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는 은혜가 난리를 치고 나간 뒤 문성식을 떠올렸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기 때문이다. 민희가 그를 처음 만난 건 그가 팀장으로 왔을 때이다. 민희는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들어온 굴러온 돌이었기에 만나기 전부터 그가 싫었다. 그는 민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유쾌하고 주변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성격이었다. 문성식도 처음에는 그녀와 친해지려고 노력했으나 민희의 닫힌 마음 때문에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까지 늘 챙기는 문성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팀원들과 가벼운 술자리로 팀원들을 격려했다. 서로 다른 성격은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늘 부딪치는 요소였다. 민희가 내놓은 제안은 늘 문 팀장에게 까이기 일 수였고 문 팀장이 추진하는 일은 민희가 대부분 반론을 제기해 일이 진행하는데 늦어졌다. 그래서 팀원들은 일을 할 때마다 둘 사이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의견 차이 때문에 대부분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좋은 성과로 팀은 회사 내 입지도 단단해졌다.
두 사람은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가만 두지 않았다. 민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문성식은 그녀를 늘 챙기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요한 접대가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팀원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만 했고 민희도 팀원들과 함께 했다. 모든 건 순탄히 진행됐다. 접도 자리도 분위기가 좋았고 상대도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상대측에서 팀장이 취했는지 민희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면서 일이 생겼다. 민희는 프로젝트 수주를 망칠까 봐 참았지만 상대방은 그럴수록 더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자 민희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그 두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던 문 팀장이 갑자기 나타났다. 상대방 팀장의 손을 막고 제지하며 순간 민희를 구해냈다. 민희는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 그냥 집으로 가 어둠 속에 자신을 맡겼다. 민희는 삼일 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회사에서도 그녀에게 연락이 오질 않았다. 사흘 뒤 그녀는 사무실에 출근했다. 문 팀장이 팀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는지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날 밤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무실에서도 그 이야기는 돌지 않았다. 게다가 프로젝트도 예상대로 수주했고 그녀는 삼일 간 연차를 낸 것으로 처리가 되어 있었다. 문 팀장이 다 손을 쓴 덕분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민희는 문성식을 팀장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어쨌든 뒷수습을 했으니까. 하지만 문 팀장에게 별도로 이일에 대해 딱히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문 팀장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평소보다 두 사람이 의견 차이를 두고 싸우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민희가 문성식에게 마음을 열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팀장으로 대우를 해주기로 한 것이다. 민희가 문성식에게 마음을 연 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민희의 모친상이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살다 직장을 서울로 오면서 어머니만 지방에서 혼자 살았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민희는 급하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지만 민희가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민희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이별에 대해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있는 이는 어머니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그녀 옆에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수습하지 못할 상태까지 그녀는 패닉에 빠졌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에서 문성식이 팀원들을 데리고 내려와 뒷수습은 물론 장례까지 다 치렀다. 삼일장이 끝나고 팀원들은 올라가고 납골당에 어머니를 모시는 것까지 문 팀장이 그녀와 함께 해 줬다.
모든 정리가 되고 그녀가 다시 출근했을 때 그녀는 입사 후 처음으로 팀원들에게 서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성격이 바뀐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더 거리를 두고 자기 영역에 그 어떤 사람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성식 팀장만은 예외였다. 민희는 문성식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평소와 같이 의견 충돌이 잦았다. 그래서 회사에 그 어떤 사람도 민희의 변한 감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