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철없는 소리를 신조라고 우기며 살았던 적이 있다. 물론 결혼하기 전 한창 놀러 다니던 때이다. 직장 생활을 갓 시작한, 돈과 시간의 여유로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에 놓친 인연이 좀 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사람도 그 인연 중 한 명이다. 그 시절 그 인연을 좀 더 소중히 여겼으면 지금의 내 삶은 더 다채로워졌을까? 가끔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은 어쩌면 붙잡았어야 하는 인연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직장 생활 한 지 1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몸에서 신호가 왔다. 그동안 불규칙하고 맘대로 살았던 몸이 스트레스에 못 견딘 건지 아니면 원래 약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왼쪽 다리부터 팔까지 저린 일이 발생했다. 겁이 덜컥 났다. 부랴부랴 한방병원을 다니며 침을 맞고 일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건강을 위한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을 권하셨다. 바로 “운동”이다.
그리하여 퇴근 후 운동할 수 있는 곳을 기웃거리게 되었는데 헬스, 수영, 요가 등을 하며 정착한 것이 에어로빅이었다. 에어로빅이라 하면 흔히 아줌마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격렬하게 흔드는 몸짓을 상상하는데 내가 간 곳은 그런 식의 운동은 아니고 최신 유행 댄스가요나 팝송에 안무를 세련되게 짠.. 방송댄스류의 운동을 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신촌 기차역 앞 7층 건물에서 울려 퍼지던 신나는 노래들.. 그곳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바짝 마른 몸에 체구가 작고 커트머리였던 그녀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맨 앞줄에서 댄스를 잘 추는 것 같기도 한데 뭔가 뻣뻣하게 추는 것 같은 애매한 느낌이 들지만 또 자신감이 충만해서 대단해 보이던 사람.. 처음에는 내가 그녀와 친해지리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에어로빅이나 방송댄스 같은 운동의 세계에서 앞 줄은 대단한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다. 강사도 무시하지 못하는 파워를 지닌 분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 그녀는 그 앞줄 가운데에 있었다.
갓 온 신참은 앞 줄은커녕 중간에 서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뒤에서 안 보이는데도 열심히 배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했던지라 신나게 배우면서 한 줄씩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만 뛰어도 힘들어 헉헉 댔는데 어느새 한 타임을 제법 무리 없이 할 때 즈음, 운동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소통을 했다. 여성전용이어서 편하고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많아서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 그녀와도 말을 섞게 되었고 그녀의 친화력으로 뭉친 사람들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 그녀의 나이가 서른 하나 정도였던 것 같은데 20년이 지난 지금 떠올려보니 가물가물하다. 게다가 그녀에 대해 자세히 떠오르는 정보가 많지 않은데 사실 그때도 많이 캐묻지는 않아서 몰랐던 것 같다. 나이, 직업, 결혼 유무 이 정도만 알고 오로지 운동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운동하는 곳에서만 만나지는 않았다. 그녀의 추진으로 찜질방, 술 집, 나이트클럽 등 많은 곳에서 5-6명의 사람들이 만남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가 아닌 사람들이랑 놀러 다닌 경험이 그때가 유일한 듯 싶다.
당시는 싸이월드가 핫한 시절이었다. 그녀는 늘 내 싸이월드 방명록에 매일 첫 번째로 글을 남겼고 전화나 문자도 늘 먼저 해줬다. 당시 나랑 썸을 타던 사람이 있었는데 싸이월드를 통해 둘이 서로 아는 사람이 될 정도였다. 누가 누가 먼저 방문하나 이런 놀이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감사한 사랑을 받았다.
그에 비해 나는 주로 받는 입장이었다. 그때 나는 직장 동료들과도 신나게 놀던 시절이라 좀 소홀하게 그녀와 무리들을 대했다. 주로 약속이 잡히면 따라가거나 일이 있다고 못 간다고 뺀 적이 많았다. 그런 나의 행동에 그녀가 살짝 서운함을 비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 사인을 그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운동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은 한참 오래갔지만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랑 함께 했던 강사가 센터장이랑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몇 년을 함께 운동한 사이인지라 우리는 회의 끝에 다 같이 센터를 옮기기로 했고 강사가 옮긴 센터에서 다시 둥지를 틀며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어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일이 좀 더 꼬이기 시작했다. 새로 옮긴 곳이 적자로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다 같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 강사가 다시 그전 센터 원장과 화해를 하며 우리는 처음 운동했던 곳으로 다시 이동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사와 우리와 문제가 생겼다. 운동 말고 사적인 만남이 좀 잦아지니 잡음이 생긴 것이다.
그 잡음의 시작은 강사와 그녀와의 관계의 틀어짐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결국 우리 무리는 다시 다 같이 나와 새로 생긴 센터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여름부터 시작해서 겨울까지 이어진 운동 유목 생활은 나를 지치게 했다. 즐거워야 할 운동이 사람들 비위 맞추는 곳처럼 느껴져 버거웠다. 게다가 새로 옮긴 곳은 댄스가 아니라 요가나 스텝 운동을 주로 하는 곳이어서 재미가 점점 없어졌다. 고민 끝에 나는 집 앞에 있는 에어로빅센터로 옮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모임 사람들에게 사전에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거의 5년의 시간을 저녁에 같이 보낸 사람들인데 몇 달 동안 지쳐 그만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통보만 하고 나와 버린 것이다. 게다가 새로 옮긴 에어로빅 센터도 재미있었고 거기에서도 적응을 잘하면서 신촌에서의 생활을 점점 잊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혼집을 이대-신촌과 아주 먼 곳에 얻게 되면서 아예 그곳을 다닐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싸이월드도 추억 속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녀는 더더욱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언젠가 이대 역 앞을 갈 일이 생겨 일을 보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놀라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라보니 그녀였다. 변하지 않는 헤어스타일에 웃음.. 몇 년 만에 만난 것치곤 너무 익숙한 모습.. 반가워 인사하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그 사이 멀어진 간극만큼 어색함도 있었다. 결국 그녀 옆에 일행이 있어 긴 이야기를 못 나누고 금방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연락 자주 하자는 말도 못 하고 왜 바뀐 연락처 하나 교환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신촌 기차역 그곳에서 운동한 게 25살이었고 떠난 지가 서른 즈음이었다. 참 오랜 시간 동안 우리들은 운동을 같이 했고 운동 끝난 후 놀러 다니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때 함께 한 사람들 중에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가장 나이가 많은 언니였기도 했지만 늘 먼저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만남을 만들어 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좀 더 특별하게 대해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나는 자매가 없다. 그래서 남자보다는 늘 여자들과의 관계에 목이 마른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땐 그 소중한 인연들을 쉽게 보내고 말았다. 특히 그녀가 보낸 나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쉽게 차단한 것만 같아 문득문득 속상할 때가 있다.
마흔 중반이 넘는 지금, 나는 인연이라는 것, 관계라는 것의 소중함을 많이 배우고 깨닫는 중이다. 쉽게 관계를 맺기는 힘들지만 한번 인연을 맺으면 정성을 다해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녀와의 헤어짐이 나의 이런 가치관을 생기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준 것은 아닌지, 인연을 소중히 하라는 그녀의 마지막 선물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큰 아이 병원 때문에 가끔 신촌 세브란스를 갈 때면 그녀와 인연의 끈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내 딸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소중한 인연을 꼭 붙잡고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