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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n 24. 2024

7. 남을 수 있는 것들Ⅱ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시내에서 매장으로 오가다 보면 시내 입구 언저리의 큰 사거리의 모퉁이마다 행색이 초라하고 늙수그레한 여인네들이 쪼그리고 앉아 어디서 옮겨온 키 작은 화초를 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어느새 먼젓번의 꽃들은 없어져 버리고 역시 얼마 살지도 못할 다른 종류의 꽃들을 심는 것이다. 시청에서 돈을 주고 시키는 일 일 진대 얼마 가지도 못하는 것들을 왜 그렇게 헛짓을 계속하면서 세금을 버리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짓거리에 내 세금을 쓰라고 동의한 적이 없다. 그런 여인네들을 쓰더라도 더 생산적인 일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데에 훌쩍 키가 큰 소나무를 몇 그루씩 옮겨 심어놓고서 밑에다 위로 쏘는 조명들을 박아놓았다. 인간들이란 잔인하기도 하지. 차들의 소음과 매연에 진종일 시달리는 나무들을 또다시 밤새도록 쉬지도 못하게끔 밑에서 퍼렇고 뻘건 불빛을 치 쏘아서 못살게 구는 것이다. 인간들이란 저희 입장밖에는 모른다. 또 화단에는 생뚱맞게 큰 구며 동물 형상의 합성수지 조형물들을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혹여 본다손 치더라도 무슨 감흥이 있을 것인가.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집 가까운 근린공원의 나무들 또한 밤새 같은 고문을 받는 상황이다. 그러한 것을 목도하고 나는 절대로 카페에 그렇게 해 놓기 싫었다. 밤에는 깜깜하게끔, 매장 터의 자연이 쉬게끔, 즉 밤에는 영업하지 않기로 했다.

  매장 앞마당은 잔디가 아니고 쇄석이 깔려있어 다행이었다. 잔디마당이 보기에는 좋겠지만 여차하면 깎으면서 삶을 마칠 것인가. 얼마 있으면 가을이 오고 산속이라 온통 가랑잎으로 덮이리라. 나는 치우지 않을 요량이었다. 세상에 풀 뽑고 낙엽 쓰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매장의 화장실 뒤편에 떼어진 창호 문 한 짝이 먼지 덮여 있었다. 나는 마뜩잖았으나 일전의 문인 협회 사무국장이 그렇듯 한자리쯤은 칸막이로 막아 놓으면 그 자리가 좋다고 할 여자 손님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썼던 작업대―이제 부피 큰 목공 작업은 다 끝난 터였다―를 해체했고 굵은 각재 두 개를 다듬었다. 그 사이에 창호 문을 끼워 박은 다음 한쪽에다 세우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또 페인트값을 들여야 했다. 칸막이를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손바닥보다 좀 더 큰 나뭇잎 모양의 A 보드에 바탕색을 입혔다. 전에 집 근처 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놓았던 것으로 아마 관광 기념품이었을 물건이었는데 글씨나 혹은 그림은 세월에 다 지워진 것 같았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잎새 하나(한경애, 〈옛 시인의 노래〉)


  나는 그것에다가 하얀 글씨로 그 가요의 가사를 적어 넣으면서 까닭 없이 우울했다.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우리들의 사이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나는 앞마당 아름드리나무들의 푸르른 잎사귀들로부터 이미 낙엽이 흩날리는 늦가을 날을 느끼고 있었다. 여름은 한가운데인데 문뜩 생각했다. 끔찍할 겨울은 어찌할 것인가. 

  마당에 면한 그 풀밭을 가로지르면 돌계단에 이르고 사찰로 올라갈 수 있었다. 풀밭의 그 좁다란 사잇길은 맨땅이어서 비만 오면 진창이 되는지라 편의상 헌 차도 블록사찰 한 편에 쌓여 있었는데 안 쓴다는 것이었다을 날라다 두 줄로 깔아 두었었다. 

