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온 준호는 이 사건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지 고민했다.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그의 감이지 문성식이 나타나지 않는 지금 같은 회사 직원을 차로 치고 도망간 뺑소니 사고 일 뿐이다. 서에 도착한 준호는 간단한 사건 보고서를 작성 한 뒤 다른 사건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민희는 이제는 익숙한 통증에 깨어났다. 익숙해졌다기보다는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이상 곧 시력이 돌아올 거라 고 했다. 감정 없이 그 말투가 그녀에게는 오히려 믿음을 주었기에 더 버텨보기로 했다.
잠시 후 여닫이 문이 열리면서 회사 직원이 들어왔다. 그 이름과 목소리를 듣고 누군지 떠올랐다. 회사에서 오고 가다 눈인사만 하는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몸은 좀 어떠신지?」 그다지 걱정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네요. 다만 지금 눈이 안 보여서요. 사고 후유증이라네요..」
민희의 앞이 안 보인다는 소식은 그를 꽤 당황시켰나 보다. 회사에서는 그녀 상태를 알아본 뒤 최대한 빨리 회사로 복귀시키려 그를 보냈을 테니 말이다.
「아. 큰일이네요.」 그의 말은 민희 자신을 걱정하는지 아니면 회사를 걱정하는지 애매모호했다.
「사고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좀만 기다리면 시력이 돌아올 거라고 하네요. 곧 복귀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해주세요.」 그녀는 회사의 태도가 짜증 났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잃을 수는 없었기에 곧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일 비췄다.
「그나저나 회사는 별일 없어요?」 민희는 화제를 돌렸다.
「별일이 없다뇨. 지금 기획팀은 전쟁터예요. 난리가 아니에요. 과장님도 이렇게 됐지 문 팀장님은 여전히 연락이 안 되지....」
「문 팀장 아직도 연락이 안 돼요?」 문 팀장이 연락이 안 돼 자기까지 고생했는데 지금은 본인이 병원에 입원했으니 기획팀이 지금 어떤지 상상이 됐다.
「그러게요. 지금 회사에서 다들 문 팀장님 걱정하고 있어요. 들어보니 집에도 연락이 안돼 회사로 찾는 전화가 왔었다나 봐요..」 그는 문 팀장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투로 계속 문 팀장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해 갔다. 그녀는 누워있는 자기보다 사라진 문성식에 대한 말만 계속하고 있는 그의 말에 짜증이 났다. 그 사람은 계속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회사에서 다들 그를 걱정하고 있다는 건 사실일 것이다. 문 팀장은 워낙 사교성이 좋아 다들 친했으니까.
생각해보니 일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공석이 된 팀장 자리에 자신이 올라갔어야 맞는데 회사에서는 외부에서 문성식을 영입해 팀장 자리에 앉혔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문성식을 축하했다. 강민희에게는 그 어떤 누구도 위로의 말이나 그녀가 팀장이 됐어야 한다는 말조차 없었다. 회사 사람들에게 있어 강민희는 큰 의미가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민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혹은 자신에게 그들이 큰 의미가 있거나 가까운 사이이길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도 그다지 오래 가진 못했다. 회사 이야기가 끝나자 더 이상 그녀와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는 대화 아닌 어색한 침묵만이 오고 갔다.
「이제 그만 가보시죠. 참 제가 핸드폰도 사고로 잃어버려서 연락이 안 돼요. 핸드폰을 구할 때까진 연락하기 힘들 거라고 팀원들에게 전해주세요」
「아. 네 기획팀에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몸 잘 회복하시고 얼른 복귀하세요.」 그가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지막에 던지듯 하고 선 병실을 나갔다.
일단 민희는 새로운 핸드폰부터 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