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낌없이 주는 나무

건물주 생활이 힘들다고 자주 투정 부리지만 건물에게 미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옆 집 아줌마와 싸움할 때, 그리고 몇몇 귀찮고 화났던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꾸준히 안정적으로 나오던 월세는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오랜 기간 동안 건물의 월세는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수익원이었거든요.


제가 건물을 처음 샀던 달에 약 220만 원의 월세를 받았습니다. 방들을 하나씩 월세로 전환하면서 수익이 점차 올라서 500만 원 정도로 꾸준하게 수익이 나왔습니다. 최고 기록으로는 729만 원이던 달이 있었네요.


이번 달 수익을 정리해보니 182만 원입니다.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100만 원 대로 떨어진 걸 보니 충격적입니다.


코로나 이후 건물의 월세는 계속 줄고, 앱 개발 수익은 늘어나는 현상이 지속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제 관심은 앱 개발 쪽으로 쏠리고 건물에서 생기는 일들은 점점 더 귀찮은 일이 되어갔습니다.


아내는 며칠 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 건물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요. 그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월세 벌어다 줬는데 이제 몸통까지 다 내어주고 잘려버린 것 같아요. 불쌍해요."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혼자 일할 수 있냐고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앱을 만들어서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운영해서 결국에는 수익을 만들어낸 것도 궁금해합니다.

그 뒤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건물에서 꾸준히 나오는 월세가 없었다면 아마 저는 1년쯤 해보다가 포기하고 회사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고정 수익이 없어서 자산이 매 달 줄어든다는 건 저 같은 생계형 건물주뿐만 아니라 이미 충분한 자산을 쌓은 부자들에게조차 두려운 일입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귀찮아하던 제 모습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주인공 소년과 매핑이 됩니다.

너무 뽑아먹기만 하고 사랑을 주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합니다. 공실이 좀 생겨도 코로나 핑계를 대며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뭐라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장 난 곳들도 따뜻한 손길로 돌봐주고.




회사원이 아닌 삶은 이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외부 변수 하나에 의해서도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공실도 계속 늘어나고 정부의 부동산과 세금 정책은 점점 날카로워집니다.


그동안 앱 개발을 꾸준히 해서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만약 월세 받는 것에 만족해서 띵가 띵가 살고 있었다면 저는 큰 코 다쳐서 지금쯤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우리 가족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겠죠. 아찔 합니다.

돈 나오는 구멍은 여러 군데 만들어두면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하나 정도는 더 만들어두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이전 09화 지금 아쉬운 쪽이 누구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