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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쉬운 쪽이 누구지?

코로나 때문에 원룸에 공실이 생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앞에서 더 이상 자취하지 않으니 원룸을 가진 집주인들은 다들 힘들어진 상황일 겁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방 보여달라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모레 점심에 방을 좀 보여줄 수 있냐고 합니다.


제 건물은 제가 사는 집과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방 보여주러 가려면 귀찮습니다.

그런데 마침 내일 점심에 갈 일이 있습니다.


"모레 말고 내일 점심은 안될까요? 마침 들를 일이 있네요."


잠시 기다린 후 메시지가 왔는데 내일은 안 되겠답니다. 죄송하다며.


저는 짜증이 납니다.

'왜 시간을 못 맞춘다는 거야? 내일도 가고 내일모레 또 가야 해?'

'우씨, 모레는 안되니 그냥 다른 집 구해보라고 할까?'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우리 팀은 신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개발자들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내 구인 공고도 내고 열심히 개발자들을 꼬시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듭니다.

같이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은 실력이 부족해 보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우리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갑니다.

회사 내의 존경하던 선배님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 사정을 투정 부립니다.

선배님은 잠자코 듣고 있더니 한 마디를 던집니다.


"음... 지금 아쉬운 쪽이 누구지?"


헉. 저는 잠시 생각해보고는 깨달았습니다.


"... 저네요."


선배님은 싱긋 웃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아쉬운 사람인지 잘못 판단하곤 합니다.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면접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구직자가 아쉬운 순간이지만, 면접에 합격한 순간 아쉬운 쪽은 회사입니다.

사람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위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에 입사하라는 회사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제시한 연봉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입사합니다.

사실 회사도 붙었으니 맘 편하게 며칠 더 놀고 싶고, 연봉 조금만 더 올려달라고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는데 말을 못 꺼내는 거겠죠. 겨우 붙었는데 괜히 일 틀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예전에 제가 회사에 들어가려고 면접 볼 때 일입니다.

저는 1월 말에 첫 면접을 봤고 2월 초에 2차 면접을 봤습니다.

2차 면접 자리에서 인사팀 담당자분이 언제쯤 입사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5월에 가겠다고 대답합니다.


담당자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어봅니다.

"아니 왜 그렇게 늦게요?"

"그냥요, 미국이란 데 한 번 가보고 싶어서요."

인사팀 담당자는 당황했고, 옆자리 임원 분은 웃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5월에 입사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전셋집을 구할 때도 기억 납니다.

부동산에 방을 알아봐 달라고 연락해뒀는데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옵니다.

"지금 방이 하나 나왔어요. 지금 빨리 오세요. 이거 금방 나가요."

부동산 아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니 지금 저 일하고 있는데 꼭 지금 가야 하나요? 저녁에 퇴근하고 가면 안되요?"

"아유, 그 때는 이미 나가고 없어요. 이런 방은 바로 빠진다니깐?"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동산에 다녀옵니다. 사실 이때 반차를 내고 가는게 맞지 않냐, 이 정도는 괜찮다 하는 작은 팀 내 논란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별로 좋은 집도 아닙니다. 저는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 다녀온건데 허탕만 친거죠.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저는 먼저 이렇게 물어봤을 텐데.

'지금 아쉬운 쪽이 누구지? 내가 왜 일하다 말고 지금 방을 보러 뛰쳐나가야 하지?'




아, 그래서 모레 방 보여주러 가는 건 어쩌기로 했냐고요?

어쩌긴요. 아쉬운 쪽은 명확한걸요.

내일모레 원하시는 시간에 맞춰서 달려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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