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통화

코로나로 갇힌 자가 되었을 지라도.

by 불가사리


숙제를 끝내고 나니 밤 10시 반, 핸드폰이 울렸다. +7로 시작되는 러시아의 국가번호다. “이 시간에 누구지? “ “스팸일 거야. “ 남편이 말했다. 지금 한국은 친구, 가족들도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의 시간. 만약 그들이라면 보이스톡을 했을터, 전화번호로 착신된 벨소리는 생경했다. 나의 휴대폰이지만 벨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이 곳에서 새로 산 전화기에는 남편 외의 음성통화 내역이 거의 없다.


© jonah_jpg, 출처 Unsplash


잊고 있었다. 해가 잠시 사라지고, 어둠이 짙어가는 이때의 통화를 참 좋아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밤새 오래 대화를 나눈다. 동이 틀 때까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는 ‘나 이제 곧 내리니까 전화할게’라고 끝났고, 개찰구를 통과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주고받는 대화를 그 누가 먼저 멈추기가 아쉬워, 환승 버스를 포기하고 집까지 걸어가며 나누던 밤의 대화들. 같은 학교, 같은 회사, 종일 가까이 붙어있었어도, 우리에겐 그리도 할 말이 많았던 건지, 집 앞에 다다른 후에야 아쉬운 듯 전화를 끊었다. “나 이제 엘리베이터 나니까, 잘 자고~ 내일 만나” 나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때문에 통화를 잠시 멈춤 하는 것처럼.




밤의 통화는 은은했다. 밝은 빛 가운데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는 것과 달리, 많은 것들이 어둠 속에 숨겨진 때에는 나와 상대만 보이는 듯했다. 함께 블록을 쌓듯, 한 조각 한 조각 이야기들을 맞춰가며 우리의 무대를 완성한다. 남편과 원거리 연애를 하던 때도, 6시간의 시차 속에 한국의 밤은 모스크바의 새벽이었다. 그 당시 그의 극심한 야근이 우리를 부부의 인연으로 까지 이어줬을지도 모른다.


© trojantry, 출처 Unsplash


오늘 오랜만에 밤의 통화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유학 중인 예전 회사의 동료, 후배였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마비가 되어버린 세상,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의 울적한 기운을 감지했고 영상통화를 했다. “이제 곧 모두 박수를 칠 거예요. 잠시만요, 제가 보여줄게요.” 그녀가 보여준 것은 발코니로 나와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격리의 기간, 저녁 8시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10분간 박수를 친다. 코로나로 인하여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시라도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고국을 떠난 우리, 집에 갇힌 자가 된 우리의 밤의 대화는 펜스 없는 공처럼 여기저기 튀었다.


© sveninho, 출처 Unsplash


밤에 주고받는 목소리로 채워지는 그리움의 양이 있다. 낮보다는 밤의 대화로 채워지는 마음들, 어쩌면 나는 밤에 듣는 정다운 목소리를 꿈까지 데려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꿈에서도 계속 행복할 수 있게...


2020. 03. 20

바르셀로나 지은 & 모스크바 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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