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는 출근 후 자리에 앉으며 조용한 주변에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을 뺀 다른 팀원들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자신만 사무실로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문 팀장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이다. 그날 이후 무작정 그녀 집 앞으로 오거나 자신을 공격적으로 대하는 등 그녀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포기한 것은 아닌 눈치였다. 자신을 조금 덜 괴롭히지만 쉽게 포기할 그가 아니다. 완전히 자신을 놔준 건 아니기에 늘 경계심을 가지고 그를 대했다. 그래도 문 팀장이 없는 오늘 하루는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지내도 될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희는 은혜의 전화를 받고서 크게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찍힌 사진이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성식과 관계를 맺은 사진이 찍혔다면 아마 그날 차에서 있었던 일이 찍혔을 것이다. 성식과는 늘 조심스럽게 자기 집에서 관계를 맺었고 밖에서 관계를 맺은 건 그날 하루였다. 문성식이 광기에 휩싸여 자신을 짓밟던 그날. 늘 자신의 주변에 벽을 치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조심했던 그녀가 딱 하루 그것도 광기에 휩싸인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날 자신이 외부인에게 노출된 것이다. 물론 문성식 부인이 없는 사진을 가지고 자기를 겁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상대방이 너무나 단단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둘러 가지 않고 자신의 목적부터 이야기한 걸 보면 말이다. 만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진을 돌려받아야 한다. 과연 그녀는 어떤 거래 조건을 걸지 불안했다. 하지만 그녀의 속을 긁는 건 주도권을 뺏겼다는 것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카운터 펀치를 맞아서 미쳐 대처할 수 없었다. 이미 주도권을 뺏긴 채로 그녀를 만나기 때문에 협상에 불리한 입장이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가진 패를 모르기에 대처를 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려도 은혜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그녀도 아는 것 같다. 주도권이 그녀에게 있다는 걸. 결국 민희는 은혜의 메시지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 그녀에게서 시간과 장소만 통보하듯 메시지가 왔다. 그녀가 통보한 장소는 찾아보니 회사에서 꽤 떨어진 카페였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선 오후에 약속 장소로 갔다. 택시를 타고 내리니 규모는 있지만 공간은 한눈에 다 들어오는 크기의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서 생각났다. 민희는 은혜의 얼굴을 몰랐다. 혹시 혼자 앉아 있는 여자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서 인지 손님도 얼마 없었고 여자 혼자 있는 테이블은 없었다. 아직 안 온 듯 해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늦게 오는 것도 다 그녀의 계산에 있는 행동일 것이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문성식만큼이나 상대방을 괴롭히는 방법을 아는 여자였다. 민희는 출입문 쪽을 바라보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체크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잘 차려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여자가 오늘 마주해야 하는 상대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 역시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민희를 발견했다. 곧장 민희에게 오는 가 싶더니만 커피를 주문했다. 주도권이 있는 자의 여유인가. 커피를 받아 들고서는 그제야 민희에게 다가왔다. 민희는 그녀를 본 순간부터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자신의 머리채가 잡힐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이 상황 자체도 꽤나 흔한 소재이긴 했다. 상대방은 차분하게 민희 앞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