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나는 어떻게 하면 돈 들이지 않고 매장 내부를 (가난한) 귀족의 서재처럼 꾸밀 수 있을까 고심했으나, 조금 더 구색을 맞추고 싶은 욕심이 났다. 예전부터 내 서재에 걸고 싶었던 그림이 있었다. 바위 봉우리 위에 우뚝 올라서서 안개―혹은 구름―에 덮인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귀족적인 사나이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었다.
실탄이 없었기에 하루 용역 일을 나가야 했다. 역시 비천한 일인 모양이었다. 어느 산 중턱 고갯길 옆에서 고물상 부지를 고르는 일이었는데, 어차피 중기가 와야 시작할 수 있다고―원래 그 판은 기사랍시고 잡부보다 한 시간쯤 늦는다는 것이었다―속풀이를 하자면서 인부들이 한구석에서 라면을 끓였다. 나도 몇 젓가락 후루룩 넘기고 있는 차에 굴착기가 나왔고 기사가 내렸다.
“여기서 만나네? 주애 아빠!”
내가 알은체를 했지만 주애 아빠―굴착기 기사다―는 말없이 어색한 웃음만 짓더니 젓가락을 놓고 다른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친구의 친구였으며, 예전에 내가 사업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를 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이도 나를 경대敬待해야 했었다. 그의 첫째 딸아이와 내 아들내미가 초등학교 때의 친구였으며 서로의 아내들끼리 한동안 절친한 사이였다. 그도 나와 몇 번 술을 마셨었고, 한때 그는 내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었다.
일을 하다가 그와 근접하게 되었을 때 카페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으나, 그는 듣는 둥 마는 등 또 저쪽으로 가버렸다. 그 후로도 계속 그는 나를 피했는데, 나 같은 사람과 말이라도 섞으면 그 장면을 다른 인부들이 보게 될까 봐 극히 경계하는 눈치였다. 저는 기사고 나는 잡부다 이건가? 막노동판에도 계급이 있다? 나는 그 인간상에 망연할 수밖에 없었다.
책장에 찬 버림받은 책들 앞에다 일전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둔 예의 그 하얀 찻주전자와 내가 처음에 소설가를 결심하게 한 에밀리 브론테의 작은 탁상용 녹색 타원형 액자, 책을 읽는 메를린 먼로의 사진 액자 등속을 올려놓고, 처제의 그 콘솔 위에 집에서 돌아다니는 안 쓰는 직조 자수의 테이블 러너를 깔고, 그 돈 많다는 내외가 내가 없을 때 문 아래 놓고 간―아마도 여자 쪽이었으리라―검은색 수동 타자기를 올려두고 하면서 소꿉놀이를 했다. 모퉁이 쪽에 당당한 뒷모습의 사내 그림을 떡 걸기까지 하니 그럴듯했다. 그럴듯하기만 하면 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청소년 시절에 직접 썼던 그 빨간 카세트 플레이어며 역시 빨간색 흑백텔레비전 수상기, 진열장 안에 배열한 내 문학적 유물들, 그 밖의 여러 소품으로 매장 안은 내 청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시절에 시간이 멎어 있는 듯 보였다. 드론이니 자율주행 자동차니 인공지능이니 다 필요 없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은 옛것으로만 살아도 충분할 수가 있다. 《1984》나 《멋진 신세계》의 세상이 옳지 않을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되었었다.
나는 그렇게 내 문학적 기념관을 만들었다. 사람이 자기 인생 중에 자신의 기념관 하나는 만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병장 때, 분대는 파라다이스(paradise)라 불렸던 인근 군수지원대로 파견을 나갔다. 위병근무 병력교체였고 기간은 석 달이 조금 모자랐었다. 늦봄 환한 오전이었다. 나는 며칠 전서부터 바짝 말라서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주우며 막사며 보급 창고 뒤편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바퀴도 다 달아나 나뒹굴고 있던 거였지만, 푹신한 데다 팔걸이까지 온전한 내 회전의자가 거기에 박혀있었고 큼직한 돌멩이 몇 개를 고아서 나는 화덕도 만들어 놓았었다. 내 의자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널따란 합수(合水)는 유유히 반짝이며 물결쳤다. 반합에 담아온 찬물에다 털어 넣고 같이 끓여버린 봉지 커피는 유달리 쌉싸름하면서도 달큼했다. 구름은 어느 쪽으론가 느긋하게 흘러갔다. 한동안 그렇게 나는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좀 추스르고 씻기지 못할 한도 천천히 한 번 삭여보려 했다.
군수지원대장 김 중위가 허리를 자꾸 굽혀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가 있는, 말수 적은 인물이었다.
“윤 병장은 참 멋있게 지내는 것 같아.”
김 중위는 마른 나뭇가지 한 줌을 쥐고 있었다.
“근무 아닐 땐 시간 죽이면 뭐 합니까? 커피 하시겠습니까?”
그가 모닥불에 자기 나뭇가지들을 던져 넣었다.
“혼자서 좋은데 괜히 내가 끼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도 그는 맞은편 넓적 돌로 엉덩이를 내렸다. 내 의자를 권했지만, 한사코 그가 사양하기에 나도 다른 돌로 옮겨 앉아야 했다.
