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입니다. 문성식 와이프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빠르시려나.」
상대방은 의외로 차분했다 하지만 차분함 뒤에는 이미 승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니 따로 소개 필요 없을 것 같네요」
민희는 가뜩이나 주도권을 내준 상태라 초반 기싸움까지 밀린다면 오늘 자신이 나온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온 이상 그녀는 물러날 수 없었다. 승부 시작이다.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네요.」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팽팽한 줄다리기 중이다. 아직은 민희가 수비라 상대방이 어떠한 공격을 할지 침묵으로 견제 중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민희가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느끼고는 공격할 타이밍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만나자고 한 이유는 알 테고. 언제부터죠?」
드디어 공격이 시작됐다. 문성식 와이프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자신 앞에 내놨다. 사진을 보니 거기에는 예상대로 그날 차에서 일어난 일들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이게 다인 가요? 사진은 어디서 나신 거죠? 직접 찍으신 것 같지는 않은데.」
민희는 일단 그 사진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다른 사진들이 있는지 그녀를 떠보기로 했다.
「그게 중요한가요? 둘이 그런 사이라는 게 중요한 거지.」
「나름 중요하죠. 뭐 둘이서 짜고 찍은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진이 있을 수도 있고」
「웃기는군. 내가 뭐가 모자라 남편까지 끌어들여 널 협박해? 협박해서 뭐 나올 거리라도 있고?」
민희는 은혜의 반응으로 사진은 더 없다고 추측했다. 그러면 상황은 더 쉽다. 그냥 이 자리를 빨리 끝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끝난 사이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지금 끝났다고 둘이 그런 관계였다는 사실이 없어지진 않지.」
「그냥 머리채 잡고 끝내시죠. 끝난 마당에 헤어지고 자시 고도 없으니」
「그렇게 쉽게 끝내자고?」
「그게 깔끔하지 않겠어요? 그럼 뭘 해 드려야 하나」
「일단 사과부터 해야지. 아무 문제도 없던 그이가 너 때문에 가족의 약속도 깨트리고 나의 믿음도 깨트렸는데」
「그게 왜 나 때문이죠? 바람피운 건 그가 선택한 건데. 당신을 배신 신한 건 내가 아니니 남편에게 따지셔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짝사랑한 것도 아닌데 바람은 혼자 피우나?」
「뭐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았어요.」
민희는 밀리지 않고 수비에 성공했다. 게다가 조금 센 공격도 시작했다. 민희의 말에 상대방이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이 싸움에서는 흥분하면 지는 싸움이었기에 민희가 조금씩 앞서고 있다.
「사랑하지도 않은데 관계는 맺는다. 뭐 그냥 가지고 논 건가?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대단치도 않은데 왜 그랬을까? 그렇게 집착이 강한 남자인 줄 몰랐는데.. 사진이 찍힌 날 아마 딸 생일이었죠? 그전에 이미 그 사람에게 끝냈는데 그는 그런 것 같지 않더군요. 오후 반차 내고 집 앞에서 납치하듯 차에 태워서 끌고 가 억지로 한 건데... 그 상황에서는 불륜이 아니라 성폭행이라고요.. 성폭행.. 그렇게 집에서 좀 잘 대주시지 그랬어요. 남자를 그렇게 외롭게 하면 안 되지...」
「그만....」
민희의 이야기를 김은혜가 막았다. 말은 조용히 했지만 몸은 크게 떨고 있었다. 화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민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전이다.’
「네가 지금 역전한 것 같지?」 김은혜의 말에 민희는 움찔했다.
「뭐 싸우러 오셨나 보죠?」 민희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신나게 치고받고 싸우고 싶지만 그럴 가치도 없는 것 같네」
「뭐 그러시면 이만 끝내시죠. 더 이상 얻어 가실 것도 없으실 텐데.」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개념도 없고 예의도 없구먼. 왜 주변에 사람이 없고 혼자 인지 알겠구먼.. 세상 혼자서만 제일 잘난 것 같지?」
은혜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대응해봤자 상대방이 말할 수 있게 재료만 던져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로 절대 끝나진 않을 거야. 넌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 남자에 대한 믿음의 대가가 너로 인해 배신감으로 돌아온 것뿐만 아니라 그 오만방자한 태도가 결국 널 파멸시킬 테니까. 그날은 곧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김은혜는 그 말을 하고 남은 사진을 그녀의 얼굴에 던지고는 카페를 나갔다. 민희는 남은 사진들을 주우며 승리를 자축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누가 그 사진을 찍었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문성식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문성식 짓인 걸 확인할 수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