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이 나가자 민희는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다니. ‘다른 거 말고 저에게 좀 더 신경 써주세요.’ 라니 너무나 과감한 말이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잠시일 뿐 그런 말을 한 스스로가 뿌듯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누리지 못한 20대를 지금에서야 느껴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20대 청춘을 즐기지 못했다. 그녀에게 20대는 그냥 흐르는 시간 속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20대에 후회는 없었다. 원래 그녀에게 청춘이란 단어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 자신이 내뱉은 한 마디의 말로 청춘이란 단어에 큰 의미가 생겼다. 그래서 부끄럼 감정보다는 기쁜 감정이 더 컸다. 중학교 2학년 때 멈췄던 감정의 시계가 이제야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쁨에 소리를 외치려고 하는 순간 간병인이 떠올랐다. 그가 추천해준 간병인이 오늘 임시로 채용했다. 그의 말은 믿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건 불편했기에 하루 이틀 정도 써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민혁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흔쾌히 간병인을 불러줬다. 인사할 때 목소리로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녀는 존재감이 없었다. 처음 인사했을 때 목소리를 들은 게 다였다. 그녀는 민희가 찾을 경우에만 그녀를 도와줬다. 기척도 없어서 옆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간병인이 퇴근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곧 민혁이가 올 시간이다. 민희는 민혁이를 기다리면서 요즘 들어 변한 자신에 대해 생각을 했다. 왜 청춘을 잃어버리면서 산 것일까?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왜 놓친 걸까? 확실한 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뭔가 억울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고 싶어졌다. 왠지 그와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요즘 그녀는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도 생겼고, 자신의 마음도 밖으로 표현하는 법도 익혔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비가 남아있었다. 그걸 넘어야 잃어버린 그녀의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였다.
「왔어요.」
민희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돌팔이지만 효과 만점 상담시간입니다.」
민혁도 반갑게 그녀의 인사에 답을 했다.
「이제 돌팔이라는 말은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만난 의사 중에 제일 명의예요」
「오. 영광이네요. 돌팔이라고 욕먹던 게 얼마 전인데..」
「뭐, 그럴 만했죠..」
「암요. 제가 좀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너무 티 나나요?」
「너무 나요. 민희 씨가 기분이 좋으니까 저도 괜스레 같이 기분이 좋네요. 」
「이게 다 민혁 씨 덕분이에요. 요즘 저 스스로도 놀라는 일이 많아요. 민혁 씨를 만나고서는 많은 것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어, 뭔가 이상한데요?」
「뭐가요?」
「이렇게 갑자기 큰 칭찬이라니. 이렇게 큰 칭찬을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잘못을 했던 가 아니면 뭔가 부탁을 하려는 건가 해서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요즘 변한 제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요. 민혁 씨를 안 만났다면 아마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았겠죠?」
「그건 모르죠. 변하기 전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 아니더라도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다만 전 그 시간을 앞 당겼을 뿐인 거예요.」
「원래 모습이라」
「네, 민희 씨의 원래 모습은 아마 지금과 비슷했을 거예요. 밝게 웃고 주변 사람들 칭찬도 잘해주는. 기쁜 이유는 아마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쨌든 민혁 씨 덕분이죠 뭐」
「좀 만 더 하면 온전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 에요.」
「찾고 싶어요. 원래의 나 그리고 나의 시간을」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안 들어봤네요. 어릴 때는 어땠어요?」
「어릴 때 평범했어요. 동네 친구들, 학교 친구들이랑 잘 놀고 부모님께 사랑받으면서. 특히나 아버지가 절 많이 사랑하셨죠.」
「좋네요.」
「네? 뭐가요?」
「전에는 아버지란 존재 자체를 부정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어릴 때잖아요.」
「그럼 언제 어린 게 끝나는 거죠?」
「중학교 2학년.......」
민희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누가 목을 조르는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말도 밖으로 안 나와서 손만 허우적거렸다. 허우적대는 손을 민혁이 잡아줬다.
「왜 그래요? 괜찮아요 여긴 편하고 안전한 병실이에요. 작게라도 숨을 쉬어 봐요.」
민희는 민혁의 말대로 작은 숨을 쉬려고 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냥 심리적으로 큰 쇼크가 온 거니까 겁내지 말고 숨을 쉬어요.」
민희는 아주 작게나마 한 번의 숨을 쉬었다.
「아주 잘했어요. 이제 좀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힘들어 보이니까 잠깐 만 눈을 붙여요」
민혁의 마법 같은 주문에 민희는 잠이 들었다.