“한 따까리 주면 고맙지. ……그 책 좀 줘 볼래?”
〈로미오와 줄리엣〉, 〈맥베스〉와 〈햄릿〉이 합본 된 거였다. 훤칠한 데다 잘생긴 편이었지만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은 양 낯빛이 시커멓게 죽은 김 중위는 나보다 두세 살쯤은 연배로 보였다. 다음 날부터 어, 하다 보면 그가 올라왔다.
“얻어 마시기만 할 순 없잖아. 자, 윤 병장. 이거 이름도 어려워, 테이트터스, 아니 테이스터스하고 또 뭐라고?”
내가 마시는 빨간 봉지 커피 한 갑이었다.
“윤 병장은 제대하고 뭘 할 건가?”
“대장님은 뭐를 하실 겁니까?”
“글쎄. 후…….”
그가 한숨 비슷하게 내쉬었다.
“직장부터 잡고 결혼이나 해야겠지. 자네는?”
“작가가 될 겁니다. 소설가.”
이 같은 내 두 번째 책 중의 내용이나 《노인과 바다》 등을 읽고 나서 믹스커피를 타 마신 이야기 등으로 보이듯, 나는 원래 믹스커피는 전문가라면 전문가였다. 나는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거리의 커피자판기 앞에서든 믹스커피를 즐겼었고, 봉지를 안 보고 맛만 보고도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인지 알아맞힐 정도였다. 물 양을 적정하게 맞추는 데 실패도 없었을뿐더러, 나중에 나온 막대 모양 봉지 커피는 설탕이 한쪽 끝에 모여있어 그쪽을 쥐고 얼마만큼 설탕을 남기면 내가 커피를 제일 잘 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바리스탄가, 그런 자격증 안 따도 되니?”
모친은 또 기우를 했다.
“내 친구 둘째 딸내미는 회사 다니다 관두고 이백만 원 주고 배워서 그런 자격증 있다던데, 카페 하려면 따야 하는 거 아니니?”
“글쎄, 그딴 걸 돈 내버리고 왜 따요? 그건 국가자격증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아무나 발급할 수 있는 민간자격증이에요. 사단법인 같은 거요.”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모친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니”
아니, 조금 보태면 아예 에스프레소 머신을 살 수 있는 돈을 미쳤다고 그깟 쓸데없는 종이쪽지를 걸어두려 커피학원에 갖다 바치냐 말이다. 에스프레소 머신만 있으면 그까짓 몇 번 연습해 보면 될 일이다.
나는 이제부터 커피를 팔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커피 원두 그라인더도 하나뿐이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그저 그런 성능의 제품인 데다가 로스팅이네 뭐네, 말(馬) 전문가라면 또 몰라도 무엇보다 커피 전문가이고는 싶지 않았다. 내 여생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커피 맛이야 좋으면 좋겠지만, 각자의 입맛에 맞으면 또 그뿐인 것이다. 나는 재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을 이끌면서 바쁘게 살았을 때도 내 수중에는 남는 돈이 없었다. 나는 소설 작가의 본질을 살기 위해 여기로 들어온 것이다. 커피를 팔아서 다 제하고 달마다 최소 100만 원씩이라도 집에 가져다주면 그 소설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에 장사가 될 텐데 얼른 작업을 마쳐야 하지 않겠냐고 모친은 속도 모르고 몇 차례 채근했지만, 혼자서 매달리니 팔 월도 끝나가고 있었다. 혼자 일하느라 애썼고 하니 부친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막냇동생과 다 같이 여행 겸해서 어디 철 지난 바닷가라도 한 번 다녀오자고 모친이 권유했다.
‘해양 레일바이크’며 ‘해상 케이블카’ 따위를 탈 때 개중에 돈이 있을 것 같은 탑승객들을 보면서 나는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문학적인 것 같은. 그러면서 내가 넉 달여 동안 만들어 온 카페를 떠올렸다.
강릉 바닷가의 ‘커피 거리’라는 데를 관심을 가지고―예전에는 그저 한차례 갔었다―들러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도 이상하게 나는 파도치는 바닷가에서는 같은 노랫가락만 가슴 밑에서 올라와 입안에서 맴돌았다.
밀려오는 그 파도 소리에 밤잠을 깨우고 돌아누웠나
못다 한 꿈을 다시 피우려 다시 올 파도와 같이 샐까나(썰물,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젊은 날, 나는 얼마큼의 상심으로 몇 번이나 그 같은 바닷가에서 파도 앞에 망연히 섰었던가. 못다 한 내 옛 꿈이여……!
예전처럼 바다를 면하고 2, 3, 4층의 카페 건물들이 늘어선 중에 프랜차이즈점도 중간중간 여럿 보였다. 자기네들 마음인지는 몰라도 왜 이런 데까지 프랜차이즈점들이 끼어들어 있는지 이해가 안 갔으나―내 단골 대목욕탕 건물 1층에 들어온 그 브랜드도 있었다―일단 프랜차이즈는 다 거르고 몇 군데를 놓고 고심하다가 사람 많아 보이는, 온통 하얀색의 카페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천천히 한 모금씩 넘겼는데 얼추 입에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는 그 정도 맛쯤이면 될 듯싶었다.
〈그깟 커피Ⅱ〉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