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갇힌 자가 되었을 지라도.
숙제를 끝내고 나니 밤 10시 반, 핸드폰이 울렸다. +7로 시작되는 러시아의 국가번호다. “이 시간에 누구지? “ “스팸일 거야. “ 남편이 말했다. 지금 한국은 친구, 가족들도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의 시간. 만약 그들이라면 보이스톡을 했을터, 전화번호로 착신된 벨소리는 생경했다. 나의 휴대폰이지만 벨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이 곳에서 새로 산 전화기에는 남편 외의 음성통화 내역이 거의 없다.
잊고 있었다. 해가 잠시 사라지고, 어둠이 짙어가는 이때의 통화를 참 좋아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밤새 오래 대화를 나눈다. 동이 틀 때까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는 ‘나 이제 곧 내리니까 전화할게’라고 끝났고, 개찰구를 통과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주고받는 대화를 그 누가 먼저 멈추기가 아쉬워, 환승 버스를 포기하고 집까지 걸어가며 나누던 밤의 대화들. 같은 학교, 같은 회사, 종일 가까이 붙어있었어도, 우리에겐 그리도 할 말이 많았던 건지, 집 앞에 다다른 후에야 아쉬운 듯 전화를 끊었다. “나 이제 엘리베이터 나니까, 잘 자고~ 내일 만나” 나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때문에 통화를 잠시 멈춤 하는 것처럼.
밤의 통화는 은은했다. 밝은 빛 가운데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는 것과 달리, 많은 것들이 어둠 속에 숨겨진 때에는 나와 상대만 보이는 듯했다. 함께 블록을 쌓듯, 한 조각 한 조각 이야기들을 맞춰가며 우리의 무대를 완성한다. 남편과 원거리 연애를 하던 때도, 6시간의 시차 속에 한국의 밤은 모스크바의 새벽이었다. 그 당시 그의 극심한 야근이 우리를 부부의 인연으로 까지 이어줬을지도 모른다.
오늘 오랜만에 밤의 통화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유학 중인 예전 회사의 동료, 후배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마비가 되어버린 세상,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의 울적한 기운을 감지했고 영상통화를 했다. “이제 곧 모두 박수를 칠 거예요. 잠시만요, 제가 보여줄게요.” 그녀가 보여준 것은 발코니로 나와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격리의 기간, 저녁 8시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10분간 박수를 친다. 코로나로 인하여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시라도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고국을 떠난 우리, 집에 갇힌 자가 된 우리의 밤의 대화는 펜스 없는 공처럼 여기저기 튀었다.
밤에 주고받는 목소리로 채워지는 그리움의 양이 있다. 낮보다는 밤의 대화로 채워지는 마음들, 어쩌면 나는 밤에 듣는 정다운 목소리를 꿈까지 데려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꿈에서도 계속 행복할 수 있게...
2020. 03. 20
바르셀로나 지은 & 모스크바 불가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