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순이 : 취미는 사랑(7)

너의 작은 심장이 내 품에서 뛰고 있어.

by 일주일의 순이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도 강아지가 있었다. 뒤집혀지는 큰 귀가 매력적인 치와와였다. 어디서 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 갔다 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가 참 좋았다. 언니와 내가 이불을 덮고 누우면 아지는 (이름이 '강아지'였다.) 그 사이로 와서 같이 이불을 쓰고 얼굴만 쏙 내밀고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지가 사라졌다. 엄마는 문을 열어놓은 틈에 도망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울면서 골목 골목을 뒤지며 밤 늦도록 아지를 찾아 다녔다. 그것이 아지와의 마지막이었다. 훗날 엄마는 사실 강아지가 너무 귀찮아 남 줘버렸노라고 고백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은 어른이 지는 것이기에 부모님을 이해했다.
다시 동물을 키워볼까 생각한 것은 결혼으로 인한 독립 후였다. 대학원 친구가 탁묘할 사람을 찾아서 냉큼 손을 들었다. 하얀 털이 매력적인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를 2주간 맡아 기르게 되었다. 두부는 (이름이 '순두부'였다.) 장농 위에 올라가면 보이지 않아 잃어버린 줄 알고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지만, 컴퓨터를 할 때면 무릎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골골송을 들려주어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무척 바빴기에 동물이 주는 위안 같은 걸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고작 2주 맡았을 뿐인데 이후 그 집에서 나오기까지 2년간 고양이 털은 끊임없이 발견되었다.
반려동물이 다시 내 삶에 들어온 것은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으로 아이들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재작년부터이다. 뭐 하나 갖고 싶다고 졸라본 적 없는 딸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섣불리 선택할 수 없었다. 반려동물 입양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만큼의 책임감과 희생을 요구한다. 자주 가는 카페에 강아지 입양에 관한 고민 글을 올렸는데 몇 십명의 댓글 중 단 한명도 찬성하지 않았다. '여행 한 번, 외식 한 번 하기 힘들다, 돈이 많이 든다, 늙으면 병수발 해야 한다' 등 반대의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온 가족은 내 선택만을 기다렸다. 내가 아무리 반대의 의견을 들려줘도 남편과 딸은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2년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유기견 카페나 반려동물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며 고민했다. 마지막으로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이웃에게 전화해 의견을 묻고,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우리 집에 들어 올 강아지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조건 유기견을 들일 거라 생각하고 유기견을 소개하는 앱에서 내가 생각한 조건에 맞는 강아지를 열심히 신청했는데, 우리 같은 초보 가족에게는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아이나 들일 수는 없었다. 평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태어난 지 1년 미만의, 털이 잘 안빠지는 소형견과 믹스인 강아지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강아지는 경쟁률이 치열했고 우리는 늘 밀렸다. 임보에서조차 선택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 같다. 유기견을 키우겠다고 결심했다면, 조건을 따지지 말았어야 한다. 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이후 가정분양을 알아보았다. 펫샵처럼 공장형 번식을 하지 않고 9마리 미만의 소규모 동물 생산업 허가를 받은 곳이다. 위치는 멀고 고가의 비용이 들었지만 거진 세 시간을 달려가서 우리 가족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집에 온 첫 날, 벼리
첫 미용
낮잠

강아지가 새 식구가 된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누군가 "어때?" 라고 물어보면 나는 "단 하루도 후회한 날이 없어."라고 대답할 만큼 만족한다. 오히려 고민한 시간들이 아까울 뿐이다. 물론 여행도, 외식도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돈도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더이상 '기회비용'이 아니다. 강아지는 이제 우리 '가족'이기 때문이다.

벼리의 첫바다
벼리의 첫 눈
벼리의 첫캠핑

남편과 딸은 벼리(강아지 이름)가 자신을 가장 좋아하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벼리의 원픽은 내가 되었다. 엄마이기 때문에 돌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서일까? 돌봄은 확실히 그림자 노동이지만 어떤 돌봄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처하여 '집사'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벼리는 나와 함께 잠이 들고 (내가 자지 않으면 옆에서 기다리고) 나와 함께 일어난다. 침대에 누우면 내 팔에 자기 턱을 괴고 눕고, 아침에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얼굴을 핥아준다. 그 기분좋은 촉감에 눈을 뜨면, 나는 벼리를 꼭 안고 그 작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내가 외출 준비를 하면 자기도 데려 가라고 펄쩍 펄쩍 뛰고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나를 반긴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그 중 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작가는 <스노우캣>이다. 초반에 그녀는 '혼자놀기'와 '귀차니즘'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은둔형외톨이와 같은 면모를 보였다. 다소 시니컬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작품에서는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을 서슴없이 표현한다. 나는 그 사랑이 궁금했다. 어떻게 누군가를(무언가를) 댓가없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반려동물을 보고, 만지고,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는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HAVE TO), 주지 않아도 (GIVE), 존재 그 자체로 (BE) 사랑한다.
다시 생각하니, 존재 그 자체로 나를 사랑해주는 것은 반려동물이다. 나는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뿐이다. 인간관계에 서툰 사람도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과는 교감할 수 있다.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인간보다 재지 않고, 인간보다 너그럽다.
오늘도 벼리의 눈은 엄마에게 고정되어 있다. 엄마를 졸졸 쫓아 다닌다. 강아지에게 받은 사랑으로 나의 사랑의 샘은 마르지 않고 점점 깊어진다.

- 이하 사진은 고슴도치 엄마의 자식자랑입니다 :) -

언제 어디서나 눈은 엄마에게
건조기에서 막 나온 뽀송뽀송한 빨래 위를 좋아하는 벼리
언니 품에 안겨서도 엄마만-
언제나 나를 보는 눈빛은 아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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