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에게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는지 어젯밤 그와의 대화를 되돌린 거였지만 크게 거스린만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그에 대한 좋은 감정만 다시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속에서 종양처럼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그 이야기 말이다. 사실은 어젯밤에는 아슬아슬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아님 그에게 그녀도 알지 못하는 뭔가 있었던지 털어놓을 뻔했다. 과거의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오늘도 같은 분위기라면 아마도 말을 할 것이다. 왠지 그에게는 털어놔도 될 것 같았다. 자신과 닮은 그에게는 말이다. 민희는 결정해야 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행동하기에 앞서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그의 말이 맞다. 안에 있는 걸 털어놓으면 조금은 편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이 가장 적당할 때이다. 자기를 닮은 그 사람.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그가 아닌가? 게다가 주변에 사람도 없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기대도 좋을 것 같았다.
「일어나셨군요.」 민희가 일어나자마자 생각한 그였다.
「좀 더 주무시지 그랬어요. 어제 늦게 주무셨는데」
「괜찮아요.」
미희는 그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비록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인지.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온도였다. 그녀가 만났던 남자는 몇 없지만 그들은 늘 그녀에게 의도가 담긴 미소를 보여줬다. 그녀에게서 육체, 마음,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그들에게서는 그들이 무엇을 하던 민희는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어떤 것도 자신에게 요구하고 있지 않다. 자신과 닮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그에게 기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 혹시 간병인 안 필요해요? 핸드폰도 없고 그때 그 일도 있고 해서 보호 자겸 옆에 누군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글쎄요.」 사실 민희는 옆에 누군가 있는 게 싫었다. 그것도 낯선 사람이라니.
「아 물론 낯선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싫겠죠. 하지만 민희 씨 혼자 있으면 자꾸 신경이 쓰여서 말이죠.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에요. 한번 생각해보시라는 거죠. 민희 씨 거슬리지 않게 믿을만한 사람 정도는 제가 알아볼 수 있어요.」
「생각해볼게요.」 민희는 차마 바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냥 한번 생각해보라는 거니까. 그리고 오늘 저녁에도 돌팔이 상담시간이 열릴 것 같은데 함께 하실 수 있으시죠?」
「아. 네. 물론이죠.」
「그럼 전 이만. 저녁때 봬요.」 민혁은 밝은 톤으로 인사를 하며 병실을 나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그가 옆에 누군가를 붙이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하고 싫어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왠지 그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인 건가. 한번 그에게 열린 마음은 평소의 그녀가 아닌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으로 회귀시켰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나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그를 만나면 누군지 물어는 봐야겠다고 민희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