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sight_02

붉은빛 구토

by Bullee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은 통증에 잠에서 깼다. 지금이 몇 시인지, 얼마나 잠을 잤는지 평소와는 달리 궁금하지 않았다. 적막한 공간에 누운 채 곧 좌절감이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두려움을 덮기 위해 애써 기대감이라는 감정을 불러냈다. 두려움을 덮기에는 다소 얇은 기대감과 체념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는 얇은 기대감에 모험을 걸어 보기로 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 통증에 깨어났을 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어둠만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눈을 떴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만져봤다. 손으로 만진 눈은 이상이 없었다. 또다시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가 목을 졸랐다. 위험한 생각이 그녀의 뇌에 스며들었다.

‘아주 편한 길이 있어. 그냥 죽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거야.’ 점차 어두운 생각이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짧은 시간차를 두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네요.」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어버린 그녀의 뇌가 모든 반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지금은 밤입니다. 6시간 정도 잠들었네요.」 무심히 정보를 주 듯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왠지 말에 반응을 하면 그가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안보이시나 보네요. 다른데 는 다 이상이 없는데.....」 그의 말에 그녀는 화가 났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의사라는 사람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그냥 내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가? 순간 그녀를 지배하던 어두운 생각이 물러가고 그 자리는 붉은 화가 채워졌다.

「아무 이상이 없다뇨. 눈이 안 보이는데 이상이 있는 거죠. 여기 병원이라면서요. 문제가 있으면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지금 내가 문제라는 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의사로서 능력이 없다는 걸 고백이라도 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자신에게 가득 찬 붉은 감정을 게워내듯 그에게 쏟아부었다.

「이상이 없어서 이상이 없다고 한 겁니다.」 무미건조한 그의 답변에 그녀는 폭발했다.

「씨발. 이 돌팔이 새끼... 눈이 안 보이는 게 이상이 없는 거면 보이는 새끼들이 다 이상한 거냐... 다른 의사 불러와 」

「화를 내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는 그녀가 쏟아 내는 감정의 풍랑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담담히 자기가 할 말만 했다.

그녀가 내뱉고 있는 단어들은 그녀의 화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담겨 있었다. 감정들을 탈탈 털어 내자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바로 서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녀는 결국 지쳐 울음을 흘리며 저 깊숙한 찌꺼기까지 게워내서야 감정의 구역질을 끝 낼 수 있었다.

「내일 형사들이 방문한다고 하네요. 아까 왔었는데 자고 있어서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감정을 쏟아 낼 때 조용히 있던 그는 그녀가 울기 시작하자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그녀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몸과 마음 모두 지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또다시 어두운 감정이 밀려왔다.


「힘들 텐데 그만 주무세요.」 의사가 말하면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녀는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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