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는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딸과 남편이 잠자러 들어가면 거실 쿠션에 등을 기대어 유튜브가 추천한 동영상이나 구독 중인 채널의 최신 영상을 본다. 요즘 내가 자주 보는 영상은 오느른(오늘을 사는 어른들)이라는 mbc 피디의 귀촌 이야기이다. 32살이 된 피디는 전북 김제에 4500만 원짜리 폐가를 샀다. 115년이 넘은 집은 옛스럽지만 쓰레기가 가득한 집이었다.
'젊은 아가씨가 무모한 일을 벌였네'라는 생각으로 보다가 어느새 빠져들었다. 구독자 1000명일 때부터 봤는데 지금은 삼십만 명이 넘었다. 구독자가 늘수록 피디가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귀엽다.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고치는 비용이 집 산 비용보다 많아지면서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이겨 나갔다. 전세금까지 빼서 이사하는 결단력이 멋졌다.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삽십대의 욕망과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래도 시골집 살래요? 라며 심란해하는 그녀의 푸념에 집수리를 멈출까 봐 구독자들은 댓글창으로 우르르 몰려가 우쭈쭈 해주었다. 드디어 집이 완성되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벼가 익어가는 평야를 볼 수 있는 큰 창. 그림 감상하듯 가만히 앉아 있는 그녀. 화면 속 김제의 살랑이는 바람이 내 뺨을 스쳐갔다.
출처: mbc 오느른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시작하는 이를 보며 구독, 좋아요로 힘을 보태는 것이 유튜브가 가진 힘이다. 어릴 때 유행한 다마고치 게임처럼 작은 존재를 키우는 것이다. 구독자 삼십만이 넘으니 다른 이에게 빼앗긴 기분이라는 댓글에 초창기 구독자들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녀가 더 잘 되길 바라지만 혼자 숨겨두고 나만 알고 싶은 마음. 덕질하던 무명의 아이돌이 어느 날 만인의 연인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2년 전 관악구 책방 여행마을에서 독립출판을 한 신인작가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서점지기는 신청자가 적다고 다른 독서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던 나에게 시간이 되냐고 물어왔다. 20대 청년의 여행기라 잠시 고민하다 참가하겠다고 했다. 작가를 전혀 모르고 참석한 북토크는 처음이었다. 참석인원은 다섯 명 정도 단출한 북토크였다. 그는 자신이 책을 낸 과정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독립출판물을 출판하는 것에 대한 콘텐츠라고 했다. 검색해서 눌러보니 회원수가 6명이었다. 알에서 갓 나온 병아리를 보는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지며 구독을 눌렀다.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들은 결이 비슷하다.
육아 브이로그 식충이는 요리, 살림의 달인이 아니다.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 육아의 리얼함을 보여줘서 구독자들이 위안을 받는다. 이지혜의 밉지 않은 관종 언니는 떡상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의도와 다른 내용이 되어 자책하는 유튜버라 응원하게 된다. 비주류는 언제나 새롭다. 작고 여리거나 실수투성이지만 그들이 끝까지 버텄으면 좋겠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 '맛나당'이 나온다. 맛나당은 작가 어머님이 하던 칼국수집이다. 어머니는 가게를 하면서 삶에 당당해졌고 자신의 이름을 가졌다.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작가는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작가에게 영향을 준 맛나당처럼 나를 키운 것은 서점이다. 지인들이 부동산, 주식, 재테크에 열을 올릴 때 서점을 찾아다녔다. 서점에서 좋아하는 것을 만났고 어설프고 서툰 나를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점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세상이 말하는 방향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좋다. 바보 같지만 당당하고 씩씩한 바보 말이다. 언젠가 서점을 여는 브이로그를 찍는다면 누군가의 응원을 받을 수 있을까? 유튜브는 여러 이름의 꿈을 보는 곳이다. 치기 어린 꿈이라 해도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가 있다. 언젠가 나의 비어있는 서점 계정에 좋아요♡가 차곡차곡 쌓이길 바래본다.
출처: mbc 오느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