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호빵

바다 건너온 고국의 겨울

by 불가사리


해외에 있으면 평소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국의 슈퍼에서 장바구니에 넣지 않았던 것들, 누가 권해도 거절하던 것들이 더욱 간절하다. 여기서 구할 수 없기에 더 그런 욕구가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청개구리처럼.


© Tumisu, 출처 Pixabay

지난겨울, 처음으로 롱 패딩을 꺼냈다. 추위를 잘 타는 편도 아니고, 한국에서는 카디건을 껴입고 오버 사이즈 코트를 즐겨 입었다. '얼어 죽어도 코트'의 신념은 모스크바에 와서 깨졌다. 여러 사람들의 권고로 처음으로 롱 패딩을 샀다. 11월부터 패딩을 입었고, (한번 입으면 벗을 수 없을 거라는 많은 이들의 예언처럼) 겨울 내내 롱 패딩과 한 몸이 되었다.


모스크바의 겨울 버스, 털모자는 필수


눈이 내리거나 혹은 종일 흐리거나, 모스크바의 겨울 풍경이다. 잿빛처럼 흐린 하늘, 학교로 가는 길은 꽁꽁 얼었다. 조심해야지, 넘어지면 안 돼! 온몸이 긴장이 됐다. 멀리 트램이 오는 것이 보인다. 뛸까? 아니야, 천천히 가자. 입에서 김이 호호- 나온다. 호호 나오는 입김을 보니, 호빵이 생각났다. 엄마가 밥솥에 넣고 찌어주던 호빵, 따끈한 호빵을 꺼내 겉면에 붙은 밥알을 조심스럽게 뗀다. 한 입 베어 물면 따끈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어렸을 때는 야채 호빵이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팥이 좋았다. 이런 날씨에 호빵을 먹으면 정말 행복할 텐데! 꽈당- 넘어졌다. 호빵 생각에 빠졌다가 결국 엉덩방아를 찍었다.

어딘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주사를 맞은 듯 엉덩이가 아프다. 그래도 롱 패딩의 쿠션감이 엉덩이를 보호해주었다. 그 날 저녁 퇴근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호빵은 안 팔겠지?”
“중국시장에 가면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몰라.”
“아니 그런 중국식 말고, 한국 호빵 같은 거 말이야. 소포로는 유통기한이 짧아서 받을 수 없는데, 호빵은 어떻게 만들지? 쌀가루가 필요한가?” 우리의 대화는 호빵으로 시작하여, 호빵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끝났다.


꽁꽁 얼어버린 버스의 창, 현미경 없이 보이는 눈 결정체 +_+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길, 갑자기 카카오톡이 왔다.

“동서~ 잘 지내요? 00 아빠가 다음 주 월요일에 모스크바 출장을 가게 됐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들려 보낼게요~^^”......

나는 발길을 멈췄다. 한참 형님과 어제 있었던 호빵과 엉덩방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갑자기 출장을 오게 된 아주버님과 함께 바다 건너 고국의 겨울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따끈따끈 감칠맛 나는 국물의 삼진어묵, 길게 잘라서 간장에 조려서 김밥에 넣으면 맛있는 어묵, 양배추와 볶아서 들깨가루를 샤샤삭 뿌려 먹을 순대, 그리고 달콤한 팥이 가득 들어있는 호빵! 짧은 유통기한 때문에 인편이 아니면 받기 힘든 겨울의 맛은, 냉동실로 직행하여 다시 동면 상태로 들어갔다.


귀하고 귀한 바다 건너 겨울의 맛 :)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호빵을 꺼내 전기밥솥에 넣고 잠시 기다린다. 따끈한 호빵을 반으로 가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달콤한 팥 내음이 난다. 한 입 베어 물자, 온몸으로 그 달콤함이 퍼진다. 바다 건너온 겨울의 맛,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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