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지금의 상가주택을 사서 오기 전에 아파트에 살았는데 비록 인조가죽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색인 겨자 빛깔의 1인용과 3인용의 소파 세트가 거실에 있었다. 어린이집도 들어가기 전의 아주 어릴 적의 딸아이가 어떤 날카로운 도구로 필시 3인용 소파의 몇 군데를 길게 갈라놓은 것 같았다. 아내가 그 소파 세트를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리 비싸지 않아서 천갈이를 하나 새로 사나 비슷할 것 같기는 했다. 내가 3인용 소파를 들어내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일인용은 멀쩡한데 그냥 쓰지?”
“하나만 남겨서 뭘 하려고요?”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고집을 세웠다. 그 하나는 한 사람이 앉으면 딱 좋은 데 왜 같이 버려야 할까. 나는 그 1인용 겨자색 소파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내 서재에서 잘 쓰고 있다.
20년 전쯤 전에 두 번째 사업장을 시작했을 때였다. 사무실에 텔레비전을 가져다 두었는데 올려놓을 마땅한 것이 없었다. 어느 날 그 건물 근처에서 누가 길가에 버렸던 오디오 장을 가져와 텔레비전을 올리고, 그 오디오 장 안에는 자주 써야 하는 여러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용도로 쓰니 아주 괜찮았다. 나는 그것을 세 번째 사업장을 차렸을 때도 가져와서 계속 썼다.
상가주택으로 이사 와서는 전에 말했던 집 근방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쓸만한 것들을 골라 왔다. 그중에는 과일이 예쁜 색깔로 프린트된 무슨 설탕통이나 양념통일 듯한 뚜껑 있는 흰색 도기도 있다. 뚜껑의 손잡이에 약간 이가 나갔을 뿐 예쁜 물건이라 나는 야외용 재떨이로 칠 년 넘게 써 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새 물건을 사지 않고 끝까지 쓰거나 버려진 물건을 가져와 용도에 알맞게 활용하는 소질이 있었다.
삶에 너무 지쳤기에 처음에 생각했던 카페 이름은, ‘마음 심자’처럼 한자의 훈과 음을 붙여 읽는 것과 같이 ‘마음 쉼표’였다. 로고도 간단하게 쉼표(‘,’)로 하려고 했었다. 나처럼 육신과 마음이 피로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다 내려놓고 얼마큼이라도 쉬었다 가게끔 휴식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한 해를 넘긴 다음 이제는 진짜로 카페를 하려고 보니 그사이 서울에 한 유명 출판사가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대형의 북 카페를 차려놓은 것이었다. 상호가 쉼표에 해당하는 영 단어고 로고 역시 그 쉼표였다.
나는 돈이 없었으므로 매장을 만들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업이란 무서운 것이다. 예전에 사업할 때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운영자금을 대서 성공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 아파트 가격은 많이 올랐고 나는 그 아파트를 팔고 돈을 보태서 사 층짜리 건물을 샀다. 지금 건물을 또 어찌해서 사업을 하기는 싫었다. 지금 건물은 고스란히 둔 채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의 내 사업은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업이란 다음과 같은 수순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자신은 그럴 능력이 안 되는데 분위기에 들떠서 사업을 벌인다. 그 사람도 망하고 자신도 망한다. 그런 일은 반복된다. 결국, 멀쩡한 집마저 날려버리고 월셋집, 원룸으로 전전하게 된다. 파스칼도 말했다.
도박을 즐기는 모든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어쨌든 나는 집을 담보로 무엇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은 남아 있다. 내 집이 내성(內城)이라면, 거리는 꽤 떨어졌지만, 이 매장을 외성(外城)으로 해서 내 내성을 지켜가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사(騎士)가 되고 싶었다. 십 세기에서 십사 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났었다면 어찌해서라도 나는 기사가 되었으리라.
우리가 오롯이 차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만들자면 어떻게 꾸며 놓아야 할 것인가.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안 마시고 돈과 수고를 들이며 굳이 찻집이나 카페를 찾는 것이다. 차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그 환경이 중요한 것일까.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같은 테이블, 같은 의자, 1000원숍에서 파는 같은 소품들……. 경주든 전주든 제주도든 관광지 기념품 집에 있는 다 똑같은 물건들처럼. 카페를 꾸민다고 그런 것들을 사다 놓아봐야 다 돈이고, 일부러 다 들여놓았는데 망할 때는 어떡하나. 내 카페는 색달라야 했다. 이 매장의 터는 산성 비슷하니 건물만 전통 한옥이 아니라면 기사의 작은 성처럼 꾸몄으련만 어쩌랴. 나는 한옥의 내부를 재해석해 중세 유럽―귀족 작위가 있는―기사의 성관 서재처럼 꾸미기 위해 고심했다. 크로스오버라 할 것이다.
1571년, 38세, 2월 말일, 생일날, 나 몽테뉴는 법정에 봉사하고 공공에 종사하는 데 지쳐서, 지혜의 성모의 가슴에 완전히 몸을 맡긴다. 이미 반생은 지나갔지만 여기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벗어난 고요와 자유 속에서 남은 반생을 보낼 것이다. 운명 덕분에 이 터에 조상 전래의 은거지에 달콤한 주거지를 완성하고 이를 자유와 고요와 여가에 헌정했다. ― 몽테뉴 성의 성탑 서재 서까래에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가 새겨놓은 말
고등법원 법관을 하다 37세에 은퇴한 몽테뉴는 그 성탑에 틀어박혀서 《에세Essais》를 썼다. 비싼 것들이 아니어도, 주워다 놓은 것들이라도 왠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정신세계의 높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싸지만 아끼고 손때 묻은 것들, 비싼 인간도 아니면서 비싼 물품을 좋아하는 천박함을 넘어 꼭 필요한 물건들만 유용하게 사용하는 정신의 격이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아무거나 가져다 늘어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고매함을 잃지 않는 품격이 있어야 했다. 귀족 정신이 풍기게 하려 했다. 귀족이라고 다 부유하지는 않다. 영혼의 귀족, 가난한 기사도 있는 법이다.
나는 집에서 장식용의 기사 방패부터 떼어왔다. 내가 커피를 내릴 카운터 테이블이 매장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내 정체성을 드러낼 그 방패를 카운터 테이블 뒷벽 한쪽에 걸었다.
내 성의 계단 중간 참, 삼 층으로 꺾어지는 그 벽에 박힌, 벌떡 뒷발로 일어서서 포효하는 사자 문장이 새삼스레 주인을 반겼다. 5일 장 내 단골 골동품상에게 구해왔었던, 아마도 큰 도시 어디 폐업한 레스토랑이나 대형 호프집으로부터 흘러왔음 직한 그 금빛 사자 방패는 뭔가를 끊어 낼 듯이 쌍 도끼까지 맨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내 두 번째 책에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중세 유럽에 태어났고 기사라고 해 보자. 이제 내게 무엇이 남았는가. 젊음마저 남아 있지 않다. 옛날 숱한 전장에서 무용을 떨치며 공훈을 세웠었지만 나는 늙었다. 늙은 기사에게 무엇이 남아 있나.(내 창마저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노릇을 하다 나오니 그 승마장 대표가 빼돌렸다.) 젊은 기사와 붙겠는가. 젊었을 적의 명성으로 살 것인가. 늙은 기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늙은 기사로 그냥 죽을 것인가.
그렇다. 나는 생각을 하며 글을 생산하려고 이 산성에 들어왔다. 이 외성에서 책을 써 갈 수 있고 내성을 지켜 갈 수 있는 경제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때―나는 늙었어도 기사이기에―금전적 여유가 되면 또 말을 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