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외화는 러시아어 더빙으로
오랫동안 러시아어 문화권에 살았던 남편은 한국어보다 러시아어가 더 편한 듯했다. 러시아의 사이트에서 한국 드라마를 러시아어 더빙으로 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한국 드라마를 러시아어 더빙으로 보면, 느낌이 안 오지 않아?”
“더빙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가, 난 이게 편하고 좋아”
“아쉽다. 그 배우의 독특한 음색이 매력적인 건데...”
러시아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외화들은 모두 러시아어 더빙이 되어 있다. 성우의 목소리로 더빙된 영화라니,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옆에서 즐겨보던 ‘주말의 명화’ 또는 텔레비전의 추석 특선 외화 물 외엔 접한 적이 없다. 영화를 보며 ‘스토리의 이해’ 도 중요하지만, 그 배역을 누가 했는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영화 <HER>의 목소리가 ‘스칼렛 요한슨’ 이 아닌 다른 이가 대신한다면, 그 영화의 맛이 제대로 살 수 있었을까.
모스크바의 생활이 1년쯤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 마침 <알라딘 2019> 실사판이 개봉되었다. 한국의 친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4번이나 봤다는 영화. 특히 램프의 요정 지니 역을 맡은 윌 스미스의 매력이 돋보인다는 후기가 가득했다.
“러시아어를 좀 배웠으니까, 처음보다 더 많이 들리겠지?”
“그럼 그럼,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니까 이해하기 쉬울 거야.”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앉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 알라딘, 카세트테이프가 다 늘어지도록 대표 OST <A Whole New World >를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드디어 극장에서 이 음악을 다시 듣는 날이 오다니... 아뿔싸. 잊고 있었다. 더빙이 된 영화에서는 음악 또한 더빙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지니의 목소리는 윌 스미스가 아닌 러시아어로- (러시아어를 너무 잘하는 램프의 요정 지니!) 양탄자를 탄 재스민 공주와 알라딘의 노래는 러시아어로 극장을 가득 채웠다.
“아, 그래도 음악은 원곡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볼쉐브니 미르- 뭐야. 느낌 안 살아.”
“러시아는 다 더빙이지, 다음엔 시내에 러시아어 자막으로 하는 영화관 가보자”
그 후 <토이스토리 4>도 러시아어 더빙으로 봤다. 한국의 개봉 시기와 비슷하게 봤지만, 친구들의 단톡방에서 대화가 어려웠다. 보아도 봤다고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이름들이 모두 러시아어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뒤늦게 주인공들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됐다.
이후 한국행 비행기에서 <알라딘>을 다시 봤다. 지니가 나올 때마다 윌 스미스 특유의 표정이 생각나 웃음이 났고, 배우들이 직접 부른 <A Whole New World>를 듣는다. 극장보다 작은 화면, 조금 불편한 좌석이지만, 창 밖의 구름을 보며 알라딘, 재스민 공주와 함께 하늘을 나는 기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