비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아무렴 어때. 다시 오지 뭐 라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썰물시간이 왔다.
평소였으면 잠이 들어야 했지만
아이들과의 추억을 위해 랜턴을 들고
바닥을 드러낸 서해 바닷가로 향했다.
동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갯벌이
이번 여행 내내 신비로웠다.

조개채집은 많이 못해 아쉬웠지만
그 마음이 잊힐 만큼 다른 생물들이 많았다.
게를 무서워했던 첫째는
손으로 잡을 만큼
자칭 게 잡기 달인이 되었다.

그리고 빨대처럼 기다랗게 꽂혀있는
뭔지 모를 것들이 수없이 보였다.
근처에 다가가니 물을 뿜어내서
처음에 조개인 줄 알고 신나게 뽑아냈다.
나중에 찾아보니
갯지렁이의 숨구멍이라고 한다.
내가 별생각 없이 뽑아낸 것은
그들의 긴 노력이었다.
마음 깊이 사과를 하고 돌아선다.

둘째 날 저녁에는 날씨가 더 안 좋다고 했다.
오전에는 바람만 불어서 텐트가 말라갔다.
멀리까지 온 시간이 아쉬워서
한번 있어보자라고 아내와 결정을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고 우리를 덮쳐버린
비바람에게 손을 들고 철수를 결정했다.
밤이 되면 더욱 심해질 게 분명했기에.

아이들을 차에 넣어놓고
다이소의 일회용 우의를 입고
아내와 텐트 철수를 시작했다.
짜증 났을 법도 한 날씨였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짜증 내봤자 날씨도 변하지 않고
지나면 다 추억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저녁 6시경 모든 짐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날씨를 캠핑장을 떠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도로에서도 비바람에 긴장을 하며 이동했다.
그냥 캠핑장에서 버텼어야 했나 작은 후회를 했다.
7시 반쯤 캠핑장에서 안내메시지가 왔다.
강풍을 동반한 비에 대한 주의 안내였다.
우리의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게 해 주는
고마운 문자메시지였다.

밤 12시를 넘어 집에 도착했다.
거실의 불을 켜니 너무 아늑하다.
운전하는 내내 했던
긴장이 이제야 풀린다.

왜 나는 돈을 내고 사서 고생을 할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리고 그 생각 옆에
한 칸의 추억이 기록된다.
고생을 사서 한 것이 아니라
추억을 산 게 맞나 보다.
다음 캠핑장을 또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