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행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집에 오자마자, 안 방으로 들어가 체중계에 조심스레 발을 올렸다. 헉? 진짜? 3킬로가 쪘다. 아니야. 이럴 리 없어. 살펴보니 체중계가 바닥 러그에 반쯤 걸쳐져 비스듬하게 놓였다. 그럼 그렇지. 한쪽으로 러그를 치우고, 편평한 바닥에 다시 체중계를 반듯하게 두었다. 손목에 있던 시계도 풀러 화장대에 뒀다. 조심스레 다시 한 발, 또 한 발.... 어... 진짜네? 2주 사이 3kg이 쪘다.
코로나로 인해 모스크바를 극적으로 탈출해 한국에 온 게 2주 전이다. 자가격리를 위해 비워진 동생 부부 집에 도착하니,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에 이런 말도 쓰여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건 무엇이든 먹어도 됨.” (흑흑 고마워, 내 동생)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렸다. 이 풍성한 거품 진짜 그렇구나. 우리 집에 있는 구모델과는 확실히 다르네, 향도 맛도 너무 좋다. 일단 라면을 하나 끓인다. 대파를 송송송 썰어 넣고, 계란도 하나 탁! 대파라니, 모스크바 슈퍼에서는 볼 수 없던 대파다. 원래 파는 이렇게 크고 굵고 길었어. 쪽파로 파 흉내만 내던 그곳의 라면과는 맛이 다르다. 한국 물이 좋아서 그런가, 아리수로 끓인 라면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그게 ‘살찌는 길’의 시작이었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1년에 한 번씩 귀국 일정을 잡으면, 그때부터 나와 남편의 대화는 가서 무엇을 먹을까? 가 주를 이룬다. 대부분 내가 이 주제의 주도권을 잡는데, 1주일의 귀국 기간 동안 먹을 수 있는 끼니의 수는 정해져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 밖을 보며 아쉬워하지 않도록, 친구들에게 귀국 날짜를 알리고 약속을 잡으면, 대부분 친구들은 먼저 나에게 묻는다.
“뭐가 제일 먹고 싶어?”
“다 먹고 싶어. 일단 즉석 떡볶이부터 가자.”
대도시인 모스크바의 슈퍼에서도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모스크바로 가기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던 형님(남편의 형의 아내)은 내게 “겨울이면 애호박이 없을지도 몰라. 미리 사서 냉동해서 된장국에 넣었다니까. 된장국에 애호박이 들어가야 맛있잖아.”라고 했지만, 모스크바에서 매일은 아니어도 애호박과 쥬키니는 쉽게 슈퍼에서 구할 수 있었다.
현지의 한식당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또 그만큼 만족스럽지 않아 대부분의 끼니는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다. 고기, 채소, 과일 등 장바구니 물가도 서울보다 저렴한 편이라 푸짐하게 살 수 있다. 특히 감자는 1킬로에 1000원 정도로 저렴하고, 종류도 구이용, 찜용 등으로 나눠져 있어서 (사실 그 맛의 차이는 모르겠지만) 너무 맛있다. 하지만 그뿐. 이상하게 같은 음식을 해도 서울의 맛이 생각났다.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큰 냄비의 부대찌개가 아니면,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져 나오는 삼계탕이 아니면, 같은 음식을 재현해도 2%씩 부족했다. 김밥을 말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면서도, 포장마차의 ‘김떡순’ 이 그리웠다. 그 맛을 재현하고 싶어,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 접시도 한 개 사 왔는데 소용이 없었다.
하늘길이 쉽게 열리지 않고,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이 곳에서 살림을 꾸리게 됐다. 결혼을 하고 바로 모스크바로 갔기에, 주부가 되어 만나는 한국의 삶에서는 또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슈퍼에 가면 한번 데친 후 냉동하여 파는 초록색 곤드레를 씻어 밥을 짓고 비빔장에 비며 먹으면 얼마나 향긋한지, 취나물, 시래기도 바싹 말려서 물에 불려야 하는 것 말고도 싱싱한 것을 구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깍두기를 담그려면, 슈퍼에서 파는 주먹만 한 무를 여러 개 사서 몇 번을 방망이 노인이 된 것처럼 깎고, 또 썰어야 하는데, 한국의 무는 조카 허벅지(?) 만큼 굵어서 한 덩이만 사도 다양한 요리에 충분히 쓸 수 있었다. 나는 매 끼니마다 깻잎을 더했다. 만약 1년간 사람이 먹어야 할 깻잎의 필요량이 있다면, 이 기간 동안 모두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깻잎 페스토, 파스타 토핑, 깻잎 조림, 떡볶이, 샐러드, 고기를 구울 때도 깻잎을 두 세장씩 아낌없이, 깻잎에 대해 마음껏 사치를 부렸다.
“한국은 어디든 맛있어.”
“커피도 맛있어. 빵은 또 왜 이리 잘 만들어?”
“어디를 가든 실패가 없다. 진짜.”
“너무 맛있어. 진짜. 또 생각날 거 같아.”
“가기 전에 한번 더 먹고 갈까?”
한국에 머문 반 년동안, 남편과 나는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눴다. 누군가는 ‘입으로 들어가면 어차피 다 아는 맛’이라고 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맛보고 또 이야기 나누고, 나중에 돌아가서 추억(아, 벌써 슬퍼) 하는 것만큼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한국을 떠나면 또 한동안 그리워지고, 손꼽아 기다리게 될 이 확실한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 끼니마다 꼭 잡다 보니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었다. 이는 남편도 마찬가지. 6킬로가 찐 그는 예전의 스트레이트 청바지가 스키니진이 되어버렸다. ‘여보, 우리 옷 다시 사야 할까? 괜찮겠지? 그래도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돌아가서 다행이야. 모스크바에 가면 다시 또 빠질 거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