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본 은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은혜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다.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얼굴로 올라와 눈물이 돼 몸 밖으로 분출한 것이다. 화와 함께 열도 같이 올라왔다. 열은 머리까지 올라가 머릿속 생각들을 다 태워 버렸다. 은혜는 다 타버려 재가 된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은혜는 사진을 쥔 채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자율신경마저 기능을 멈춘 것 같았다. 심장이 멈춘 것처럼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았고 온몸의 근육들도 기능이 멈춘 것 같이 힘이 빠져 서 있을 수 없었다. 오열하듯이 모든 눈물을 쏟아부어서 일까 얼마 후 울음이 그치기 시작하면서 화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화가 가라앉자 은혜의 가슴속에 여러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 지금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배신감이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배신감을 불러온 것은 사진 속 행위가 아닌 아래에 새겨져 있는 날짜였다. 처음으로 가족과의 약속을 깬 그날이다.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그 여자를 선택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 날인 것인가.. 그리고 그날 밤 그의 눈물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녀를 향해 밀려들던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지자 타버려 사라진 것 같았던 이성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실 확인이었다. 사진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었지만 남편에게 실에 대해 직접 들어야만 했다. 은혜는 떨리는 손으로 성식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면서도 그가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전화를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의 뜻대로 성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혜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반대쪽 손을 봤다. 사진이 그녀의 꽉 쥔 손안에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손을 피는 순간 그녀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사진을 쥐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손을 폈다. 은혜는 사진을 보자마자 길에 차에 깔려 죽은 쥐를 본 것 같이 속이 메스꺼워졌다. 차 안 두 사람이 얽혀있는 장면은 불결함을 넘어 역겨웠다.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은 은혜에게 겨우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남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녀는 상당히 낯설었다. 은혜는 혹시 몰라 자신의 머릿속 기억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저 깊숙이 미세하게 뭔가 희미한 익숙함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렇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여자였다. 하지만 기억의 끝이 너무나 미세했다. 조금만 강하게 끌어내면 끊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천천히 기억의 끈을 끌어올렸다. 남편이 핸드폰으로 보여준 사진이 살짝 떠올랐다. 기억의 끈이 얇았지만 한번 건지니 자세히 그 얼굴을 본 장면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일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그 이상하다는 성식의 팀원이었다. 그때 그녀가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떠올랐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름이 떠올랐다. ‘강민희’ 그녀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