  며칠 후 그들은 다시 왔다. 여자 쪽은 처음부터 호감 가는 유형이었지만 남자 쪽은 여전히 껄끄럽게 굴었다. 

  “그런데 바깥에 보기 싫게 저게 뭐예요? 까는 돌판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걸로 깔아야지. 영 그렇네.”

  남자 쪽이 그 임시의 차도 블록 통로를 보고 들어왔는지 하는 소리였다.

  “깔 돈이 있어야지요.”

  내가 말했다.

  “돌 공장 아는 데 전화해서 (판석을) 시켜요. ……내가 해 드릴게.”

  누가 돈이 많다면 일단 수그리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돈 많은 사람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왔다. 내게 돈을 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카페의 어느 구석이 조금 정리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어차피 사찰 경내고 사찰로 가는 길이 되는지라 사찰에 이롭지 내게는 크게 득이 된다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만큼의 돈을 내게 준다면 참으로 긴요할 터였다. 

  “돌판이 와도 저는 그런 거 까는 노가다 못 해요. 힘들어서.”

  “아, 누가 직접 깔래요? 전화해서 업체에 다 맡기라니까 그러시네.”

  이제 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전화해요?”

  “하세요, 전화.”

  나는 맥없이 말다툼하기가 싫었다. 돈 자랑도 정도가 있어야지…….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이번에는 여자 쪽이 끼었다. 처녀 적에 쓰던 타자기가 있는데 매장에 어울릴 듯하니 기증해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벌써 철제 앵글 선반 장에 버리지 않았던 전동 타자기를 가져와 놓았기에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좋은 뜻으로 하는 제안을 거절하기가 곤란했다. 




  세월은 또 간 모양이었다.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휴대전화 이용정지 안내였다. 다시 요금을 못 낸 지 3개월이 다 된 것이었다. 삼 개월이 넘으면 휴대전화가 끊기고 다시 사용하려면 그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야 한다.

▲ 달항아리와 일월오봉도(김미경 작가)

  돈이 많이 들었을 한옥에 걸맞게끔 내부를 궁궐처럼 해 놓고 싶은 마음이 난들 처음에는 없었겠는가. 어떤 자리는 근사하게 조각한 나무 난간도 두르고 싶었고 몇 군데는 사군자 따위가 그려진 하얗고 큼직한 호리병이나 달항아리를 배치한 그림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고, 어디서 빌려서 한옥에 들어맞는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어디 가서 엄청난 시간 동안 노동을 해서 그 돈을 갚아야 한다. 즉, 그 기간만큼의 내 자유를, 내 인생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옥이라고 구태의연한 해석이 얼마나 많은가. 한옥으로 지어놓고 영업을 하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어느 곳을 한 번 들러보았더니 마당 입구에는 어디서 실어 온 커다란 연자매를 세워놓고 한쪽에는 디딜방아를 갖다 놓은 정도였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인데 솟대들에 괴목에, 심한 곳은 떡 하니 장승을 세워놓는다든지 역시 뜰 앞에는 맷돌이 있고 출입문 안쪽 벽에 소 코뚜레를 건다든가 하는 따위였다. 그 해석이란 민속 주점이나 민속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소 코뚜레의 문제로, 뚫릴 때 얼마나 끔찍하게 아팠을까. 그것을 보며 사람들이 무엇을 연상하겠나. 속박, 노역, 고통……. 업소와 어울리는가? 

  나는 차라리 돈이 없었기에 이것저것 주워다 매장을 꾸며보니 색다른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것이나 주워서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니었다. 예술적 눈썰미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장 안을 휴대전화가 나오기 이전의 내 청소년기에서 청년 시절의 시대상처럼 해 놓은 꼴이 되었다.


  버리면 그만인 것을(송대관, 〈정 때문에〉)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 놓고 커피 장비를 비싼 것으로 사면 나중에 공사비를 날리고 기계류 들은 손해를 많이 보고 중고로 처분하거나, 안 되면 내가 써야 하는데, 거의 주워다 만들고 꾸며 놓은 물건들은 망해도 다시 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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