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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댕 Apr 17. 2020

카스테라 사랑

그때와 같은 음식을 만드는데 조리기구도, 옆에 있는 사람도 바뀌었다.

※ "카스텔라"(castela)가 정식 표기법이나, 본격 추억팔이 글이라 입에 붙는 "카스테라"로 표기하였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아내가 문득 질문을 던진다. “카스테라 만들래?” 결혼 전 일 년 남짓 카페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아내는 손재주도 좋아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생전 해본 적이 없는 요리도 레시피만 있으면 뚝딱 만들어내곤 한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하고 놀라면 "처음 해봤어"라며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나의 반응을 기다리곤 한다. 더군다나 요즘엔 유튜브에만 가도 전 세계 일류 요리사들이 너도나도 솜씨를 뽐내며 본인이 가진 비결을 내어놓는 시대가 되었으니,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요리를 해 식탁에 올리기까지 그다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에는 친정에 가서 어머니께 카스테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며 함께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카스테라라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라고 한다면, 어릴 적 어머니께서 낡은 전기밥솥에 반죽을 부어 만들어 주셨던 못생긴 카스테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빵집에 가면 볼 수 있었던, 유산지가 겉에 붙어 떼어내고 먹어야 했던 네모 반듯한 그런 카스테라와는 맛도 모양도 달랐다. 밥솥 모양을 따라 둥그런 모양에, 윗부분이 갈색빛으로 익어있는 빵집 카스테라와는 달리 바닥이 짙게 익어있다. 더러 까맣게 타는 일도 있었는데 쓴맛이 나도록 타버린 일부분을 잘라내고 먹기도 했다.

 

  워낙에 허투루 돈을 쓰시는 일이 없던 부모님이었기에 동네 가게에서 간식을 사서 먹이기보다는 종종 특식으로 직접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명절에 전 부치는 전기프라이팬에 피자를 만들어주시기도 하셨고, 돼지고기를 사오셔 직접 탕수육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탕수육 소스까지도 만드셨다(부먹이었다). 그런 특식 중 하나가 바로 카스테라였었다.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는 것은 곧,
그 음식을 먹게 될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하는 마음이야.


  지금 나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니 내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라, 너무 늙은이가 옛날이야기 풀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유난스럽게도 느껴진다. 어머니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동네 소일거리를 찾아 오후에는 집을 비우기 시작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보다는 이전에, 자식을 돌보기 위해 주로 집에 계시던 시절이었으니 어림잡아 내가 초중등학생이던 20-25년 전, 그러니까 1990년 중후반의 기억일 것이다. 어머니의 팔이 저릿할 때까지 손으로 거품기를 휘저어 계란 거품을 내었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한번 해보겠다고 거품기와 계란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는 스테인리스(스댕) 양푼을 차지하고서는 요령도 모르면서 어머니 흉내를 내었다. "어이쿠 그렇게 하면 안 돼." 한 방향으로만 젓지 않으면 거품이 망가진다며, 팔이 아프다고 이리저리 막무가내로 거품기를 돌리던 내게서 기구를 빼앗기도 하셨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던 카스테라에 우유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그간 고생은 생각도 나지 않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내는 말한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준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고. 음식을 해준다는 것은 단순히 식재료를 구입하고 요리하는 수고가 동반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게 되고 행여나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 신경 써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덧붙여 음식을 만들어 먹인다는 것은 곧, 그 음식을 먹게 될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나도 평소에 요리하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아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매일 끼니를 준비했다고 생각하니 참 좋은 사람과 부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그 시절 어린 아들을 위해 정성껏 간식을 준비하셨을 거라는 생각에 머릿속 행복했던 기억이 갓 구운 카스테라처럼 말랑말랑하고 따끈하게 떠올랐다.


  같은 이름의 빵을 그때와 지금 가족과 함께 집에서 만들지만, 오늘 어머니가 아닌 아내 옆에서 만드는 카스테라는 나 어릴 적의 전기밥솥이 아닌 에어프라이어로 굽는다. 오래전 그 날처럼 팔이 빠져라 거품기를 저을 필요도 없이 핸드블랜더에 거품기를 달아 얼마간 거품을 내니 아내는 내가 만들어낸 계란 거품에 "머랭 예술이다!"라며 감탄한다. 새삼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가족이 내 옆에 생겼지만 카스테라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내는 친정에서 만들었을 때 거품이 깨져서 원하는 만큼 거품이 올라오지 않았었다며 투덜거렸다. 그 말에 나는 으스대며 한 마디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돼. 한 방향으로 젓지 않으면 거품이 망가지거든."


생긴 건 이래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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