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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주일의 순이 Jan 09. 2024

화순이 : 도슨트를 합니다 (2)

2부. 도슨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ㅇㅈ만 있으시다면 

2부. 도슨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ㅇㅈ만 있으시다면




배워서 남 주자.


라는 말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급훈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나는 내내 그 급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못했다. 

 '아니 왜 애써서 공부해서 아깝게 남에게 주지?' 나만 잘해서 백점맞고 다른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싶었다. 급훈과 정 반대인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어디에 드러내놓지는 못했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잘 듣고자 노력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계속 의문이었다. 왜 배워서 남을 줘야 하는지.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때 만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 후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며 차차 이해하게 되었다. 선생님이야말로 배워서 타인, 그러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가 공부한 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학창 시절에 경험하고 나서야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학교 때 역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역사과목을 좋아하게 되었고 흔한 레퍼토리로 나는 역사와 사랑에 빠져 중학교 내내 사회, 국사 과목만 모두 100점을 맞았다. 내 단짝 친구는 암기과목을 싫어하고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국사시험을 55점 맞았다. 나는 그게 안타까워 매일 등하굣길에 설명하고 문제내고 쉬는 시간에도 내내 퀴즈를 보면서 베프를 들볶았다. 친구는 기말고사 국사 시험에서 90점을 맞아 나에게 떡볶이를 일주일 동안 쐈다. 


나는 내가 공부한 것을 정리해서 선생님처럼 말하고 설명하는 게 재밌었다. 역사 자체도 재밌는데 역사를 설명하는 행위는 내게 더 큰 즐거움과 재미였다. 게다가 친구의 성적 향상에 일조하는 기쁨도 맛봤다.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국사 선생님의 모든 말을, 심지어 농담까지 모조리 적어 다 외웠다. 친구들은 나를 국사선생님의 성을 따서 "표ㅇㅇ"이라고 불렀다. 

 학창 시절 내내 역사를 좋아했고, 미술사에 빠졌던 나는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진학했지만 초등교육을 복수 전공하면서 결국은 초등교사가 되었다. 나는 소망하던 대로 교사가 되었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초등의 전 과목은 내가 좋아하는 내용만은 아니었다. 


5학년 사회과목을 가르칠 땐 역사를 가르치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내 5학년만 가르칠 수는 없었다. 직업을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교사를 하면서도 미술관과 연결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미술사교육이 교집합을 이루는 곳을 찾았다. 박물관미술관 교육 전공으로 대학원에 파견으로 가게 되었다. 방향을 잡고 물꼬를 텄으니 더 큰 구멍을 내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오랜만의 공부는 재미있었다. 게다가 학부 모교에서 다양한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역사와 미술사 공부를 마음껏 했다. 그다음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위인 말하기로 표출할 것을 찾았다. 

그게 나에겐 도슨트였다. 대학원을 다니며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도슨트 모집 공고가 떴을 때 지원했고, 서류를 통과했고, 면접을 봤다. 잘 모르는 그림이 나왔지만 관객과 함께 그림을 읽는 것처럼 질문도 하면서 안 떨리는 척 해설했다. 나름 경쟁률이 치열했는데 결국 뽑혔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도슨트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범한 나도 미술관과 미술에 대한 열정만으로 도슨트를 지원했고 도슨트 활동을 하고 있다. 


꼭 직업인으로서 미술관에서 일하지 않아도, 혹은 못해도 미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 있다면 미술관 전시와 작품을 즐기며 미술관 가까이에서 충분히 자기 계발 및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때로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책임과 의무 때문에 그 일의 즐거움을 잊을 때가 있지 않은가. 취미로도 충분히 덕후가 될 수 있고 제2의 길을 열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미술관 큐레이터도 아니고, 역사교사 대신 초등교사로 방향을 틀어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나 변명 따위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떠한가. 나는 이 애정과 열정을 직업 외적으로 마음에 계속 품고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직장을 포함한 나의 현실 의무들로 지쳤을 때 도슨트 활동은 강력한 활력소가 되었다. 오히려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의무에서 벗어나 지극히 순수한 열정만으로 도슨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도슨트 활동은 생각보다 시간을 꽤나 투자해야 한다. 미술관에서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부터 실제 도슨트 활동을 하기까지 교육받는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이 많다. 수동적으로 이론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에서 전시해설을 하기 위해 스피치, 스크립트 작성, 시연 등 실제 도슨트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직장과 가정생활과 병행하는 것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하려는 ㅇㅈ, "애정"과 "열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도슨트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배우고 익혀서 

관람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도슨트 활동 본연의 목적과 순수한 열정이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배워서 남 주자.’의 발로가 아닐까. 









그렇다면 도슨트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는 무엇인가.


그건 다음 편에 써야겠다. 원래는 ㅇㅈ. 열정만 있다면, 기꺼이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겠다는 애정만 있다면 누구나 도슨트가 될 수 있고,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쓰려고 했는데 1부에서 너무나 정보만 전달하는 글을 쓰려고 애써보니 내가 재미가 없어서 쓰고 싶지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1부를 시작했으니 화순이로 도슨트에 대한 이야기를 5부까지 기꺼이 마칠 것이다. 그래서 2부에 개인적인 나의 불씨의 시작에 대해 내보인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도슨트 활동을 의미 있게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도슨트





1부. 도슨트는 큐레이터가 아닙니다만, 

2부. 도슨트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ㅇㅈ만 있으시다면

3부. 전시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4부. 돈도 안되는데 도슨트를 왜 해?라고 물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5부. 나의 도슨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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